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힌츠페터 기자와 ‘물정(物情)’

irene777 2016. 2. 15. 13:55



힌츠페터 기자와 ‘물정(物情)’


진실의길  정운현 칼럼


- 2016년 2월 10일 -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진상을 전 세계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기자가 지난달 25일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 소속 카메라 기자로 주일특파원이었던 그는 5월18~19일 광주로 들어가 계엄군에 의한 참상 현장을 취재해 전 세계로 알렸다. 당시 국내언론은 신군부의 보도통제로 취재를 해놓고도 보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외신기자가 국내 취재를 하려면 해외공보원에서 프레스카드를 발급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무작정 광주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런 공로로 그는 2003년 11월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죽음의 공포를 무릅쓴 치열한 기자정신으로 한국인의 양심을 깨워 민주화를 앞당겼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가히 ‘참기자’라 아니할 수 없다.




▲ 5.18광주항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한겨레 자료사진)



2004년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때 그는 “광주 망월동 묘지에 묻히고 싶다. 그게 어렵다면 위패로라도 남고 싶다”는 밝혔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대로 광주 안장이 어렵게 되자 2005년 광주 방문 때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5·18기념재단에 맡겼다. 그의 뜻에 따라 광주시에서는 그에게 명예시민증 부여와 함께 망월동 안장을 위해 조례를 개정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고인의 부인은 “상징적으로 손톱과 머리카락, 유품 일부를 봉투에 담아 보내겠다”고 한다.


사람은 정(情)의 동물이다. 오래 같이 지내다 보면 사람 간에는 정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부모자식 간의 정, 남녀 간의 정, 형제간의 정, 사제 간의 정, 친구간의 정….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면 ‘물정(物情)’이란 것도 있다. 오래 함께 생활해온 반려동물, 평소 아껴온 기호품, 자신이 태어난 고향, 오래 몸담았던 일터, 자신이 참전했던 전쟁터 등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말한다. 그런 인연으로 해서 한국 땅에 묻힌 외국인, 반대로 외국 땅에 묻힌 한국인이 더러 있다.


일제의 ‘을사늑약’ 강제 체결을 세계에 알린 헐버트 박사는 생전에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하노라’고 유언하였는데 박사는 유언대로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1959년부터 10년 동안 초대 주한 프랑스대사를 지낸 로제 샹바르는 생전에 해인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해인사 뜰에 뿌려 달라”고 유언했는데, 1982년 그가 타계하자 유해는 한국으로 이송돼 해인사 천불동에 뿌려졌다. 2대 주한 일본대사를 지낸 가나야마 역시 한국 땅에 묻히길 희망해 그의 유해 일부가 파주시 모 성당 묘지에 묻혔다.


‘헤이그 밀사’ 3인 가운데 한 분인 이상설 선생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선생은 생전에 “조국광복을 못보고 세상을 떠나니 고혼인들 고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화장한 후 그 재도 수이푼 강에 뿌려 달라”고 해서 화장한 후 수이푼 강에 뿌려졌다.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내가 죽은 뒤에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라고 유언했다. 죽어서라도 고국 땅에 묻히고 싶었던 안 의사의 소망은 여태 이뤄지지 못했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wh_jung&uid=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