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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한국의 흑역사 형제복지원 사건 재조명

irene777 2016. 5. 3. 03:46



르몽드

한국의 흑역사 형제복지원 사건 재조명


- 정상추 / 뉴스프로  2016년 4월 23일 -




르몽드, 한국의 흑역사 형제복지원 사건 재조명


–  AP 보도로 드러난 군사독재의 가장 어두운 페이지

–  도화선은 박정희, 진상 밝힐 기회를 없앤 건 전두환

–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잊혀져버린 피해자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가 22일 최근 AP통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시 들여다봤다.


필립 퐁스 특파원은 ‘부랑아의 아픈 추억에 사로잡힌 한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부랑아와 장애인, 걸인, 알코올중독자 등을 대상으로 벌어진 강제노역에 대한 이야기”, 형제복지원 사건을 보도했다.


최근 AP통신은 부산 형제복지원 관련 정부 문건을 단독 입수하고 여러 명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해 11쪽에 달하는 장문의 기사를 내보냈다.


퐁스 특파원은 형제복지원 이야기가 “한국에서 가장 잔혹한 일 중 하나”이며, 이 대형 수용시설에서 “벌어진 죽음과 성폭행과 폭력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AP통신의 보도를 인용했다.


88올림픽을 유치하려던 박정희가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거리 정화’를 지시하면서 시작된 이 비극은, 진상 조사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전두환에 의해 더 깊이 각인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들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졌다고 기사는 전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르몽드> 기사 전문이다.


번역 및 감수 : Sang-Phil JEONG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psvejJ




La Corée du Sud hantée par le souvenir de ses enfants vagabonds

부랑아의 아픈 추억에 사로잡힌 한국


LE MONDE | 22.04.2016 à 17h44 • Mis à jour le 23.04.2016 à 11h01


Par Philippe Pons (Tokyo, correspondant)

필립 퐁스 (도쿄, 특파원)




▲ Les enfants font la queue pour “l’assemblée du matin”, à “l’institution” Brothers Home, 

à Busan, en Corée du Sud . Photographie non datée. AP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원생들이 아침 조회를 위해 열을 맞춰 서 있다.



La Corée a une histoire tourmentée. Au Nord, sous la férule du régime des Kim, bien entendu, mais au Sud également. A la suite de la démocratisation, commencée dans son cas en 1988, les pages les plus noires des dictatures militaires, qui se succédèrent depuis 1945, sont peu à peu recensées, inventoriées. C’est le cas des sévices subis du milieu des années 1970 à la fin de la décennie suivante par des enfants vagabonds, des handicapés, des sans-abri et des alcooliques. En 1986, 16 000 de ces indésirables étaient détenus dans 36 établissements à travers le pays dont 4 000 à Brothers Home, une des institutions chargées de les recueillir, à Busan, dans le sud du pays, révèle une enquête de l’agence de presse Associated Press (AP).


한국에는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서슬 퍼런 김 씨 체제하의 북한에서는 흔한 일일 수 있지만 남한에도 있다. 1945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군사독재의 가장 어두운 페이지들이 민주화가 이뤄진 1988년 이후로 조금씩 조사되고, 정리되고 있다.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부랑아와 장애인, 걸인, 알코올중독자 등을 대상으로 벌어진 강제노역에 대한 이야기다. 1986년 전국의 36개 시설에 수용된 이들의 숫자는 1만6천 명에 달했다. 그중 4천 명을 수용했던 부산의 형제복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AP통신이 취재 보도했다.


Y furent commises des « atrocités parmi les pires qu’a connues la Corée du Sud » écrit l’agence de presse. « Personne n’a jamais été tenu responsable des morts, des viols et des violences perpétrés » dans le plus grand centre de rééducation du pays.


기사는 이 이야기를 “한국에서 가장 잔혹한 일 중 하나”라고 말한다. 국내 가장 큰 규모의 수용시설에서 “벌어진 죽음과 성폭행과 폭력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Se fondant sur des témoignages de responsables de l’établissement et de victimes qui jusqu’à présent avaient gardé le silence, AP conclut que « les sévices subis par les détenus étaient pires et plus systématiques qu’on ne le pensait ». La dissimulation des faits fut orchestrée au plus haut niveau du pouvoir : deux enquêtes furent bloquées par une « personnalité qui est actuellement un conseiller du parti au pouvoir ». Les victimes demandent aujourd’hui que la lumière soit faite.


지금까지도 침묵을 지켜왔던 피해자와 수용소 관리자들의 증언을 통해 AP통신은 “수용자에 대한 학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조직적이고 더 악랄했다”고 결론짓고 있다. 사건의 은폐는 권력의 상층부에서 시도되고 있었다. 진상 조사는 “현직 여당의 유력 인사에 의해” 두 차례나 봉쇄됐다. 피해자들은 현재 진상이 규명되기를 바라고 있다.




▲ Les gardiens de “l’institution” Brothers Home, d’anciens détenus, 

déchargent les enfants d’un camion à Busan. AP


부산 형제복지원의 관리자들이 트럭에서 아이들을 내리고 있다. 

관리자 역시 시설에서 강제노역을 하던 이들이었다.



« Torture et viols »

“고문과 성폭행”


En 1975, le général-président Park Chung-hee, auteur d’un putsch militaire en 1961 et père de l’actuelle présidente, donna l’ordre à la police de « purifier » les rues et d’en expulser mendiants, vagabonds et marchands à la sauvette qui donnaient une mauvaise image d’un pays postulant alors pour les Jeux olympiques de 1988. A l’époque, le pays se dégageait de la pauvreté et des séquelles de la guerre (1950-1953), et aspirait à être reconnu.


현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장군은 1975년 경찰에게 거리를 “순화”하라고 지시했다. 1988년 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국가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거지나 부랑자, 노점상 등을 하루빨리 없애야 했다. 당시 한국은 전쟁(1950~1953년)의 여파와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었고 그 점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했다.


Cependant, la plupart des cas ne répondaient pas à la définition du « vagabondage ». Aux violences et sévices s’ajoutait une exploitation de cette main-d’œuvre corvéable à merci. La mortalité était élevée : officiellement 513 cas entre 1975 et 1986 mais sans doute beaucoup plus, écrit AP. Selon les certificats de décès délivrés par le médecin de l’établissement, les morts étaient dues à « une crise cardiaque » ou à « un excès de fatigue ». Les victimes interrogées par AP font état de « torture et de viols ».


그러나 수용자 대부분은 “부랑자”에 해당되지 않았다. 제멋대로 부릴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폭력과 착취가 이뤄졌다. 죽음에 이른 수용자도 늘어나 1975년부터 1986년 사이 공식 사망자가 513명에 달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훨씬 웃돌 것이라고 AP통신은 보고 있다. 수용소의 의료진이 발급한 사망진단서에는 사망 원인이 “심장마비” 또는 “과로사”로 적혀 있다. AP통신이 취재한 피해자들은 “고문과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 “L’institution” Brothers Home, à Busan, Corée du Sud. AP

부산 형제복지원



A la suite d’un raid policier ordonné par un procureur de la ville d’Ulsan en janvier 1987, fut découvert un « univers de camp de concentration » raconte le magistrat. Mais son enquête fut stoppée : Chun Doo-hwan, un autre général qui avait pris le pouvoir à la suite de l’assassinat de Park Chung-hee en 1979, ne voulait pas entacher l’image du pays à la veille des Jeux olympiques de l’année suivante. Lui-même avait un lourd passé : la répression par les troupes d’élite de la rébellion de Kwangju, en mai 1980. Plus de 200 morts civils, tués par balles ou chargés à la baïonnette. Et les victimes de Brothers Homes furent oubliées.


1987년 1월 울산의 한 검사가 지휘하는 경찰 병력이 급습해 “강제수용소의 세계”가 바깥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그의 수사는 곧 벽에 막혔다. 1979년에 살해된 박정희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또 다른 군인 전두환이 이듬해 열리게 될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이미지가 얼룩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전두환 스스로 간단치 않은 과거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시위를 특전사 부대로 강경 진압했다. 200명 넘는 시민이 총에 맞거나 총검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잊혀졌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출처 : https://thenewspro.org/?p=18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