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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러 유가족은 정부를 원망하지 않는다고요?

irene777 2014. 9. 14. 03:02



미국 테러 유가족은 정부를 원망하지 않는다고요?

“오바마 행정부 강력히 비판하는 참수 유가족이 미국 애국심은 맞다”


- 민중의소리 <기자수첩>  2014년 9월 12일 -




지난 11일(아래 현지시각) 한국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이인제 최고위원은 뜬금없이 “이제 추석 연휴가 끝나고 새롭게 출발하는 마당에 세월호 유족들이 IS(이슬람국가)에 의해 두 번째로 희생당한 스티븐 소틀로프의 가족들이 보여준 진정한 애국심과 용기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IS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희생당한 두 번째 가족이 대변인을 통해 ‘우리의 적인 IS의 유일한 무기인 공포로부터 미국이 볼모로 잡혀선 안된다’고 발표했다”며 “유가족들이 사랑하는 아들, 남편, 아버지가 희생당한 그 순간에 지켜주지 못한 미국이나 정부를 원망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히려 적의 공포로부터 미국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미국에서 실시간 중동 사태를 포함해 국제관계를 취재하며 기사를 송고하고 있는 기자는 침소봉대는 고사하고 한 문장만 슬쩍 따서 미국 유가족의 취지와는 전혀 다르게 언급된 이 발언에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인제 최고위원이 당일 행한 발언의 전체를 보면 왜 미국 유가족에 대해 이러한 새빨간 거짓말을 했는지 짐작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인제 최고위원의 이날 발언은 보수 여당이 현재 잘 써먹고 있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이번에는 한발 더 나가 “이제 이 충격과 슬픔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이 유가족의 진정한 뜻이자 이익이고 희생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일”이라며 말했다. 쉽게 말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미국 IS 참사 유가족들처럼 정부를 원망하지 말고 이제는 애국심을 발휘해 좀 조용히 있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인제 최고위원 말대로 미국의 참수 유가족은 애국심을 발휘하고 정부를 원망하지 않으며 조용히(?) 있는 것일까? 우선 이 최고위원이 인용한 유가족 성명서 발언의 원문을 살펴보자. 해당 내용은 두 번째로 IS에 의해 참수된 스티븐 소틀로프의 가족 성명서를 대변인이 지난 3일 발표한 것이다. 이 성명서 내용의 핵심은 미국 정부나 애국심을 언급한 것은 전혀 없고 자신의 아들을 참수한 IS의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를 정면 겨냥한 것이다.


성명서는 평소 이슬람도 잘 이해하며 착하게 살아온 아들을 왜 IS가 참수했는지를 묻고 이것은 최고의 ‘죄악(Wayluk, 이슬람식 발언)’이라며 왜 IS가 자비(mercy)를 행하라는 이슬람 율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아들을 참수했는지를 묻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유가족은) 내 손에 칼을 들고 있지 않으며 호의적으로 당신과 논쟁하기 위해 여기에 있으며 당신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슬픔에 잠겨 있으며 이번 주 우리는 통곡하였지만, 우리는 이런 시련에서 벗어날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적이 단지 두려움이라는 단순한 무기를 가지고 우리를 인질로 잡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I am here debating you with kindness. I don't have a sword in my hand, and I am ready for your answer. Today, we grieve. This week, we mourn. But we will emerge from this ordeal. We will not allow our enemies to hold us hostage with the sole weapons they possess, fear.)


다시 말해 IS 참수 유가족이 발표한 이 성명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왜 이슬람 율법을 어기면서 이러한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밝히라는 것이며, 그러한 칼을 드는 공포로 우리를 인질로 잡는 것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이 한순간에 둔갑하여 ”우리의 적인 IS의 유일한 무기인 공포로부터 미국이 볼모로 잡혀선 안된다”며 가족에서 미국으로 확대되었고 더 나아가 “희생당한 그 순간에 지켜주지 못한 미국이나 정부를 원망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히려 적의 공포로부터 미국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는 말로 새빨갛게 둔갑되었던 것이다.




미 IS 참수 유가족 연일 오바마 행정부 강도 높게 비난… “미국이 아들을 죽였다”




▲ 미 CNN 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는 참수된 제임스 폴리의 어머니  ⓒCNN 방송화면 캡처



그렇다면 이는 별도로 하더라도 이인제 최고위원이 주장하고 있는 미국 IS 참수 유가족들은 미국 정부를 원망하지 않고 애국심만 강조(이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하고 있는 것일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인제 최고위원이 완전히 둔갑해 인용한 이 가족 성명서를 발표한 고 스티븐 소틀로프의 친구이자 가족을 대변하는 변호사인 바락 바피는 지난 8일, CNN에 출연해 “미 행정부가 이번 참수 사건과 관련해 발표한 많은 성명서가 잘못되었다”며 오바마 행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는 수시로 가족들에게 소틀로프에 관해 정보를 제공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면서 “백악관과 정부 관련 부서가 관료 파벌로 혼란에 빠져 있으며 이런 주장들이 계속된다면 유가족들은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발언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인질 구출 작전이 실패한 것을 예로 들며 “백악관이 수시로 인질들의 거처가 옮겨져 실패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올해 초에는 거의 한 군데에 고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바피 변호사는 이어 “미 행정부는 인질을 마치 저당물(pawn) 취급해 소트로프 가족과 오바마 행정부의 사이가 극도로 꼬여(strained) 있었다”며 “참수 비디오가 공개된 이후에도 백악관은 유가족의 단순한 요구도 거부하는 등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유가족을 돕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특히, 유가족들은 외교정책의 거대한 난맥상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닌 평범한 시민일 뿐”이라며 “유가족들은 행정부로부터 더욱 존중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오바마 행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그렇다면, 이인제 최고위원이 언급하지 않은 IS에 의해 처음 참수된 제임스 폴리의 유가족들은 어떨까? 아들의 죽음에도 애국심만을 강조하고 있을까? 전혀 아니다. 9/11테러 13주년이 되는 11일, 미 CNN 방송은 참수를 당한 기자인 제임스 폴리의 어머니인 다이엔 폴리 여사를 단독 인터뷰했다. 그녀는 이 방송에서 “미국민으로서 나는 당황스럽고 오싹해져 있다(As an American I'm embarrassed and appalled.)”며 강도 높게 미국 행정부에 대한 불만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녀는 “나는 진실로 우리나라(미국)가 아들을 죽였다고 느낀다(I really feel our country let Jim down.)”며 “아들이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 미 행정부 관계자는 몸값(ransom)을 위한 기부금을 모집하는 행위를 한다면 조사를 하거나 감옥에 보낼 수 있다며 협박했다”면서 오바마 행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또한, 인질 구출 작전이 실패했음에도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고 발언한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 등 미 행정부 관계자들도 거친 비난으로 몰아세웠다.


그녀는 이어 “FBI가 집에 오기 이전부터 이미 아들의 납치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지난 20개월은 시련의 시간이었으며 아들을 구출하고자 하는 노력을 오바마 행정부는 짜증(annoyance)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들에게는 아들 구출이 절박한 전략적 이해도 아니고 우선순위(priority)도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행정부를 비난했다.


그녀는 이어 최근 오바마의 연설도 보았다며 하지만 “행정부는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기를 기도한다”며 “미국 시민이 가장 잘 다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인정해야 한다"며 미 행정부의 강경한 인질 협상 전략을 바꿀 것을 역설했다. 이어 “폭력에 대해 더욱 큰 폭력으로 마주하는 것은 정답이 될 수 없다”며 “(결국) 이러한 공습이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오바마 행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기자는 새누리당의 의중(?)을 대변하고 있는 이인제 최고위원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미국 IS 참수 유가족들의 발언을 왜곡해 가면서까지 인용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으로 말하면 저녁 종합 뉴스 시간대에 그것도 9/11테러 13주년이 되는 날에 미 CNN 방송의 대표 프로그램인 ‘앤더슨 쿠퍼’ 방송에 참수된 유가족이 직접 나와 미 행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기자는 한국에서 KBS를 비롯한 주요 방송들이 세월호 유가족이나 대변인을 직접 인터뷰해 정부에 대한 요구 사항 등을 방영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애국심은 강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새누리당이 미국에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이 점이다.



- 민중의소리  김원식 뉴욕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