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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지봉 - 교차투표에 드러난 민심

irene777 2016. 4. 20. 01:57



[정동칼럼]


교차투표에 드러난 민심


- 경향신문  2016년 4월 17일 -





▲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언론에 의해 이번 4·13총선 결과에 대한 각종 분석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중 하나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지역구 후보 투표와 지지정당 투표를 각각 다른 정당에 하는 소위 ‘교차투표’가 많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전체 253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구 가운데 득표율 1위를 차지한 정당과 당선자의 소속당이 다른 경우가 절반이 넘는 138곳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교차투표가 가능해진 토대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인 2001년 7월19일의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별도의 정당투표 없이 지역구 선거투표만 하게 하고, 정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얻은 득표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을 배분하도록 하고 있던 당시 공직선거법상의 1인 1표제에 대해 9명의 제3기 헌법재판관 전원이 만장일치로 사실상의 위헌결정인 한정위헌결정을 내린 대사건이 발생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와 지지정당에 각각 한 표씩을 투표할 수 있는 오늘날의 1인 2표제가 탄생했다. 즉, 2001년에 헌법재판소가 1인 1표제를 폐지하는 전격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에서 표출된 유권자의 의사를 그대로 정당에 대한 지지의사로 자동적으로 의제해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1인 1표제 한정위헌결정은 주권자이자 투표권자인 국민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국민의 투표를 통한 정치적 의사 표현의 방법을 다양화하고 정교화함으로써 국민의 참정권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헌법학자나 정치학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최근에 그때의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 보았다. 그리고 15년 전의 결정문에 국민의 참정권을 확대하고 헌법 정신을 살리는 공직선거법의 바람직한 개정 방향에 대한 제시가 이미 드러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당시 1인 1표제에 대해 위헌의 근거로 든 것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이런 비례대표 선출방식은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권 보장을 요구하는 헌법상의 민주주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자나 그 후보가 속한 정당 중 어느 일방만을 지지할 경우에 지역구 후보자 개인을 기준으로 투표하든 정당을 기준으로 투표하든 어느 경우에나 자신의 진정한 의사를 정확히 반영시킬 수 없으며, 따라서 후보자든 정당이든 절반의 선택권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불합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불신의 풍조와 맞물려 유권자가 아예 투표권 행사 자체를 포기하게 하는 부작용도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신생 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게 해 기존의 세력정당에 대한 국민의 실제 지지도를 초과해 그 세력정당에 의석을 배분해 주게 되는 결과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원리의 왜곡을 극히 심화시킨다고 본 것이다.


둘째, 선거의 원칙 중 하나인 ‘직접선거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비례대표 의원의 선거는 지역구 의원 선거와는 별도의 선거이므로 이에 대한 유권자의 별도의 의사표시인 별도의 직접투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무소속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들의 평등권이 침해된다고 보았다. 무소속 후보자에 대한 투표는 그 무소속 후보자의 선출에만 기여할 뿐 비례대표 의원의 선출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해 투표가치의 불평등이 발생하고 이것은 무소속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 됨을 근거로 들었다.


이번 선거에서 적지 않은 국민들은 국회의 법 개정이 아닌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탄생한 1인 2표제를 적극 활용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표시했다. 이번에 국민에 의해 선택된 선량들은 선거에서 드러난 국민의 민의가 무엇인지 잘 분석해 이를 제도 개선에 반영하는 데에서부터 의정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선거법과 관련해서는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이 사표(死票)를 대거 발생시키는 소선거구제를 끝내라는 것은 아닌지 차분히 검토하고 사표 발생을 줄이는 중선거구제로의 법 개정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밀실공천’과 당내 실세들에 의한 ‘사천’(私薦)에 분노한 민심을 보았다면 민주적인 공천제도를 구체화하는 정당법 개정에도 시급히 나서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벌써 기득권화해 선거제도나 공천제도에 대한 법 개정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면, 4년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절감했겠지만, 국민은 무섭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172055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