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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지봉 -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irene777 2016. 7. 12. 02:38



[정동칼럼]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 경향신문  2016년 7월 10일 -





▲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요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문제로 여의도가 시끄럽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 등에서 촉발된 이 논의가 이제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 폐지로까지 옮겨가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헌법이 부여한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을 개헌을 거치지 않고 폐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두 특권을 헌법이 국회의원의 특권으로 보장한 데에는 국내외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중요한 인정 취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특권으로 정의된다. 헌법 제45조에 규정돼 있다. 국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삼권분립원리에 입각한 ‘행정부 견제’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행정권력은 자신들에 대해 이러한 감시와 비판·견제기능을 수행하는 국회의원들이 늘 달가울 수만은 없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행정권력이 국회의원들의 직무수행과 관련해 부당한 탄압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이 지점에 존재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고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오로지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국회 내에서 발언과 표결 등의 직무수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면책특권이다.


주목할 것은 고의적인 중상모략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발언은 지금도 면책특권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도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등까지 면책특권 대상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면책특권에 의해 국회 외에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국회 내에서의 징계책임까지 면제받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의 발언이 국회법이나 의사규칙에 규정된 징계사유에 해당하면 국회가 징계처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때 면제되는 책임은 ‘법적 책임’만을 의미하므로 ‘정치적 책임’은 얼마든지 물을 수 있다.


소속정당이 문제를 일으킨 국회의원에 대해 징계처분을 내릴 수 있고, 무엇보다 다음 총선에서 그 국회의원은 낙선을 통해 정치적 책임을 추궁당하기 쉽다. 면책특권의 보호막 뒤에 숨어 ‘아니면 말고 식’의 무분별한 폭로를 일삼는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다음 선거에서 낙선시키면 된다. 국회의원에게는 ‘낙선’이 가장 무서운 처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면책특권은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꼭 필요한 특권이기도 하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6년 10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인 유성환 의원이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발언했고, 발언 내용을 원내기자실에서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됐다가 6년 후 면책특권을 적용받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지금 보면 너무나 당연한 발언이지만 당시에는 면책특권 적용 여부가 크게 논란이 된 문제 발언이었다. 면책특권이 보장돼 국회의원들이 국회 내에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이 현행범이 아닌 한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되지 않고, 만약 회기 전에 체포되어 구금된 경우에도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에 석방될 수 있는 특권을 의미한다. 헌법 제44조에 규정돼 있다. 영국에서 의회권력을 탄압하기 위해 전제군주에 의한 의원의 불법체포와 불법구금이 횡행하자 이를 막기 위해 영국 의회가 군주와의 오랜 투쟁을 통해 얻어낸 특권이 바로 불체포특권이다. 미국 헌법을 거쳐 오늘날에는 민주국가의 헌법이면 예외 없이 이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국회 내에서의 발언이나 표결에 대한 법적 책임이 영원히 면제되는 면책특권과 달리,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이 범법행위를 한 경우에도 회기 중에는 체포나 구금을 면할 수 있는 것뿐이며 그 범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이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면책특권과 구분된다. 특히 이 두 특권은 많은 경우에 행정권력에 동조하고 협조하는 여당 의원들보다는 행정권력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보다 현실적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여당 의원들이 “우리도 내려놓을 테니 야당도 내려놓으라”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의 특권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이들 특권을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악용하지 않고, ‘국회의원으로서의 원활한 직무수행’이라는 원래의 취지대로 사용한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으며, 오히려 의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믿는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02048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