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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태만 - 99%가 아닌 것들에게

irene777 2016. 7. 12. 18:47



[기고]


99%가 아닌 것들에게


- 경향신문  2016년 7월 11일 -





▲ 김태만

한국해양대 국제대학 학장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망언이 폭염에 지친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온통 ‘갑질’ 세상이라 국민들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라는 대사를 들었을 때만 해도 씁쓸하고 불편한 마음이긴 했다.


하지만, 영화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렇지만 이번에 교육부 공무원에게 개·돼지 취급을 당하고 보니 그 분노와 모욕감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


국민 99%가 개·돼지인 데 반해, 자신은 1%를 향해 열심히 살고 있단다. 신분제를 부활해 개·돼지들이 더 이상 자신 같은 1%의 영역을 넘보지 못하게 하고 싶다고도 했다. 참으로 가관이다. 나향욱은 부(富)와 권력(權力) 그리고 행복(幸福)이 극단적으로 편중된 기형적 사회를 변혁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기를 쓰고 99%를 짓밟고 1%의 세계로 올라서려는 욕망에만 사로잡혀 있다. 청산되지 못한 일제 잔재와 얼떨결에 이식된 천민자본주의가 결합된 대한민국의 기막힌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어찌 교육부만의 현상일까? 나향욱의 고백에 따르면 이른바 “개·돼지가 아닌 국민 1%”에 속하는 나향욱들이 50만명쯤 된다고 한다. 이 한 줌도 안되는 자(者)들이 대한민국의 정·관계, 재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학계 등 사회 전반의 핵심부에 똬리 틀고 앉아 우리 사회를 떡 주무르듯 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아흔아홉 마리 양들의 살과 피를 빨아 먹고 사는 한 마리의 늑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됐을까?


첫째, 공무원의 이런 생각은 현재 정치권력 일반의 철학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고위직일수록 정치적 풍향에 민감해, 최고 정치권력의 사고와 행동에 호응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이른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거기서 나온다. 정치권력의 철학이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나향욱은 줄을 이을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스스로의 소신이라 공공연히 밝힐 수 있을 정도라면, 저들 1%끼리는 “국민이 개·돼지 같다”는 철학을 물과 공기처럼 늘 공유하고 공감해 왔다는 얘기다. 권력과 부를 저희들끼리만 나누고, 개·돼지에게는 죽지 않을 만큼의 먹이만 던져주면 된다는 저 간악한 공모. 저들이 국민을 개·돼지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만 몰랐던 것이다.


둘째, 교육부의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 대부분은 교사나 교수 출신 전문가들이 교육 정책을 담당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야만 교육 현장에 밀착된 정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이다. 정책, 인사, 예산 등 거의 모든 권한을 이른바 고시를 패스한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 담당한다. 그러니, 교육 현실은 모른 채 교육공학적 이론이나 서구의 사례에만 매몰된 정책을 내놓기 일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협의와 소통보다는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얼치기 행정가들 때문에 대학은 대학대로 초·중·고교의 교육현장은 현장대로 잔혹한 실험의 장으로 내몰려 초토화되고 있는 게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한, 대한민국의 교육은 개·돼지 교육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국민의 공복인 일개 공무원이 국민을 개·돼지라 불렀다면 품위 손상을 넘어, “성실 복종의 의무”, “친절 공정의 업무”마저도 짓밟은 것이 아닌가?


이번 교육부 관료의 망언을 엄중히 다스려 이 힘든 시대에 국민의 상처받은 마음을 속히 위로해야 한다. 어쩌다 개·돼지가 돼버린 국민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교육부는 “대기발령” 같은 꼼수가 아니라 해당 정책기획관을 즉각 “파면”하고, 장관은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12055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