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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철수는 제갈량의 ‘천하3분지계’를 이뤄낼 것인가

irene777 2015. 12. 30. 04:09



<김의겸의 우충좌돌>


안철수는 제갈량의 ‘천하3분지계’를 이뤄낼 것인가


- 한겨레신문  2015년 12월 21일 -




최근 여론조사론 새누리당 잠식해 제3당 안착 가능성

중도정당 자리매김땐 계층·이념적 분화 촉매로 작용 

대통령 결선투표제 합의한다면 정권교체 확률 높아져





▲ 안철수 의원(무소속)이 14일 낮 탈당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주공10단지 아파트 노인정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인사한 뒤 나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우선 반성부터 하겠다. 나는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야권의 분열’로만 봤다. 그래서 안 의원에게 분열의 책임을 묻는 글을 썼다. 명분 없는 탈당이기에 ‘안철수 신당’이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탈당 이후 1주일 동안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이 ‘야권의 분열을 가져올 것’이라던 예측과는 달리 ‘여권의 분열’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느 당 후보를 찍겠는가’라는 취지의 질문에 <한겨레> 여론조사에서는 새누리당 26.6%, 새정치민주연합 26.5%에 이어 ‘안철수 신당’을 꼽은 응답자가 16.4%였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조사는 새누리당 35.2%, 새정치연합 28.0%, 안철수 신당 16.5% 순으로 나타났고, <중앙일보>의 여론조사는 새누리당 30.2%, 새정치민주연합 23.0%, 안철수 신당 18.6%였다.


오랫동안 대선 후보 지지도가 7~8%에 머물던 안철수 의원의 지지도가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반면 2년 넘게 40%대의 고공행진을 벌이던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30%대 이하로 떨어졌다. 안철수 의원의 ‘확장’은 새누리당의 ‘축소’와 맞물려 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양당 구도가 뿌리내린 우리 정치지형에서 중도층을 기반으로 한 ‘제3의 정당’이 탄생할 조짐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마치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권유한 ‘천하3분지계’(天下三分之計)가 연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구도가 정착될 거라고 점치는 건 섣부르다. 안철수 탈당이 주는 충격파가 워낙 컸기에 먼지가 가라앉은 이후에나 진짜 여론 지형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래도 천하가 셋으로 나뉜다면 절망에 빠져 있는 야권 지지층에게는 오히려 어슴푸레하나마 희망의 길이 열리는 게 아닐까. 아니 탈당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헛되이 상황을 되돌리려 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 아닐까.





새누리당 과반 장악 저지


모든 신당 여론조사에는 거품이 끼어 있기 마련이다. 기존 정당에 대한 반감으로 여론이 신당으로 쏠리지만 신당의 실체가 드러나면 실망도 커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없는 원칙이란 없다. 두 차례의 새정치 실험을 통해 안철수가 ‘강철수’로 담금질 됐다면, 그리고 철옹성처럼 보이던 집권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사실은 모래성에 불과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긴 박근혜 대통령이 그토록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는데도 새누리당 지지층이 온전히 뭉쳐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 균열의 틈새를 문재인 대표는 뚫지 못하지만 안철수 의원은 뚫을 수 있을지 모른다. 가정이 현실화된다면 넉달 뒤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여소야대 정국이 될 수 있다. 제1당은 여전히 새누리당이겠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신당, 정의당 등이 합치면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폭주 기관차에 제동이 걸리는 것이다. 1988년 13대 총선 결과 야당인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전체 의석이 여당인 민정당을 압도해 노태우 정부를 견제한 사례가 있다.


 새누리당은 합리적 보수로 거듭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반도 긴장을 격화시키고 재벌 위주의 정책을 펴며 민주주의를 질식시켜서는 재집권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기에 ‘박근혜 지우기’에 나설지도 모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동안의 내부 혼란과 무질서를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으로서 대중의 분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삶의 문제와 직결된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갈 것이다. 중도 노선을 걷는 안철수 신당은 비록 제3당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캐스팅 보트를 쥐면서 1, 2당 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양당 구도 아래서 극으로 치달았던 대립과 갈등은 안철수 신당의 중재 노력으로 완화될 수 있다



지역구도 완화


여론조사 내용을 좀 더 들여다 보면 1987년 대선 이후 30년 가까이 이어져 왔던 지역대결 구도가 계층적 이념적 분화로 ‘진화’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호남에서는 그동안의 새정치민주연합 독점구도가 깨질 게 확실하다. 호남의 보수층은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고 진보층은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영남 유권자의 선택지도 넓어진다. 특히 부산 경남에서의 경쟁은 치열할 것이다. 김무성 문재인 안철수 등 3당을 대표하는 사람이 모두 부산 출신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가둬 두었던 지역의 울타리가 활짝 열리면 정치적 에너지가 어디로 분출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수도권 충청 영남 호남 등 지역 단위가 아니라 도시냐 농촌이냐, 부자 동네냐 가난한 동네냐로 다양한 형태의 투표 성향이 나타날 테고 당 보다는 후보의 인물 됨됨이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중도 성향의 유권자를 향해 정확하게 파고들 경우 양쪽의 정당도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낼 테고, 유권자들도 이념적 분화가 촉진될 것이다. 한국 정치의 발전이다. 이럴 경우의 부수적 효과는 1990년의 3당 합당 같은 부작용이 빚어질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김영삼이라는 맹주가 부산·경남을 통째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지역구도가 느슨해지면 누구도 그런 괴력을 발휘할 수 없다. 특히 안철수 의원에게는 호남이 중요한 한 축이 될 것이기에 새누리당과의 합당이나 연대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 결선투표


사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야당이 정권 교체를 이뤄낸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탄생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낸 셈이다. 하지만 두 야당이 힘을 합쳐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그 가능성의 문이 활짝 열린다.


결선투표제는 과반수 득표를 얻는 후보가 없는 경우 다수 득표를 한 2인을 대상으로 다시 한번 투표를 실시해 당선인을 결정하는 제도다.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권을 보장해 국민의 정치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등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만한 제도다. 이 제도가 헌법 개정 사항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헌법이 대통령 선거 방식까지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공직선거법만 바꾸면 될 일이라는 게 합리적 해석으로 보인다. 따라서 두 야당이 내년 총선에서 결선투표제를 공통 공약으로 내걸고 승리한다면 새누리당이 반대하더라도 국민의 이름으로 논란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어떤 방식으로 후보 단일화를 할 것인지를 두고 국민들 앞에서 신물 나게 보여줬던 대립과 갈등을 없앨 수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1등 후보는 여전히 새누리당 후보이겠지만 누가 2등으로 올라가든 야권의 여러 세력들이 힘을 모아 지지하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또 이는 사실상 연립정부 구성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년 총선에서 결선투표제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독일식 정당명부제 등을 도입하는 등 양당 구도를 깨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안철수와 제갈공명


천하3분지계는 제갈공명이 삼고초려 끝에 자신을 찾은 유비에게 처음 제시한 전략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순수 창작품은 아니다. 400년 전인 <초한지>에서도 괴철이 한신에게 비슷한 계책을 제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갈공명 시대에도 천하3분지계를 이야기한 사람은 많았다. 안철수 이전에 정몽준 이인제 박찬종 등 수많은 정치가들이 제3당을 꿈꿔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제갈공명만이 실제로 중국을 셋으로 나누는 데 성공했다. 깃발 꽂을 땅조차 변변찮던 유랑 군벌 유비를 천하의 한 축으로 만들어 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공명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했고, 그 구상을 바탕으로 유비 이하 장수들이 모두 진력한 결과일 것이다. 안철수도 천하를 나누려면 전략을 분명하게 세우고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할 것이다. 산만하게 역량을 분산하기 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략적 요충지를 선정하고 이를 선으로 잇는 지리적 구상이 필요하다.


공명이 선택한 촉나라 땅은 중원에 위치한 위나라나 물산이 풍부한 오나라에 비하면 버려진 땅이었다. 마치 양당 구도 아래서 중도층의 독자적인 위상에 대해 다들 무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공명은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서 백성을 먹이고 군사를 길러냈다. 안철수 의원도 중도층이라는 ‘블루 오션’에 집중해야 한다.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시작할 때 최소한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호남에 의탁하는 건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만 머문다면 거기서도 성공하기 힘들고 다른 지역으로 확장하는 데도 장애가 된다. 야당끼리 서로 생채기 내는 ‘레드 오션’일 뿐이다. 공명의 서쪽 진출처럼 안철수 의원에게는 오른쪽이 미래의 땅이다. 지역적으로는 중도 성향이 강한 충청이나 강원, 경기 북부 등지가 도전해 볼만할 것이다.


공명의 천하3분지계가 성공하지 못한 건 조조에 대항하는 촉-오 동맹의 결속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공명의 구상대로라면 촉-오 동맹의 유지가 필수였는데, 둘이 서로 형주 땅을 차지하려다 패인 골이 애초 계획을 헝클어뜨렸다. 두 차례 전쟁에서 촉의 군사력이 바닥남으로써 공명이 세웠던 원대한 구상은 무위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오나라도 무너지고 말았다. 훗날 “조조가 형주 땅으로 두 영웅을 낚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안철수 의원도 자신이 몸 담았던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감정’을 되씹기보다는 천하 통일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냉정하게 판단해 주었으면 한다.



- 한겨레신문  김의겸 선임기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226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