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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성 없는 여성…유리천정 경험 없는 여성

irene777 2015. 12. 5. 03:20



모성 없는 여성…유리천정 경험 없는 여성

정치인을 평가할 때 ‘말’과 ‘약속’이 아닌 ‘움직임’과 ‘태도’를 봐야 한다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KPCC) 소장


- 진실의길  2015년 11월 30일 -




지난 15년간 제가 면접관을 하면서 면접을 본 후보자는 족히 5천 명은 넘어설 것입니다. 그런데 면접이라는 일이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지요. 한 인간에 대한 평가를 고작 5~10분 안에 내려야 하니 얼마나 많은 오류, 오해 및 편견이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면접관들끼리 통하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지요.


"Don't listen to the contents! Watch closely their moves and attitudes!"

 (그들이 말하는 것을 경청하지 말고, 그들의 움직임과 태도를 보라!)


그러다 보니 목소리의 음색(tone), 발언 속도(tempo), 시선(eye direction), 몸짓(body gesture), 표정(face expression), 걸음걸이(step), 인사(greeting) 등 세심한 부분을 관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답변(answer)은 시나리오를 짜서 단기간에 준비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움직임과 태도는 상당부분이 습관과 생활방식의 표현이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교정이 어렵기 때문이죠.


아마 많은 분들이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자신이 보기에 엄청 면접을 잘 본 누군가는 탈락하고,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던 누군가는 합격하고… 그 미스터리에 대한 부분적인 해답을 제가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답변은 잘 했지만 움직임과 태도가 미덥지 못했던 친구와 답변은 아쉬웠지만 움직임과 태도가 훌륭했던 친구의 차이죠.


꽤 오랜 기간 그런 관점으로 사람을 살펴보다 보니 저에게도 직업병이 생겨버렸습니다. 누군가가 어떠한 발언을 하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사람의 움직임과 태도를 포함하여 좀 더 냉정한 시각에서 평가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바로 그 점 때문에 가끔씩 다른 사람들과 상당히 다른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있죠. 제게는 박근혜 대통령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우선 세 가지 본질적인 의문을 갖게 됩니다. 첫째, 왜 유독 박근혜 정부에서 아이들에 대한 잔혹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어린이합창단이 3시간 동안 눈보라와 강추위 속에서 덜덜 떠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중고생들을 위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중고생들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둘째, 여성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및 내각 인사에서 참신한 여성의 발탁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MB정부를 제외하고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역대 정부와 비교해도 여성의 발탁 비율이 너무 떨어집니다. 비록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직과 공천 과정에서도 여성 비율은 낮죠. 어떤 면에서는 여성 대통령으로 인해 도리어 여성이 역차별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셋째, 마가렛 대처, 앙겔라 메르켈, 매들린 올브라이트, 콘돌리자 라이스, 힐러리 클린턴 등 세계적인 여성 지도자들이 특유의 온화함, 유연함, 섬세함을 무기로 국제정치 무대에서 빼어난 업적을 남긴 것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박 대통령의 외교 행보 그 어디에서도 온화함, 유연함, 섬세함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전략적 이해관계 때문에 친해진 시진핑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와도 돈독한 관계가 전무한 상황이죠.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만 놓고 보면 이러한 일이 발생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됨은 물론, 도리어 구조화 내지 고질화되어가는 양상입니다. 결국 문제의 해답은 발언이 아닌 움직임과 태도에서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상당수의 시민들이 자신의 불로그나 SNS 프로필 사진에 노란색 리본을 그대로 달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왜 그럴까요? 같은 부모로서의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여전히 크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넓게 말하면 '모성'이죠. 아이를 키우고 아이와 함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희생된 학생들의 부모의 심정이 어떤지 헤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움직임과 태도를 보면 이와 같은 모성에 대해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모성이라는 것이 순간적으로 감정이 복받쳐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가슴 한편에 시리도록 굳건히 자리 잡아서 잊으려고 해도 도망가려고 해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마치 세월호 참사 대국민 사과를 할 때의 사람과 지금의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이번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의 어린이합창단 학대 논란도 그 연장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모성이 있는 대통령이라면 식순 중 어린이합창단 순서를 발견했을 때에 곧바로 참모들에게 “아이들이 추운 날씨에 불편하거나 고생하지 않도록 잘 챙겨라”고 지시를 했을 것이고, 혹 국정에 바빠서 그렇게 세세히 챙기는 것이 어렵더라도 참모들이 대통령의 모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다면 알아서 그 부분을 챙겼을 것입니다. 둘 다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있어야 할 게 없었다는 거죠.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도 그 연장선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기존 검인정 체제가 바뀌는 것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닥쳐올 혼란과 스트레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부모가 겪어야 할 안타까움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지금처럼 군사작전 식으로 일을 밀어붙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 역시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서 여성의 인재 발탁이 좀처럼 없는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 문제입니다. 유럽에서 새로운 지도자로 선출되는 인물이 남녀를 불문하고 과감하게 참신한 여성 인력을 내각과 참모진으로 발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도 여성에게 얼마나 거대한 ‘유리천정’이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그 물꼬를 터서 ‘유리천정’을 허무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박근혜 정부 인사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소명의식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남성 군장성 출신, 남성 법조인 출신, 남성 학자 출신들이 거의 대다수를 차지할 뿐 전문직 여성이 새롭게 발탁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일부 여성 장관과 수석이 임명되기는 했지만 정치인 출신이어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기존 관료집단, 학자집단, 전문가집단에서 발탁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지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단 한번도 ‘유리천정’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국회의원 뱃지를 단번에 달았고, 재선에 불과하던 시절에 이미 ‘부총재’ 직함을 달았고, ‘당대표’가 먼저 된 후 3선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총리도 도지사도 장관도 거치지 않고 단지 국회의원 5선과 당대표를 역임했다는 경력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유리천정’이 여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온화함, 유연함, 섬세함을 그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도 따로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인해야 했고, 비타협적이어야 했고, 선이 굵어야 했기에 정작 여성 특유의 장점인 온화함, 유연함과 섬세함은 실종되어버렸습니다. 여성 특유의 장점이라는 것이 관점과 이해가 다른 여러 사람들과의 수평적 교류 및 소통을 통해 발휘되는 것인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직 수직관계만 경험해온 그에게서 이것을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기존 우방과도 관계가 도리어 소원해지죠.


글이 다소 장황해졌지만, 결론은 상당히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정치인 박근혜의 움직임과 태도가 아닌 그의 ‘말’과 ‘약속’을 신뢰하여 지지한 결과, 우리는 모성이 없는 여성…그리고 ‘유리천정’ 경험이 없는 독선적이고 경직된 여성을 우리의 최고 지도자로 뽑았습니다. 여성에게서 여성의 장점을 전혀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예측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이고, 갈등과 소통 실패의 골이 갈수록 더 깊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정치인의 말과 약속을 순진하게 믿은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그의 본모습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이를 감추고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한 김무성, 서청원과 같은 정치인이 더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우리는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정치인을 평가할 때 ‘말’과 ‘약속’이 아닌 ‘움직임’과 ‘태도’를 봐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것이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두 번의 기회,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오류와 불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단초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먼저 정신 차려야 합니다.



<출처 :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911&table=byple_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