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국정원 사건’ 책임 2월25일 전격 사임 발표”
언론인 정운현 씨 시대소설 <작전명 녹두>서 ‘예언’ 화제
- 진실의길 2015년 2월 16일 -
* 이 내용은 2월 15일 자 <서울의 소리>에 실린 것을 퍼온 것임을 밝혀둡니다.
- 언론인 정운현 씨 시대소설 <작전명 녹두>서 ‘예언’ 화제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오늘부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고자 합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발생한 불미스런 일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지난 9일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 부장판사)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국정원법 위반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 했다. 이로써 소위 ‘국정원 불법 댓글사건’에 대해 사법적 심판이 내려진 것이다. 이를 토대로 ‘국정원시국회의’는 14일 밤 집회를 열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책임론을 제기했다. 국정원의 불법 관권선거가 명명백백히 밝혀진 만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수사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무효 및 퇴진을 주장하고 나서 장차 파문이 확산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한 언론인이 펴낸 ‘시대소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을 예언(?)해 화제가 되고 있다. 중앙일보·서울신문 기자,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팩트TV 보도국장 겸 앵커 등을 지낸 언론인 정운현(56) 씨는 작년 6월 시대소설 <작전명 녹두>(전 2권, 책보세)를 펴냈다. 이 소설 2권 후반부 ‘대통령의 퇴장’ 편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인 금년 2월 25일을 기해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하는 내용이 나온다. 사임 사유는 국정원의 불법 댓글공작 사건에 책임을 지고서다.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유죄 판결로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박 대통령의 사퇴를 전후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언론인 정운현 씨가 작년에 펴낸 시대소설 <작전명 녹두> 표지
박근혜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겨레신문>의 특종보도 때문이었다. <겨레신문>은 금년 1월 10일자 국정원 댓글사건 관련 특종기사를 대서특필 했다. 이 날짜 1면에 실린 사진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새나라당(새누리당의 비유인 듯) 선대위 책임자 및 국정원 간부들과 함께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국정원 댓글공작과 관련해 연석회의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겨레신문>은 이날 1면에서부터 5면까지 전면을 털어 호텔 회의실을 예약한 기록, 참석자 명단, 참석자들의 주요발언 내용, 그리고 관련 동영상 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문제의 동영상이 올린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겨레신문> 인터넷 판은 다운되고 말았다.
<겨레신문>에 특종기사를 제보한 사람은 새나라당 당직자 박 모씨.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새나라당 선거대책본부 상황실에서 박근혜 후보의 일정관리와 행정보조 업무를 맡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연석회의 준비와 세팅을 맡았던 당사자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런 박 씨가 양심선언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취임 후 박근혜 대통령의 뻔뻔스런 행동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국정원 사건과 자신은 무관하다며 수차례 결백을 주장했으며, 국정원에 대해서는 ‘셀프개혁’ 조치를 내렸다. 이를 보다 못한 박 씨는 결국 2014년 12월 5일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양심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충격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박 씨의 고백은 별다른 반향을 가져오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박 씨가 증거자료 공개를 미룬 탓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5일 뒤인 12월 10일 박 씨가 동창회 모임에 갔다가 귀가 길에 괴한으로부터 피습을 받아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서울지검에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즉각 수사에 돌입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여당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특검법안까지 제출한 야당으로서는 난감한 입장이었다. 바로 그런 와중에 1월 10일 <겨레신문>에서 특종이 터졌다. <겨레신문>에 증거자료를 제공한 사람은 바로 박 씨의 형이었다. 제보자 박 씨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자료를 복사해 형에게 맡겨두었던 것이다.
<겨레신문>의 특종보도 이후 사태는 완전히 역전됐다. 여당인 새나라당과 청와대는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민주국민당(새정치민주연합의 비유인 듯) 등 야5당과 시민단체연석회의 공동주최로 이날 서울시청 광장에서 대규모 시국집회를 열었다. 시청광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인파로 넘쳐났고 대한문 앞 도로는 금세 교통이 두절되었다. 집회가 달아오르자 군중 속에서 ‘박근혜를 쫓아내자!’ ‘사기꾼 박근혜는 물러가라!’ 등의 구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야5당의 국회의원 전원은 즉석에서 의원직을 사퇴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시청광장, 광화문 일대는 연일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2월 25일. 서울을 비롯해 전국이 연일 ‘박근혜 퇴진’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았다. 이날 오후 야당은 시청광장에서 또다시 대대적인 집회를 가질 예정이었다. 이날 아침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는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전전긍긍할 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국민적 분노를 온몸으로 맞을 뿐이었다. 이날 집회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오후 2시경 상암동 사무실을 나선 <오마이뉴스> 정치부 장윤희 기자는 버스 안에서 여당의 중진 김 모 의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장 기자, 오늘 오후 4시에 대통령 사임 발표가 있을 예정이오. 그러니 시청광장으로 가지 말고 어서 회사로 돌아가서 특집기사나 준비하시오.”
“예?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소! 지금 대통령 지시로 내가 잘 아는 비서관이 사임 성명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방금 알려 왔소. 그럼, 시간이 없을 테니 이만 끊겠소!”
장 기자는 잠시 멍한 상태였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장 기자는 최근 상황을 찬찬히 한번 점검해보았다. 여당 당직자의 국정원 사건 폭로, 잇따른 대통령 퇴진 시위, 야당의원 총사퇴... 그리고 제보자는 여당의 중진의원에 청와대 비서관이 사임성명 작성 중이라… 얼추 그림이 그려지면서 모자이크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급히 사무실로 돌아온 장 기자는 편집국장에게 보고한 후 속보를 준비했다. 채 1분도 안 돼 <오마이뉴스>에 본문은 한 줄도 없이 달랑 제목만 붙은 긴급뉴스가 떴다.
[긴급] 박근혜 대통령 오후 4시 청와대서 사임 발표 예정
오후 4시 정각.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모두 굳은 표정들이었다. 단상에 오른 박 대통령은 인사를 한 후 곧바로 사임 성명을 읽어내려 갔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오늘부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고자 합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발생한 불미스런 일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려는 것입니다…”
▲ 2012년 11월 국회의원직 사임 기자회견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직을 사임한다’고 말실수를 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 성명은 불과 넉 줄짜리였다. 성명을 읽은 후 박 대통령은 평소처럼 일문일답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비서진도 순식간에 썰물처럼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그 시각부터 청와대는 주인을 잃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 길로 곧장 개인 승용차를 타고 도망치듯 청와대를 떠났다. 청와대 직원들의 조촐한 환송행사마저도 없었다. 박 전 대통령 본인이 원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서울 삼성동 사저 대신 부친(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로 향했다. 구미로 향하기 전에 그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부모 묘소를 참배했다.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사임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장 기자는 문득 2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2012년 11월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국회의원직을 사임하면서 뜻밖에도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분명 그건 말실수였다. 그런데 장 기자는 그 때의 그 말이 왠지 실수로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마치 예고된 것을 미리 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저녁, 전국 곳곳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쳐온 시민단체 주최로 대대적인 집회가 열렸다. 승리의 기쁨을 나누기 위한 자축의 한 마당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밤새 노래하고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승리를 만끽했다. 이로써 18대 대통령 취임 2주년은 또 하나의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격적인 사임 발표가 있은 지 한 시간 뒤인 이날 오후 5시. 정홍식(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가 열렸다. ‘대통령 유고(有故)’에 따른 긴급 국무회의였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관계 법률에 따라 정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3월 5일, 정 대행은 각료 전원이 부서(副署)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골자는 2015년 4월 20일에 제19대 대통령선거와 제20대 국회의원선거를 동시에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35조(보궐선거 등의 선거일)에 따르면,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 또는 재선거는 그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60일 이내에 실시하되, 선거일은 늦어도 선거일 전 50일까지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한대행자가 공고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여야는 서둘러 대선준비에 돌입하게 됐다. 새나라당에서는 재산가인 정상준(정몽준?) 의원, 18대 대선 때 박근혜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다가 국정원 사건 폭로 후 사퇴한 김무상(김무성?) 전 의원, 경기도지사 출신의 양문수(김문수?) 전 의원, 그리고 TK의 맹주로 불리는 오삼석(??) 전 의원 등이 출마했다. 야당인 민국당에서도 총 4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교수 출신으로 당 대표를 지낸 손학철(손학규?) 전 의원, 기자 출신의 3선 의원인 박영희(박영선?) 의원, 의사 출신의 합당파 안형수(안철수?) 의원, 그리고 진보지식인 출신으로 재선한 40대 정재원(??) 의원 등이 그들이었다. 4월 20일, 마침내 대통령-국회의원 동시선거가 치러졌다. 이날 자정이 조금 지나서 선관위는 최종 투표결과를 발표했다.
김무상 후보 : 32.8%,
정재원 후보 : 67.2%
압승, 말 그대로 압도적인 승리였다. 직선으로 치러진 역대 대선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결과였다.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긴 했지만 이런 정도의 격차가 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치평론가들은 제각기 나름의 대선 결과 분석을 내놨다. 공통분모는 국정원 사건과 세월호 참사 등으로 인한 유권자들의 민심이반과 40대 대통령에 대한 젊은 층의 선호와 노년층의 기대감, 그리고 정 후보의 진보적 삶에 대한 호평 등이었다. 총선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전체 의석 300석(지역구 246, 비례대표 54) 가운데 정당별 의석수는 다음과 같았다.
새나라당 78
민주국민당 187
진보당 33
무소속 2
5월 20일,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렸다. 오전 10시. 시청광장에는 전국에서 모인 국민들로 가득했다. 이날 취임식에는 외국 국가원수 등 내빈을 별도로 초청하지는 않았으며, 단상에 내빈석도 마련하지 않았다. 단상에는 발언대와 정 당선자 부부가 앉을 조그마한 의자 두 개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국민의례가 끝나자 정 대통령은 선서를 한 후 곧이어 취임사를 발표했다. 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의 대통령 취임은 저를 뽑아주신 국민여러분들의 대통령 취임이기도 합니다.”라고 자축하고는 선거공약인 국정원 폐지, 개헌, 경제민주화, 재벌-검찰-언론-교육 등 4대 분야 집중개혁, 청와대 전면 개방 및 자택서 출퇴근 등을 거듭 밝혔다. 취임 후 정 대통령은 필운동 자택에서 걸어서 정부청사 대통령 집무실로 출퇴근 했다.
▲ 시대소설 <작전명 녹두>를 펴낸 언론인 겸 작가 정운현 씨
한편, 정 씨의 시대소설 <작전명 녹두>는 한 마디로 초대형 국제정치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 박근혜 대통령, 북한 김정은 위원장 등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소설의 무대는 중국 선양의 칠보산 호텔, 청와대, 국정원, 일본 내각조사실과 자위대 등이다. 소설의 발단은 북한의 희토류 개발을 둘러싸고 남북한과 일본, 중국이 벌이는 첩보전으로 이 과정에서 북한이 일본 해상-항공자위대 부대에 30발의 핵무기를 발사해 일본 자위대의 80%를 궤멸시켜버린다. 그러나 일본은 북한 공격을 포기하고 만다. 만약 반격을 할 경우 북한이 수도 도쿄와 원전에 대해 2차 공격을 감행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일본에 대한 가상공격이라면 <작전명 녹두>는 일본에 대해 직접 핵공격을 하는 점이 차이점이다.
자위대의 궤멸로 일본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아베 총리는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극우집단은 연일 황궁 앞에서는 ‘북한 공격’을 외치며 더러는 ‘셋푸쿠’(할복자살)를 결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의 대다수는 이들에 대해 침묵했다. 장차 일본이 나아갈 방향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었다. 극렬한 내분 끝에 진보성향의 지식인들이 주도하여 도이 다카코 전 사회당 당수를 거국내각의 총리로 추천하였고, 일본 의회는 이를 승인하였다. 도이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자위대 해산, 영세중립국 선포, 영토분쟁 중단, 야스쿠니신사 폐쇄, 북-일 수교, 미일안보조약 폐기, 국가개조위원회 구성 등 파격적인 국정개혁을 단행한다. 또 남한의 정권 교체 후 북한 김정은의 서울방문으로 남북은 통일촉진위 구성·도발 중단·전면 3通 시행 등에 합의하여 남북 간에도 신기원을 연다.
<작전명 녹두>는 정 씨가 작년 초 북한에서 대규모 희토류가 매장(65조 달러 추산)된 사실을 보도한 신문기사에서 착상해 쓴 것으로, 정 씨는 불과 20일 만에 1500매를 마치 ‘신들린 듯이’ 썼다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힌 바 있다. ‘작전명 녹두’는 북한의 일본 핵공격 작전명으로, ‘녹두’는 지난 해 120주년을 맞은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에서 따온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4명의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오성물산 박 대리’는 삼성물산의 백 모 대리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기자 출신인 정 씨는 자신의 언론사 경험을 토대로 신문사 내부 얘기도 곳곳에 언급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소설집을 펴낸 ‘책보세’ 측은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주변의 여론에 힘입어 조만간 몇몇 영화사와 접촉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운현의 시대소설 <작전명 녹두>(전 2권), 책보세 펴냄, 각 권 9,500원.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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