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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곽병찬 - 미국·중국은 내 땅에서 싸우지 말라

irene777 2015. 3. 24. 04:38



미국·중국은 내 땅에서 싸우지 말라


- 한겨레신문  2015년 3월 20일 -




▲ 곽병찬 대기자



구한말, 무능한 조정이 끌어들인 청·일은 이 땅을 폐허로…

미·중이 한국서 싸우는 지금, 정부가 못하는 말 국민이 해야




▲ 미군이 지난해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의 핵심인 사드(THAAD·고고도 요격 미사일)를 

시험 발사하고 있다.   출처 : 미국 국방부 미사일방어청



<곽병찬 대기자의 현장칼럼 창>


16, 17일 양일 미국과 중국 두 나라 고위관리가 한국을 한바탕 헤집어놓고 돌아갔다. 정부는 한마디 한다고 했지만, 시름은 더욱 깊다. 눈치 보느라 처진 눈초리는 더욱 축 늘어졌다. 이번엔 외교부 차관보급이었다지만 앞으로는 더 센 자들이 온다고 한다. 이번주말 중국 국방장관이 오고, 미국에선 국방장관, 외교장관, 합참의장이 줄줄이 온다고 한다. 나라가 나라 꼴이 아니다.


구한말 청나라와 일본 영사는 국왕의 집무실을 제 집 드나들듯이 했다. 대신의 멱살잡이는 기본이고 국왕도 안하무인이었다. 물론 두 나라 군대를 왕실 가까이까지 끌어들인 게 조정이었으니 그렇게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무너져가는 왕조는 권력다툼의 필요에 따라 이놈 저놈 끌어들였고, 결국 일본은 명성왕후 민비를 건청궁까지 쳐들어가 난자했다.


그때와 대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나라가 안방에서 싸움박질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는 꼴은 별로 다르지 않다. 지금 두 나라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드잡이를 하고 있다. 말싸움이긴 하지만, 그들의 말은 때에 따라서는 전쟁도 되고 무역보복도 된다.


미국이 밀어붙이고 중국이 막아서는 사드 배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전략적 모호성과는 거리가 멀다. 모호한 게 아니라 불쌍할 뿐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미군이 배치하겠다고 한다면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앞장서 도입하지는 않는다.’ 배치와 도입 사이엔 돈 문제가 숨어 있다. 먼저 말을 꺼낸 쪽이 독박을 쓰는 게 이 동네 논의 구조다. 배치는 기정사실로 하고, 비용만 조금 줄이자는 게 이 정부의 셈법인 것이다. 미국 쪽에 애걸복걸하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포기했던 이 정부로서는 할 말을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돈은 중요하지만 곁가지 문제다. 핵심은 한국의 안보이익이다. 미국은 한국 땅을 대중국 봉쇄망의 전초기지로 대못 박으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은 북핵이 현실적인 위협이 되기 이전부터 이른바 미사일방어(MD) 체계로 한국을 끌어들이려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거부했고, 이명박 정부는 대북 화해 정책으로의 전환 등을 들먹이며 압력을 회피했다. 사드는 탄도미사일 요격 성능은 불투명하지만 반경 1000㎞ 이상의 골프공이 날아가는 것까지 포착할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의 미사일 능력을 속속들이 살펴보는 이 시스템에 대해 중국이 좌시할 리 없다.


미국이 사드 배치를 압박하는 명분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북한이 핵폭탄을 미사일에 장착할 만큼 소형화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소형화했다고 해도 성층권에서 대기권으로 진입할 때의 엄청난 고열을 이겨낼 수 있는 탄두를 제작할 기술력도 없다. 길어야 1000㎞에 불과한 한반도의 종심에서 탄도미사일 공격을 하려면 핵폭탄을 거의 수직으로 쏘아올렸다가 수직으로 떨어뜨려야 하는데,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핵공격을 할 경우라면 사거리 1000㎞ 이상의 노동미사일이 아니라 AN-2기 따위를 이용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밖에 사드의 요격 성능은 그야말로 실험 단계다. 지금까지 실험은 성층권에서 수직낙하하는 탄두를 상대로 한 게 아니었다. 항공기에 쏜 미사일을 대상으로 했다. 그것은 속도도 느리고 포착하기 쉽기 때문에 탄도미사일에 적용될 수 없다. 사실 탄도미사일을 방어하려면 미군이 이미 개발한 에어본 레이저 체계가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방어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밥줄을 위협한다. 중국은 교역량으로 치면 미국과 일본의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내키지 않는 기억이지만 중국은 6·25전쟁 당시 인도 대사를 통해 미군에 ‘휴전선 너머로 진주하면 참전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를 보냈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중국은 이미 최고지도자를 포함해 4명의 지도자가 사드에 대해 경고를 했다.


문제는 이 정부다. 아무런 전략도 없이 북한 봉쇄를 강화했고, 그러자니 미군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됐다. 국내 정치에선 사사건건 ‘종북’을 이용했다. 유신과 5공 이래 지금처럼 ‘종북몰이’가 판을 쳤던 적은 없다. 그 결과 대북 관계는 더 깊은 수렁 속에 빠졌고, 다시 대미 의존도를 높였다. 김기종씨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다 미국에 발목을 잡힌 건 상징적이다. 매를 스스로 벌어들였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 반면 다른 나라가 이 땅을 침범할 때는 꼭 다른 나라를 핑계 삼았다. 임진왜란도 왜가 명나라 정벌을 핑계로 조선을 침략한 것이고, 청은 조선이 명을 돕는다고 이 땅을 유린했다. 구한말엔 무능한 조정이 이 땅에 끌어들인 청과 일본 군대는 이 땅을 전쟁터로 삼았다. 골병드는 건 국민이다. 그러니 이제는 국민이 말해야 한다. 이 정부가 못 하는 말을 미국과 중국에 해야 한다. ‘내 땅에서 다투지 마라, 싸움질은 당신들 땅에서나 하라.’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31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