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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진석 - 안방 차지한 실손보험

irene777 2016. 7. 5. 14:59



[정동칼럼]


안방 차지한 실손보험


- 경향신문  2016년 7월 3일 -





▲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



“옛날 옛적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착한 총각이 있었다. 하루는 총각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피투성이가 된 호랑이를 발견했다. 총각은 호랑이를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정성껏 돌봤고, 그 덕택에 호랑이는 건강을 되찾았다. 그런데 호랑이는 숲으로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총각을 위협해 안방을 떡하니 차지하고, 총각과 홀어머니를 헛간으로 쫓아버렸다. 그리고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수탉과 개를 잡아먹어 버렸다. 마지막 남은 당나귀도 언제 호랑이 밥이 될지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 전래동화 ‘꾀 많은 당나귀’의 내용이다.


자칭 제2의 건강보험이라는 실손보험의 행패가 동화 속 ‘호랑이’ 못지않다. 실손보험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직전인 2006년,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위원장 한명숙 국무총리)는 실손보험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실손보험의 보장 범위와 수준을 제한하라는 것도 원칙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초기 시장 선점에 혈안이 된 보험사들은 정부의 원칙을 깡그리 무시했다. 보험 원리에 부합하지 않은 것까지 보장 항목에 포함하고, 진료비 본인 부담 전액을 보장하는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이렇게 무분별한 보험상품은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보험사가 이렇듯 막무가내로 굴 수 있었던 것은 주무 부처인 금융당국의 방조 덕분이었다. 곧 있으면 보수정부가 들어설 테니, 그때까지만 잘 버티자는 심산이었던 듯하다.


이렇게 첫발을 뗀 실손보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안방을 내놓으라며 으르렁대고, 수탉과 개도 잡아먹겠다고 나섰다. 먼저 국민건강보험이 보유한 국민의 개인질병정보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세상 그 어느 나라에서도 사기업의 영업 활동을 위해 공보험의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는 없다. 민간의료보험의 천국인 미국에서조차도 이런 발상은 상상도 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금융당국까지 나서서 보험사에 국민의 개인질병정보를 넘기라고 윽박질렀다.


그다음에는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실손보험의 진료비 심사를 떠맡아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실제 발생한 진료비를 기준으로 보상해주는 실손보험의 특성상, 진료비 심사는 보험사가 갖추어야 할 필수 기능이다.


우리나라 보험사들이 이런 준비를 제대로 했을 리 만무하다. 상품을 관리할 능력도 없으면서, 판매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그러고서는 뒷수습을 공공기관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국민이 보험사 영업을 도와주라고 건강보험료를 내는 것이 아니다.


불똥은 실손보험 가입자에게도 튀었다. 혜택은 줄었고, 보험료는 올랐다. 보험사와 금융당국의 합작품이었다. 가입자와 의료기관이 공모해 과잉진료를 하고, 이 때문에 보험사가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고 여론몰이를 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만든 장본인은 바로 보험사 자신이다. 정부가 뜯어말리는데도, 심각한 결함이 있는 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한 보험사가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대책 어디에도 보험사에 부담이 되는 조치는 찾아볼 수 없다. 이익은 보험사의 몫이고, 책임과 손실은 오로지 가입자의 몫으로 돌아왔다. 보험사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기대한 만큼의 막대한 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 와중에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은 이중의 피해를 떠안고 있다. 실손보험으로 의료이용이 늘어나면서, 국민건강보험 지출도 덩달아 늘었고, 결과적으로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의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했더니, 보험사가 가만히 앉아 불로소득을 챙기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면서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 액수가 줄어들었지만, 그 혜택을 가입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있다.


이렇게 올린 불로소득만 2조5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보험사는 실손보험료로 이익을 남기고,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이루어진 보장성 강화를 통해서도 이익을 남기는 이중의 수입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실손보험 가입자, 국민건강보험, 국민이 모두 실손보험의 호갱이다.


전체 가구의 약 80%가 실손보험에 가입해서, 국민건강보험료의 3배나 되는 실손보험료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건강보험을 보충한다던 실손보험이 이제는 더 큰 덩치로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할 사안이 아니다.


전래동화의 결말은 이렇다. 당나귀가 꾀를 내서, 호랑이 목에 연자방아 멍에를 채운다. 그리고 굶어 죽은 호랑이 가죽을 팔아서 총각은 홀어머니와 함께 오래오래 잘살았다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도 꾀 많은 당나귀와 연자방아가 필요하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032107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