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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원호 - 무의미한 한 표와 집합의 기적

irene777 2016. 4. 13. 14:33



[정동칼럼]


무의미한 한 표와 집합의 기적


- 경향신문  2016년 4월 12일 -





▲ 박원호

서울대 교수 (정치학)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선거 이튿날 아침의 풍경을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떤 이는 응원하는 후보와 정당이 이겨서 뿌듯한 마음일 것이고, 다른 이는 선거 개표 방송을 보면서 밤새 실망과 분루를 삼켰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누구건 확실한 것은 여전히 그저께의 그 전철을 타고 익숙한 타인들의 체취를 맡으며 손에 익은 휴대폰으로 애써 얼굴을 가린 채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아마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투표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일지도 모른다는 다운즈와 라이커의 지적에 공감할 수 있다. 후보자들은 식별하기 어려우며, 이들 사이에 엄청난 정책적 간극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한 표가 선거 결과를 뒤바꿀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한다. 이에 반해 투표장에 직접 가서 기표하고 나오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한다면 투표 비용은 아무리 작게 잡아도 상당하다. 이익보다 비용이 크니 투표하는 것은 비합리적 행위이며, 오히려 제대로 된 질문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러 가는가’일 것이다.


더 우울한 연구결과도 있다. 정부 웹사이트에 항의성 댓글을 달고 SNS에서 정치적 토론을 수행하며 시위나 항의집회에 참여하는 유권자들, 즉 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어려운 형태의 정치적 참여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투표라는 쉬운 참여를 덜 한다는 연구결과는 한국정치에서만 발견되는 특이 현상이다. 선거는 지루하고 결과가 나오지 않는 과정임에 반해 즉각적으로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대안적인 참여의 채널을 우리 유권자들이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투표하면 바뀝니다’라는 슬로건이나 ‘무책임한 유권자’라는 질책이 이렇게 선거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들릴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투표하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가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혁명이 시(詩)라면 투표는 호흡이 긴 산문(散文)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산문에 촘촘하게 박힌 글자들로 지루하게 굴러가듯 굴러가지 않는 과정이 정치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이방인의 거리 어느 구석에 있는 영사관으로 몇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한 표를 행사한 수만명의 재외국민들을 이끈 것은 비용과 수익의 대차대조가 아니라 지구 저편 모국(母國)의 정치 설계도에 깨알 같은 한 점을 부가하기 위한 열망이었을 것이다. 그 열망을 우리는 비로소 ‘애국’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정치적 공동체는 이런 작은 희생들이 모여 지속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투표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선거에 처음으로 투표를 하게 된다는 나의 학생 하나는 그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준비한 것도 모자라 이미 사전투표를 하였고 투표당일에는 투표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동료시민들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선거가 우리의 대표자를 뽑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민들을 유권자로 받아들이고 교육시키는 과정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항상 투표율이 대단히 높은 19세, 20세 유권자들이 그 다음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기권한다는 사실은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갓 투표권을 부여받은 이런 젊은 동료 시민들에게 더 알찬 정책적 토론과 더 신명 나는 선거 캠페인 과정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나는 기성세대로서 못내 부끄러울 따름이며 이들과 그 학생을 위해서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최소한은 아마도 투표용지에 나의 미미한 흔적을 남기는 일일 것이다.


선거가 단순히 대표자를 뽑는 과정일 뿐 아니라 유권자의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선거라는 ‘객관식 질문’이라는 형식이 정치에 대한 각자의 복잡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절망적으로 딱딱하고 무디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운 봄날을 가로지르는 세월호의 기억과 미세먼지의 먹먹한 장막, 하염없는 기다림의 고통과 메아리 없는 정치를 향한 울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것이며 어떻게 이 보잘것없는 투표용지에 담을 것인가. 사방이 막힌 기표소에서의 짧은 시간은 또 재촉하듯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거가 만들어내는 ‘집합의 기적(the miracle of aggregation)’을 믿는다. 가까이서 보았을 때는 모자이크의 흩어진 조각들처럼 무의미한 단색의 투표용지들이, 하나둘 모이고 어우러졌을 때 그 큰 그림은 풍부하고 아름다운 설계도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누가 당선되는가와 무관하게 20대 국회는 그 큰 그림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며, 외면한다면 우리는 또 21대 국회의 투표소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는 투표소를 나오면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122045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