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도대체 창조경제가 뭐냐?

irene777 2015. 10. 14. 18:03



도대체 창조경제가 뭐냐?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놓치고 있는 또 한가지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KPCC) 소장


- 진실의길  2015년 10월 12일 -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기존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 중 북한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한 좌편향적인 교과서가 많고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기록한 대목이 적지 않다는 거죠. 역사라는 것이 상반된 평가가 있을 수 있고,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과 이를 풀어가는 방법입니다. 혼란을 불식시키는 방법이 꼭 강제된 방식과 획일적인 해법만 있냐는 것이죠.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각 주(state) 별로 각기 다른 공휴일을 지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링컨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주, 마틴 루터 킹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주, 유태인 대안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주 등이 따로 있습니다. 미국인 중 누군가에게는 링컨, 마틴 루터 킹, 유태인 등이 불편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해당 주가 주민들의 정서를 감안하여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한 것이죠.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살던 곳이 버지니아주였는데, 저를 가르치시던 수학 선생님이 백인우월주의가 강한 분이셔서, 흑인 인권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에 자신은 동의하지 않았다며, 혼자서 학교에 출근을 강행하던 모습도 제게는 대단히 놀라운 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그분의 성향을 해당학교 교직원과 학생들 모두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분이 어떠한 징계나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저는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최근 들어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각종 국제 디지인 혹은 광고 창작제에서 연이어 수상을 하고, 많은 영화감독들이 깐느, 베를린, 베니스 등 각종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배우들과 가수들이 한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전 세계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비게 된 지도 이제 20년이 다 되어가며 그 열풍은 아직 식을 줄을 모릅니다. 이토록 대단한 잠재력과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왜 20년 전까지는 잠들어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우리 한류의 역사는 자유화 및 국제화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합니다. 각종 억압과 규제를 풀면서 국민들이 다양성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것이 창작과 새로운 해석에 대한 욕구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주었습니다. 싸이(Psy)와 같은 기발함, SM의 글로벌 콜라보, YG의 자유분방한 열정, JYP의 실험정신 등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바로 자유화와 국제화였죠.


제가 명색이 창조경제연구원 부원장이다 보니 “도대체 창조경제가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됩니다. 개념상으로는, “다양성과 개방성을 토대로 기존 프레임에 대한 재해석과 산업분야 및 기술 간 융합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함으로써 새로운 업종, 분야, 상품, 서비스가 출현하도록 함으로써 이 같은 새로운 경제 트랜드를 통해 또 한 번의 경제도약을 이루도록 한다”는 다소 장황한 설명이 되지만, 그 핵심은 다양성, 개방성, 수용성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기조를 살펴보면 정말 창조경제를 구현할 생각과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조직이 커질수록 사고가 경직되고 궁극적으로는 관료화된다는 것이 경영학의 상식임을 감안할 때, 대기업 중심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운영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벤처기업과 강소기업 중심의 운영체제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ICT산업과 문화콘텐츠산업을 함께 창조경제로 묶는 것도 혼선을 초래하게 됩니다. 하드웨어 중심 사고와 콘텐츠 중심 사고가 양립하기 어렵지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입니다. 다양성, 개방성과 수용성을 가질 때에 비로소 창조경제가 실현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는데, 이 정부는 획일성, 폐쇄성, 배타성에 입각한 국정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우편향 인사의 임명, 오로지 흑과 백만을 구별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전직 검찰 출신의 총리 지명, 반대 토론이 허용되지 않는 엄숙한 국무회의 풍경, 그리고 획일성, 페쇄성, 배타성의 절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까지…


이처럼 정부가 창조경제와는 정반대로만 가고 있으니, “도대체 창조경제가 뭐냐?”는 질문을 제가 계속해서 받을 수밖에 없지요.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에 대한 청사진은 있지만, 그 방향성이 모호할 뿐 아니라 그 목표와 방향성을 가늠해보기 위해 대통령과 정부의 움직임을 보더라도 도리어 창조경제와 모순되거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헛갈리는 거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놓치고 있는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편향이 맞는지 좌편향이 맞는지를 따지기에 앞서서 지금의 1040세대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가르치려 드는 것이고, 나만이 옳다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우리들도 충분히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데, 너희들이 뭔데 굳이 그것을 법으로 강제하여 다른 해석과 판단을 배제하냐에 대한 반발심을 이들은 갖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다음 대선은 세대 간 갈등이 극에 달하는 시점에서 치러지게 될 텐데(내년 총선으로 그 불씨가 당겨질 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만...), 이번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는 그 같은 세대 간 대결에 있어서 결정적인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대 간 결집 양상으로 대선이 치러질 경우 이미 결집할 수 있는 만큼 결집한 6070보다는 그 잠재력과 폭발력이 훨씬 더 큰 1040세대가 유리한 흐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시점에 50대에 접어드는 저와 같은 유권자까지 1040에게 가세하게 되면 상황은 매우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 위험성을 아직 그들은 모르지요.


기성세대는 무엇이 옳고 그르냐, 그리고 누가 맞냐 틀리냐에 관심이 많지만, 미래세대는 어떠한 가능성이 열려 있느냐, 합리적으로 개혁하고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냐, 사회적 참여와 주도권이 보장되느냐에 보다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기성세대가 어떤 사실이 맞고 자신들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규정되고 제도화되는 방식이 일방적이고, 독선적이고, 폐쇄적이면 결과를 불문하고 그것을 수용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을 보면서 보수세력과 기성세대의 한계점을 명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이 가고자 했던 길의 끝이 바로 자신들의 관점과 방향성을 법과 제도를 통해 획일적으로 확보하는 것이었음을 이번 국정화 움직임이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진심과 마각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이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해나갈 것인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가 되었습니다. 그 연장선에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이 있습니다.



<출처 :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874&table=byple_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