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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YS의 추억’ - 김종찬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irene777 2015. 12. 4. 04:50



‘YS의 추억’ - 김종찬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의 솔직하고도 담백한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진실의길  정운현 칼럼


- 2015년 11월 27일 -





▲ 소장파 국회의원 시절의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김영삼 회고록>)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오늘(26일) 국립 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대다수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그의 80평생도 영광과 오욕으로 점철됐다고 하겠습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의 반독재 투쟁, 문민정부 시절의 일련의 개혁조치는 박수 받아 마땅하나 90년의 ‘3당 야합’은 그의 생애 최대의 오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정치지도자로서는 그는 결단과 용인술, 용기와 전략도 겸비했다고 하겠습니다. 평소 지독한 경상도 사투리를 고집했던 YS는 인간적으로는 소탈한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의 솔직하고도 담백한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때는 1980년대 후반, YS가 야당 지도자 시절이었다. 

당시 이름을 날리던 방송인 김종찬 씨는 가수 이장희가 미국 LA에서 경영하던 ‘라디오 코리아’의 부탁으로 YS 인터뷰를 하게 됐다. 

“앉으입시다. 차 한 잔씩 하고 찬찬히 하입시더. 근데 내가 웡캉 말을 못해서 큰일이네요.”

“말을 잘하고 못하고가 어디 있습니까? 진심과 진실이 전해지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종찬이 예의상 한 마디를 건넸다. 그러자 YS가 냉큼 그 말을 받았다.

“맞십니더. 진심과 진실, 그게 제일입니더. 내 말 잘한단 말은 몬 들었어도 진실하단 말은 많이 들었능기라.”

이 정도로 추켜세워 주었으니 인터뷰를 시작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시작하실까요?”

“그랍시다”

이렇게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역시 YS는 듣던 대로 말을 잘 하지 못했다. 말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그는 고전할 것이 명약관화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민주화’ 한 단어로 일관했다. 어떤 주제도 민주화로 통하면 된다고 확신한 듯 했다. 오죽했으면 그랬으랴. 또 어찌 보면 YS로서는 민주화만 부르짖으면 충분하기도 했다. 그럭저럭 인터뷰는 끝이 났다. 바로 그때 YS가 물었다. 

“나 잘했어요?”

순간 당황했지만 김종찬은 사실대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못하셨죠.”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YS가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는기라. 내 말을 몬한단 말야.”

그러더니 YS는 방문을 활짝 열고는 비서에게 말했다.

“야야, 다음 스케줄이 뭐꼬?”

비서가 뭐라고 보고를 했다.

“야야, 그거 다 취소해 뿌라”

그리고는 방문을 닫고는 김종찬에게 불쑥 말했다.

“인터뷰를 한 번 더 하입시더.”

김종찬은 당혹스러웠다. 편집 좀 잘해달라는 부탁은 더러 있었어도 인터뷰를 통째로 다시하자는 제안은 처음이었다. 스탭들은 김종찬의 얼굴을 쳐다보며 난감한 태도였다. 그러자 김종찬이 YS에게 말했다.

“편집 잘하면 괜찮을 겁니다. 인터뷰를 또 한다는 것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보소, 이거 중요한 거 아이요? 더구나 미국에서 방송되는 거라면서요? 미국 교민들이 뭐라카게쏘? 다시 한 번 하입시다.”

YS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결국 김종찬은 스탭들과 합의하여 다시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묶었던 방송장비를 다시 풀었다. 김종찬이 리드 멘트를 하고 첫 번째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그 때 YS가 ‘잠깐 녹음기 좀 끄소’ 하더니 김종찬을 향해 말했다.

“김선생, 내가 뭐라카면 좋겠노?”

“네?”

“내가 뭐라꼬 대답하면 좋겠소?”

“김 총재님 생각을 그대로 말씀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야 물론 그렇지요. 내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안돼서 그러는 거 아니겠소?”

“……”

“말 좀 해주소. 머라카면 좋겠능교?”

막무가내였다. 하는 수 없었다. 빨리 끝내기 위해 김종찬은 이런 내용이면 적절할 것 같은데 어떠시냐고 했다. 그랬더니 김영삼이 곧바로 말했다.

“와― 우째 그렇게 내 생각과 같소? 딱 그거요. 그런데 난 와 그런 말이 생각이 안날까? 자, 그라믄 질문하소!”

김종찬이 다시 첫 질문을 했다. YS는 김종찬이 한 말에 자기 생각을 좀 더 붙여서 답변을 했다. 남의 말에 덧붙이다 보니 그의 대답은 나름대로는 괜찮았다. 

그러나 김종찬 입장에서는 참으로 해괴한 인터뷰였다. 자신이 묻고 자신이 답하는 꼴이라니. 그러나 YS로서는 절대로 손해가 없는 인터뷰였다. 이렇게 시작된 두 번째 인터뷰는 모든 질문마다 그렇게 끝이 났다.




▲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김종찬 지음



위 내용은 방송인 김종찬 씨(전 SBS 뉴스쇼 앵커)가 최근에 펴낸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평민사)에 실린 내용이다. 이 책은 일종의 정치 비평서랄 수 있는데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평가와 이런저런 일화들을 담고 있다.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반면 민주화와 재임 시절 개혁정책을 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 대해서는 박수와 함께 애정 어린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김영삼의 ‘3당 합당’에 대해서는 매몰찬 비판을 가하였다. 마지막으로 책 뒷표지에 실린 ‘이런 대통령은 없을까’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이런 대통령 없을까?>


국민에게 매일 웃음을 주는 대통령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대통령

국민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는 대통령

남북통일을 정권유지에 악용하지 않는 대통령

국민과 직접 대화하는 대통령

아랫사람의 ‘예’보다 ‘아니요’에 더 관심 가지는 대통령

온 국민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대통령

읍참마속의 결단력을 가진 대통령

법치와 덕치로 나라는 이끄는 대통령

...

이런 대통령을 보고 싶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wh_jung&uid=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