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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잘 늙고 잘 죽기

irene777 2016. 2. 14. 01:46



잘 늙고 잘 죽기

웰빙(well-being)에 이어 웰다잉(well-dying)의 시대가 되었다


진실의길  정운현 칼럼


- 2016년 2월 3일 -




바야흐로 ‘호모 헌드레드’, 즉 100세 시대를 맞았다. 유엔이 100살 시대의 도래를 알린 게 이미 8년 전의 일이다. 의술의 발달과 영양 개선으로 인류의 수명이 100년에 비해 거의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인류의 염원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사는 삶, 그리고 죽을 때 존엄하게 죽는 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최근 재미있는 책이 하나 출간됐다. <나이듦 수업>. 노년의 삶의 방식을 존재론적으로 성찰하려는 전문가 여섯 명이 중년·노년 청중과 만나 행한 릴레이 강연을 묶은 것이다. 필자는 고전 전문가, 여성학자, 심리학자, 물리학자, 은퇴설계사, 그리고 죽음준비교육 전문가 등 다양하다. 이들은 어떻게, 늙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사유해온 사람들이다. 장차 ‘늙고 죽음’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할 지도 모른다.


동안(童顔)가꾸기와 성형 풍조에 대해 한 필자는 “청춘으로부터의 해방”과 “어른으로 늘어갈 용기”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 출발선은 청춘 흉내내지 않기, 청춘과 비교하지 말기다. 젊은 몸에 대한 집착,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호르몬주사 및 성형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세태를 두고 “청춘만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생로병사관에 포섭되어 고통받는 일”이라는 진단했다. 그는 “내 몸은 가을에 가 있는데 내 마음은 초봄”에 머무는 간극에서 노년의 괴로움이 생겨난다고 분석했다.




▲ 고령화사회를 맞아 잘 늙고 잘 죽는 것이 중요한 일로 떠오르고 있다



심리학자인 한 필자는 소위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두고 ‘반성할 줄 모르는 꼰대’로 보는 경향을 두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불통”에서 찾고는 “자기 삶을 긍정하는 자기 치유를 통해 불통의 꼰대에서 소통하는 꽃대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인담론을 들고 나온 한 필자는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노인은 ‘흑인’, ‘여성’,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종으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필자 중에서 최고령자인 물리학자 장회익(77)씨는 자신이 꿈꾸는 노년을 다음 세 문장으로 요약했다. “첫째, 마지막 날까지 보람된 하루를 보낸다. 둘째, 마지막 날까지 건강을 유지한다. 셋째, 마지막 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이제 떠나는 것이다.” 누구나 다 희망하는 것이지만 제대로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웰빙(well-being)에 이어 웰다잉(well-dying)의 시대가 되었다. 잘 늙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으면 잘 죽는 것일까? 흔히 옛 사람들은 집 안방에서 잠자다가 죽는 것이 최고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요즘 노인들의 대다수는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노인 가운데 상당수는 중증질환, 특히 치매 같은 질환에 걸려 아름답지 못한 상태로 생을 마치는 것이 보통이다.


심지어 인공호흡기 등 특수장비에 의존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인해 과중한 의료비 부담으로 가족까지 고통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근 암으로 타계한 신영복 선생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초에 이른바 ‘웰다잉(Well-Dying)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환자나 가족이 사전에 연명치료 거부의사를 밝힌 경우 이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100세 시대, 고령화 시대를 맞아 잘 늙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wh_jung&uid=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