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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좌섭 - ‘비정상’을 돌려놓자

irene777 2016. 5. 5. 16:06



[공감]


‘비정상’을 돌려놓자


- 경향신문  2015년 5월 3일 -





▲ 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격동의 4월이 지나갔다. 총선의 표심은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정부와 여당에 거센 어퍼컷을 날렸고 이제 정치권은 뜻밖의 선거 결과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분주하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여소야대를 만드는 것이었는가, 3당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는가,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을 앞당기는 것이었는가, 뿌리 깊은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것이었는가? 이런 열망의 파편들이 유권자들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고 부분적으로 그런 결과를 가져왔음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그다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고 꿈꾸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이다. 정상적인 것과 상식적인 것이 통하는 사회, 정상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사회, 평범한 아이들이 즐겁게 자라는 사회, 노동이 귀하게 받들어지는 사회, 이런 것들이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사람들 위에 권력으로 군림하는 ‘빅 보스’들이 여전히 정치, 사회적 지도층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은 크고 작은 ‘빅 보스’ 밑에서 하루하루의 생존을 걱정하면서 연명하고 있다. 사회적인 삶의 주된 이유는 이윤의 극대화에 있고 언제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거친 세상 속에서 몸보신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가치로 여겨진다.


이 같은 우리의 자화상은 스스로 만들어놓은 철책에 갇혀 매일 탈출을 꿈꾸는 어리석고 가련한 모습들이다. 그렇지 않다고? 자신을 돌아보아 믿기지 않으면 우리의 아이들을 보자. 우리가 만들어놓은 교육시스템의 포로가 되어 자유롭고 창의적인 놀이 대신에 학원 과외와 스펙 쌓기에 허덕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으로부터 우리의 자화상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경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경쟁의 규칙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것도 우리가 만든 것이고 그렇기에 합의를 통해 우리가 바꿀 수 있다. 바꾸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무능이고 바꾸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비정상의 예들은 수없이 많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노동은 노예의 삶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노동은 ‘모든 인간생활의 첫째 가는 근본조건으로서 어떤 의미에서는 노동이 인간 자체를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진화론적으로 봐도 정교한 손놀림의 노동은 인류의 두뇌 진화에 필수 전제였으며, 노동은 인간의 자기실현, 참된 자유의 행위이다. 노동의 본질은 이러하지만 21세기 한국처럼 계층 간 이동사다리마저 끊긴 완성된 계급사회에서는 노동이 인간의 자기실현 활동이 되지 못한다. 요컨대 참다운 자유의 활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의 문명이 존속하기 위해서 노동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누군가는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을 통해서만 문명은 발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온전하고 균형있게 발달한 자본주의는 노동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사회정치적 체계를 만들고 발전시켜왔다.


비정상적인 것들이 정상적인 것들보다 받들어지는 ‘거꾸로 선’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바라고 꿈꾸는 것은 ‘정상의 회복’이다. 프랑스의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조르주 캉길렘은 저서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에서 ‘정치적 위기에 대한 치유는 사회를 그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구조로 되돌림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했다.


치유를 위한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구조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다만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기에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조직의 변화를 위한 워크숍을 할 때면 참가자들에게 인용해주는 브라질 속담이 있다. ‘내가 홀로 꿈을 꾸면 그저 꿈일 뿐이지만, 우리가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의 시작이 되고, 우리가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 천국을 지상에 건설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03203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