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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호중 - 무차별 통신자료 수집은 무차별 권력남용

irene777 2016. 3. 26. 01:26



[정동칼럼]


무차별 통신자료 수집은 무차별 권력남용


- 경향신문  2016년 3월 25일 -





▲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정원·경찰·검찰은 통신회사 등 정보통신사업자로부터 이용자의 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왔다. 통신자료란 정보통신서비스 가입자의 이름,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등의 개인정보를 말한다. KT 등 이동통신사들은 국정원과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으면 개개 시민의 통신자료를 제공한다.


통신자료 제공 현황을 보면, 2015년 상반기에 문서 수로는 56만27건, 전화번호 기준으로는 590만1664건이었다(미래창조과학부 발표). 연간 1000만건 이상의 이용자 통신자료가 국정원이나 수사기관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최근 민주노총을 비롯해서 시민사회단체는 시민들과 함께 이동통신사에 통신자료 제공 여부를 조회해 보자는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 일환으로 3월22일 민주노총이 밝힌 결과는 충격적이다. 조합원들이 각자 이통사에 확인해 본 결과, 국정원이나 수사기관이 지난 1년 동안 총 94명을 대상으로 681차례에 걸쳐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특히 작년 11월과 12월에 509차례의 조회가 집중되었다. 이는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수사를 위해서’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라는 매우 추상적인 요건만 규정하고 있다. 법원의 영장이나 허가도 필요 없다. 사실상 공안·수사기관이 아무런 제약 없이 통신자료를 가져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셈이다.


통신회사들은 국정원이나 경찰·검찰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을까. 법상으로는 통신회사들의 재량이 있지만, 국정원이나 수사기관의 우월적 권력지위를 고려하면 통신회사들이 그 요청을 거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통신회사들은 통신자료 요청이 적절한 것인지 심사할 의무가 없다 보니 거의 자동반사로 통신자료 제공이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의 발표에 의하면, 국정원이 통신자료를 받아간 건수도 83회에 이른다.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서만 수사권이 있고 내국인에 대한 정보수집도 대공·테러정보 등에 한정되어 있는데, 무슨 명분으로 민주노총 조합원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통신자료를 수집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를 제어할 법제도적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통신자료 수집은 국정원이나 수사기관이 비판적인 시민사회 진영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 도구로 활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휴대폰 번호라든가 주민번호는 개인의 다른 정보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마스터키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법체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 공안·수사기관의 권한남용을 제어할 수 없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정원이나 수사기관이 광범위하게 시민들의 통신자료를 수집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나아가서 그 수집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규제가 없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통신자료의 수집은 국가권력의 감시와 사찰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권력남용의 핵심고리인 것이다.


통신자료 제공과 관련한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독립적인 사법부의 영장이나 허가에 의하도록 하고 그 요건도 보다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는 통신자료를 통신사실확인자료(통신내역 등) 제공과 함께 법원의 영장주의가 적용되도록 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3월16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공안·수사기관이 아무런 통제 없이 통신자료를 가져갈 수 있는 현재의 제도가 개인의 정보인권과 프라이버시권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지적하였다. 국정원이나 수사기관이 개인의 통신자료를 원하는 대로 수집할 수 있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민주사회일까. 시민사회가 추진하는 통신자료제공 조회운동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 사회적 운동을 계기로 해서 우리 사회는 권력기관의 대국민사찰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기업들에 당부 한마디. 현재 통신회사는 국정원이나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응해야 할 의무는 없다. 통신회사들이 법원의 영장이 없으면 소중한 개인정보인 통신자료를 함부로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이 어떠한가. 애플사의 팀 쿡 CEO가 스마트폰 암호를 해제해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구에 끈질기게 저항하는 이유에 해답이 있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252040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