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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경집 - 장막을 걷어내야 빛이 보인다

irene777 2016. 6. 11. 00:42



[김경집의 고장난 저울]


장막을 걷어내야 빛이 보인다


- 경향신문  2016년 62일 -





▲ 김경집

  인문학자



진시황도 끝내 죽었다. 자신의 무덤에 수많은 병마용(兵馬俑)을 세웠다. 자신의 사후세계를 지켜줄 요량으로. 그러나 그것들은 허수아비[俑]일 뿐. 그도 죽음의 벽을 뚫지는 못했다. 인간의 필연이다. 다행히 그는 총명하고 촉망받는 장남을 뒀다. 부소(扶蘇)였다. 그는 분서갱유를 반대해서 부황의 노여움을 사 변방으로 보내졌다. 시황제가 적자인 부소를 제왕 자질을 갖추도록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분명 좌천이다. 몽염 등 장수들이 그를 따랐다. 그러나 부소는 황제가 되지 못했다. 똑똑한 황제는 권력을 독점한 귀족관료에게 부담스럽다. 순행 중이던 황제가 급사하자 환관 조고와 승상 이사는 그 죽음을 비밀에 부쳤다.





두 사람은 만만한 막내 호해를 황제로 옹립했다. 또 거짓 조서를 꾸며 부소에게 죽음을 요구했다. 몽염에게도 죽음을 요구했다. 몽염은 황제의 명령을 의심했다. 몽염은 부소에게 날조 가능성을 제기하며 따르지 말 것을 권했다. 그러나 부소는 아버지의 명령을 의심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며 거절하며 자결했다. 몽염은 옥에 갇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제 세상은 조고와 이사의 것이 되었다. 이사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동시에 진나라를 멸망시킨 사람이다. 거짓 조서로 부소를 죽게 하고 호해를 황제로 세웠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가담했던 건 아니다. 그는 조고의 계획을 반대했다.


그러나 조고가 그의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강인하고 용맹스러우며 백성들이 따르는 부소가 황제가 되면 몽염 장군을 재상으로 삼을 것이며 그러면 승상께서는 열후의 지위를 유지한 채 향리로 은퇴하여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결국 그는 악마와 손을 잡았다. 조고는 호해의 스승이기도 했다.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호해가 황제가 되었다.


이사는 재능도 지모도 뛰어났다. 그러나 품행은 좋지 않았다. 그는 명리만을 좇는 인물이었다. 자기보다 뛰어난 한비자를 모함해서 죽였다. 명리에 대한 강한 욕심은 끝내 지조를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고는 그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이사는 호해의 어리석음과 무능의 그릇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호해를 택했고 그에게 아부했다. 그는 희대의 간신 조고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나쁜 계책을 내놓았다. 그렇게 진의 멸망을 재촉했다.


환관 조고는 정적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심복들로 조정을 채웠다. 황제도 갖고 놀았다. 유명한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였다. 이제는 이사도 거추장스러웠다. 결국 이사는 조고에게 죽임을 당했다. 조고는 황제를 고립시켰다. 황제에게는 신비주의를 부추겼다. 무능하고 어린 황제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모든 걸 조고에게 맡겼다. 아무도 조고를 제어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가 황제를 꿈꿨다. 호해를 죽이기로 했다.


병사들을 시켜 진나라 군복이 아닌 흰옷을 입혀 궁을 포위했다. 조고는 호해에게 적군이 침입하여 궁을 완전히 포위했다고 알렸다. 황제 호해가 보니 사실이었다. 결국 그는 조고의 권유를 받아들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게 무능한 황제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렇게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가 허무하게도 급속히 멸망했다. 물론 조고가 황제가 될 수는 없었다. 권력의 맛에 취해 점점 더 큰 권력을 추구했을 뿐. 결국 그는 제국을 멸망시켰을 뿐이다.


모든 권력의 멸망은 소통의 부재와 독선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그게 역사의 교훈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측근뿐이라고 여기는 순간 재앙이 시작된다. 소통과 대화는 정치의 생명이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사회와 국가가 제대로 작동된다. 그게 망가졌다. 최고의 권력을 독점하면서 감당할 능력도 없다. 그러면 사회가 썩고 국가가 쇠퇴한다. 그건 필연이다. 뛰어난 황제도 그걸 못하면 무능한 군주가 된다. 하물며 그릇도 되지 않는데 측근에만 의존하면 재앙이다. 호가호위만 난무한다. 조고를 키운 건 진시황이었다. 그 조고가 제국을 멸망시켰다.


아무리 최측근이라도 구설에 오르면 일단 물리는 게 정치고 도리다. 나중에 다시 쓰면 될 일이었다. 세월호 사건 때 물러났어야 했다. 그런데 끝내 그들을 품었다. 아무리 ‘믿을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해도 그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은 그렇게 건재했다.


그 이후 그들이 원했건 아니건 그들은 권력의 진짜 핵심이 되었다. 마땅히 물러날 상황에서도 절대신임을 보장받았으니 모두가 그들에게 굽신댔다. 휴전선 목함지뢰사건 때 국방장관은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하지 못했다. 그는 추궁을 당하자 비서실에 보고했다고 토설했다. 말은 비서실이지만 누구에게 보고했는지 모두 다 짐작한다. 국가안보를 책임진 장관의 처세가 가엽다. 그런 한심한 장관을 보는 국민은 불쌍하다. 그런데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넘어간다. 그게 어디 한두 건이고 한두 번인가. 그런데도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다. 꼭 지록위마로 권력을 과시할 필요도 없다. 이미 미리 알아서 기니까. 유능한 책사라도 권력에 취하면 어리석어진다. 이사의 몰락은 그 상징이다. 하물며 무능하되 잔꾀에 능하고 편협하면 결과는 뻔하다. 그게 조고의 모습이다.


누구나 차후의 신변을 걱정한다. 최고권력을 누린 사람은 더 할 것이다. 그걸 누렸던 것으로 족해야 한다. 이만큼 망친 걸로 이미 과분하다. 그걸로 끝내야 한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그런데 그 화가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와 미래, 그리고 민주주의에 재앙이다. 쓸데없는 욕망을 접고 내려놓아야 한다. 품어야 할 사람은 버리고 내쳐야 되는 사람은 품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걸 심판받았는데도 오불관언이고 적반하장이다.


20대 국회가 시작됐다. 그러나 거부권이라는 어깃장을 안긴다. 언제는 일하지 않는 국회라 비난하더니. 새로운 국회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러려면 권력의 핵심부부터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런데 거죽조차 벗겨내려 하지 않는다. 홍위병을 자처하는 세력은 여전히 집권당을 틀어쥐고 혁신을 거부한다. 이러고 새 시대를 희망할 수 없다. 어리석음이 과하면 패망을 자초한다. 진시황과 호해, 부소와 몽염, 이사와 조고. 최악의 조합은 결국 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불행히도 그 역사가 반복되는 걸 본다. 그러나 절망조차 사치인 시대다. 절망과 체념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 모두 어리석은 장막을 걷어내야 할 때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과하게 욕심내며 살지 말자.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022113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