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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재미난 상상… 정욱식 저 - "말과 칼"

irene777 2016. 6. 30. 17:55



[독후감]


재미난 상상… 정욱식 저 <말과 칼>을 읽고

‘두 가지 한국에 관한 정치적 상상력’


진실의길  정운현 칼럼


- 2016년 6월 23일 -




1. 바야흐로 소설이 대세인 모양이다. 너도나도 소설이다. 안보전문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소설을 펴냈다. 하긴 팩트(fact)를 목숨처럼 여겨온 기자 출신인 필자도 2년 전에 소설(<작전명 녹두>, 전 2권, 책보세 펴냄)을 썼으니 말이다. 필자 이전에는 역시 기자 출신인 손석춘 전 한겨레 논설위원도 소설을 여럿 펴낸 바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영역 확장’ 차원인지 아니면 ‘고육지책의 몸부림’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2. 여태 필자는 ‘헬조선’은 먹고 사는 분야, 즉 노동, 복지, 취업 등의 문제로만 국한해 생각해 왔다. 그것이 단견이었음을 정욱식의 소설을 통해 뒤늦게 깨달았다. ‘헬조선’은 경제 말고 안보-남북문제 측면에서도 접근해볼 수 있고, 또 어쩌면 그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보문제를 ‘헬조선’, 또는 그와 정반대인 ‘웰조선’과 접목시킨 정욱식의 발상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식이라면 모든 분야에서 헬조선/웰조선의 유쾌-통쾌한 상상이 가능하리라 본다.




▲ 정욱식 저 <말과 칼> 표지



3. ‘두 가지 한국에 관한 정치적 상상력’이란 부제가 말하듯이 이 소설은 두 가지 상황을 가상하여 쓴 소설이다. 즉,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남북문제가 잘 풀린 경우가 절반, 그 반대의 경우가 절반이다. 저자는 ‘저자의 말’에서 진영논리의 눈으로 보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진영논리로 읽히고 만다. 양자의 접근 및 해결방식이 하늘과 땅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둘 가운데 먼저 본 것은 ‘헬조선편’. ‘헬조선’에서는 2017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대선후보 손시열이 당선된다. (미국은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된다.) 이들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북한의 핵무기를 거론하면서 한국 내 사드 배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심지어 ‘1+1’, 즉 미국이 전략적 차원에서 1개 포대를 배치하면 한국이 1개 포대를 자비로 구입하는 문제를 들고 나온다. 북한과 중국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불문가지다.


게다가 손시열 정부는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을 공언하고 나선다. 핵 통제권 문제를 두고 미국은 반발하고 한미 간에는 갈등이 생겨난다. 그즈음 중국이 사드 배치 문제를 걸고넘어진다. 한국정부는 “사드는 대북 억제용”이라고 강변하나 중국정부는 곧이듣지 않는다. 마침내 중국 정부는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다. 증시는 곤두박질치고 한국제품 불매운동과 한국여행 취소가 줄을 잇는다. 심지어 2010년 다오위다오 사건 때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해 항복을 받아낸 사례를 상기하면서 한국의 ‘급소’ 찾기에 나선다. 여기에 북한이 가세하고 나선다. 북한은 개성공단에 군부대를 주둔시키는가 하면 동해상에 잇따라 탄도미사일과 방사포를 발사해 긴장을 고조시킨다. 마침내 손시열 대통령 입에서 ‘대통령 짓도 못해먹겠어’라는 자조가 튀어나올 지경에 이른다. 여기에 일본의 아베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을 위해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며 골을 지르고 나선다. 남북 간에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되고 국내 외국인 투자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 자리를 외국의 종군기자들이 채우게 되는데 이들은 ‘코리아, 전쟁위기가 시작됐다’며 불구경을 즐기려는 듯 한 태도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국내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새로 들어선 손시열 정부의 외교-안보 노선 때문이었다. 말은 않지만 소설은 ‘2017년 우리는 어떤 산택을 할 것인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4. 책을 거꾸로 돌려 반대로 읽기 시작하면 ‘웰조선편’이 등장한다. 2017년 대선 두 달 전,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 3당 핵심 선거 전략가가 모여 야당 차원의 선거 전략을 논의한다. 3당은 야권 후보단일화에 이어 공동공약과 예비내각까지 짠다. 실력과 대중성을 겸비한 인사들을 포진시키다. 안보 공약에서 사드와 대북정책 문제를 두고 ‘선 북핵 협상, 후 사드 검토’로 의견을 모은다. 이는 북한과 미국 모두를 설득하는 데0 유용한 카드다. 심지어 중국조차도. 이밖에 위안부 합의 무효화와 재협상, 그리고 ‘자식이 행복해야 부모가 편안해진다’는 슬로건으로 세대갈등론에 맞서 세대연대론을 들고 나온다.


대선에서는 야권의 최서희 후보가 당선된다. 그는 대학동기이자 통일외교안보 핵심참모인 ‘강의지’를 발탁해 남북비밀접촉은 물론 중국, 미국에 특사로 파견해 다양한 채널로 이 문제 조율에 나선다. 최서희 대통령은 대선 공약인 ‘선 북핵 협상, 후 사드 검토’ 기조를 거듭 강조하며 중국과의 마찰 최소화에 진력한다. 한국이 대중의존도는 30% 가까이 되나 중국의 대한의존도는 4%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강의지는 최서희 당선자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의 시진핑을 만나 양해를 구한 후 북한으로 건너가 김정은과 마주 앉았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자 김정은은 한국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며 맞받아치고 나온다. 그러나 첫 만남은 향후 만남의 ‘시작’이었고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강의지가 귀국한 후 최서희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비상한 각오로 핵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천명하는 데 이는 북한 김정은과 미국의 주목을 끌어낸다. 힐러리는 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입장에 동의를 표했으며, 최 대통령은 힐러리에게 김정은을 만나보도록 권하는 등 예전에 없던 주도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러자 국내에서 보수파들이 브레이크를 걸고 나왔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의 중간단계로 핵 동결을 설정하고 이를 평화협정과 조율하는 문제를 두고 전시작전권 환수 및 주한미군 철수로 인식한 때문이었다. 이들은 최서희 대통령을 두고 “노무현 이후 10년 만에 반미·종북 대통령이 등장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주한 미국대사가 최 대통령의 입장을 찬성하고 나서면서 이들은 망신만 당하게 된다. 게다가 보수경제단체인 전경련도 정부의 입장에 찬동하고 나선다. 심지어 최 대통령은 대북특사단에 새누리당 인사를 파견해달라고 새누리당 대표에게 요청하였으나 새누리당은 거절하였다. 이런저런 이유를 댔지만 실상은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탓이다. 최종적으로 미국과의 조율을 거쳐 최서희 대통령이 평양으로 날아가 김정은을 만난다. 몇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북한의 ‘핵동결’에 합의를 이끌어 낸다. 이튿날 2차 회담에서는 평화협정 체결과 4자회담까지 진전을 이룬다. 남북관계 10년간의 공백지대를 일거에 이어냈다. 회담 후 모란봉 악단 공연장에서 최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미국 NBA스타 로드맨과 요즘도 연락을 하느냐고 묻고는 자신도 농구를 좋아한다며 다음번에 1:1로 농구를 한 게임 하자고 제안한다. 김정은도 얼떨결에 동의하고는 “허허, 이런 식으로 다음번 수뇌회담을 하자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아, 이거 아버지뻘 되는 분의 제안인데 거절할 수도 없고……” 두 사람은 어느덧 손을 잡고 있었다.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이제 남은 하나는 북미회담. 이 흐름에서 보면 북미회담도 손에 잡힐 듯 했다. 그렇게 된다면 남북 간에 평화협정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야말로 ‘웰조선’의 날이 열리는 것이다.




 ▲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5. 위 내용은 소설의 큰 흐름만을 잡은 것이다. 곳곳에 등장하는 군사안보 용어며 무기정보는 저자가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임을 실감케 한다. 적어도 90년대 이후 북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분쟁사나 흐름을 한 손에 꿰듯 보여주고 있다. 읽는 재미와 함께 저절로 북핵 협상사(史)를 읽는 셈이 된다. 특히 저자는 남북한, 미국, 중국 등 이해당사국의 입장을 훤히 꿰고서 그들의 장단점과 속셈마저 헤아리고 있다. 전문가 냄새가 그냥 풀풀 난다. 게다가 재기발랄한 발상 또한 빼놓을 수 없다.



6. 다시 ‘소설’ 얘기다. 저자 정욱식 대표는 이번 소설을 두고 ‘소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논픽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세미 픽션’과 ‘소설 픽션’이라고 했다. 그 무엇이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재미와 유익함이 있느냐의 여부다. 배고픈 자에게 한식이냐, 중식이냐, 일식이냐는 그리 중요치 않다. 맛있고 양 많으면 그만이다. 그 자신이 고백했지만, 그간 10여 권의 책을 썼으나 재미도 없고 존재감도 없다면 이제 갈 길은 정해졌다. 사람들이 좀 더 재미있고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는 이번 소설과 같은 류의 소설을 계속해서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욱식 대표가 장차 ‘안보전문가 겸 소설가’라는 명함을 돌릴 지도 모르겠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wh_jung&uid=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