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세월호 참사와 치자(治者)의 도리

irene777 2014. 9. 9. 16:10



세월호 참사와 치자(治者)의 도리


진실의길  정운현 칼럼


2014년 9월 9일 -




세상이 어지럽다. 날이 갈수록 더하다. 상식이 무너지고 신의가 깨어진 때문이다. 사람들 간에 서로를 귀히 여기기는커녕 불쌍히 여기는 인정마저 사라진 지 오래됐다. 공권력의 상징인 검경은 세간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으며,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이럼에도 나라가 지탱되는 것이 용하다 싶다. 개인의 패가망신이 한 순간이듯이 나라가 망하는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거늘 우국(憂國)은 이 시대에도 뜻있는 지사의 몫이 아닐까 싶다.

 

세월호 사고는 실로 참극(慘劇)이었다. 300여 명의 꽃다운 청춘들이 피어나지 못한 채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문제는 그 참극을 전 국민이 함께 지켜봤다는 점이다. 무슨 월드컵 축구경기 생중계라도 되는 듯이. 심야도 아닌 대낮에, 심해도 아닌 연안에서 발생한 해난사고를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해야만 했다. 다시 얘기하지만 멀리 아프리카나 남미 오지에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 21세기 문명대국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이 점을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당일 사고 해역 인근에는 우리 해군과 해경, 그리고 어민들과 외국 배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제 때 제대로 된 연락만 취했어도 희생자 대다수를 살릴 수 있었다. 어민들은 실지로 그런 증언을 한 바도 있다. 사고가 난건 그렇다고 쳐도 그들을 구조하지 못한 것은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행정체계만 갖춰졌어도 이런 참극은 발생하지도 않았고, 또 설사 발생했다손 쳐도 이처럼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순 없는 일이다.

 

갖가지 시국 현안이 칡넝쿨처럼 얽혀있는 이 와중에 ‘공자 말씀’ 같은 한가한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고전의 가르침을 몇 마디 소개해야겠다. 이럴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따져보자는 취지에서다. 작금의 국내의 많은 문제들은 기본이 돼 있지 않아서 생긴 것들이다. 우선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공직자는 공직자답게, 국민은 국민다워야 하나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와 소통, 인사정책, 분배와 복지, 외교 및 국방정책 등 국정의 골간이 모두 엉망인 셈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는 구조선의 말단 해경까지 기본조차도 지키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두고 유가족과 정치권, 여-야간에 벌인 지리한 갈등은 대화부재에서 비롯한 셈이다. 청와대 몫, 국회 몫 따질 것 없이 세월호 사태 해결을 위해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서야 했다. 김영오 씨 등 유가족들이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으나 대통령은 국회가 처리할 문제라며 한사코 만나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유가족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멀리 부산의 자갈치시장을 찾거나 일과시간에 뮤지컬 공연을 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세간의 비난이 쏟아진 건 당연했고, 대다수 사람들은 대통령의 처사를 납득하지 못했다.

 

<서경>의 주서(周書) ‘무일(無逸)’ 편에서 주공은 성왕에게 훈계하기를 “편안함과 즐거움만을 추구한 임금은 반드시 나라와 백성을 망치는 폭군이 되었다”며 문왕을 두고 “미천한 자리에 있는 백성들을 아끼고 보호하시고,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동정하셨습니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식사하실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만백성을 모두 화평하게 하는 데 힘쓰셨습니다.”라며 극찬했다. 주나라 문왕 시절이 태평성대였던 것은 그가 자선지심(慈善之心)으로 백성들을 잘 보살핀 때문이었다. 주공은 군주는 ‘무일(無逸)’, 즉 ‘편안함만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구중궁궐에 갇혀 귀를 닫은 채 오불관언이라는 평가가 많다.





전제 군주시절 임금은 나라의 주인이요, 만백성의 어버이였다면 지금의 대통령은 전 국민의 대표요,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대통령이 무고한 300여명을 희생시킨 세월호 참사를 ‘국회 몫’ 운운하며 유가족들을 매몰차게 내치는 것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다. <안씨가훈>에 “궁지에 몰린 새가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면 불쌍히 여기게 마련”이라고 했다. 또 <맹자> ‘공손추’ 편에 “남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라 할 수 없다”며 사람은 누구에게나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보아 넘기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있다고도 했다. 정녕 이 말이 이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 즉 ‘태산은 한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국의 대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이사(李斯) 열전’에 실려 있는데 참뜻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조차도 수용할 수 있어야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진(秦)나라 때 승상을 지낸 이사(李斯)는 인재를 발탁하는 객경(客卿)이라는 벼슬을 지내던 중 어떤 이가 모종의 음모에 연루돼 축출되자 그를 변호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상소문을 올렸다. “태산은 본디 한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높을 수 있으며 하해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으므로 그 깊음에 이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왕은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음으로써 덕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재등용이든 민원인이든 설사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이든 임금은 백성을 물리쳐선 안된다. 탕왕조차도 “정치를 함에 있어 어찌 백성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으랴” 했거늘 목하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니 딱한 노릇이다.

 

행정부에서 대통령 다음 가는 고위인사는 국무총리이며 옛날로 치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에 해당한다. <사기(史記)> ‘위세가’ 편에 ‘가빈사현처(家貧思賢妻) 국난사량상(國亂思良相)’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풀이하자면 ‘집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집안이 기울면 살림살이를 책임질 슬기로운 아내를 떠올리고, 국난을 당해서는 이를 헤쳐 나갈 어질고 역량 있는 재상을 찾는 것은 응당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국론을 모으고 흩어진 민심을 수습할만한 양상(良相)은 과연 있는가? 양상은커녕 대독총리만도 못한 실정이니 이 또한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인사 실패가 아닐 수 없다.

 

<한비자> ‘망징(亡徵)’ 편에서 한비자는 ‘나라가 망하는 징조’ 47가지를 구체적으로 열거한 바 있다. 그는 망국의 징후들을 제 때 제대로 포착하여 국가를 개혁하지 않으면 멸망의 길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파했다. 그 중 열두 번째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임금의 성품이 너무 강해 신하들과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을 물리치고 신하들에게 이기는 일을 즐기며, 나라의 이익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경솔하게 자신의 믿음에만 의지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