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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명수 - 심리적 참전

irene777 2015. 1. 28. 02:23



<칼럼 - 이명수의 사람그물>


심리적 참전


- 한겨레신문  2015년 1월 26일 -




▲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수학여행 간 아이가 돌아오기로 한 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로부터 마흔번의 금요일이 지났는데 아이는 오지 않는다. 그래도 부모의 염원은 계속된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단원고 희생 학생 부모 13명의 육성이 담긴 책은 갈피마다 피 울음으로 가득하다.


한 엄마는 오래 살겠다고 다짐한다. 오래오래 ‘우리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시간이 지나면 잊는 사람이 많아질 테니 엄마가 오래 남아서 기억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하루빨리 ‘우리 아들’한테 가야 한다며 통곡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그런 냉온탕을 오가는 게 부모들의 일상이다.


모든 죽음이 그렇듯 고통 또한 개별적이다. 심지어 동일한 물리적 자극에도 뇌에서 느끼는 통증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 손톱 밑 가시가 친구의 심장병보다 더 괴로울 수 있는 건 그래서 일정 부분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 담론을 넘어서는 압도적 고통이 존재한다. 세월호 참사 같은 트라우마가 그렇다. 피해 당사자가 아닌 이들의 내면까지 파괴할 만큼 파국적 스트레스다. 한 꿈 분석가에 의하면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떤 형태로든 세월호 관련 꿈을 꾼 사람이 어마무시하게 많단다. 이 땅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라고 추론할 만큼. 어떤 사건에서도 있지 않았던 집단적 현상이라고 했다. 그러니 피해 당사자들은 오죽하겠는가.


파국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사람이 변한다. 대표적인 증상은 세상에 대한 철저한 불신과 냉소다. 요즘 엄마들이 고통스럽게 털어놓는 속마음이 있다. 어떤 사고를 접하면 ‘몇명 죽었어? 그 정도 가지고 무슨. 더 죽어야 돼. 다 죽어야 돼. 그래야 알지’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그 말끝에 엄마들은 ‘내가 점점 괴물이 되는 거 같다’며 내장이 쏟아지듯 운다. 함께 우는 수밖에. 치유 작업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칼이 된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거나 동의할 수 없게 된다. 나보다 더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느낀다. 그런 태도는 개인적 불행을 넘어 고통 속에 있는 다른 이에게 다시 상처를 주게 된다. 세월호와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경악할 만한 무감각이 내게는 그런 칼의 한 종류처럼 느껴진다.


고통의 정점에 있다 할 희생자 가족들이 우린 그나마 낫다며 미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바닷속에 있는 9명 혈육을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에 대해서다. 사고 직후부터 모든 희생자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현실은 ‘팽목항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남으면 어떡하지. 우리 아이만 못 찾으면 어떡하지’였다. 그런데 지금 실종자 가족들이 바로 그 지옥 같은 현실에 있다. 그걸 너무나 잘 알아서 희생자 가족들은 자기들의 고통을 그나마 낫다고 미안해하는 것이다.


그런 고통 앞에서 돈 문제로 세월호를 인양할지 말지 검토 중이라는 국가라니. 이게 국가인가를 다시 뇌까릴 수밖에 없다. 국가는 애국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때 보험 역할을 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꼬박꼬박 보험료 냈는데 정작 필요한 순간에 돈이 없다고 발뺌하면 파렴치한이다. 거의 모든 국민들이 반대했음에도 대통령이란 이의 독단적 아집만으로 22조나 되는 돈을 강바닥에 쏟아부을 수는 있는데 똑같은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힘으로 9명의 주검이 갇혀 있는 선체 하나 인양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무조건 인양해야 한다.


1월26일부터 20일 동안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이 ‘실종자의 온전한 수습을 위한 세월호 인양 및 진상규명 촉구’ 도보 행진을 한다. 그곳에 발걸음이나 마음을 포개주시기 바란다. 그 지옥 같은 고통을 그나마 분담하는 길이다. 심리적 참전이란 그런 것이다.



-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