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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진석 - 지카를 보면서 메르스를 반성한다

irene777 2016. 8. 6. 00:58



[정동칼럼]


지카를 보면서 메르스를 반성한다


- 경향신문  2016년 7월 31일 -





▲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



지난달 29일, 정부의 메르스 백서가 출간됐다. 본문만 5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발간사와 서문에는 메르스를 계기로 신종 감염병 대응체계가 마련됐고, 총 48개의 메르스 후속 과제 중 31개가 종료됐다는 자평이 실려 있다. 정말 그런가? 올해 3월 첫 환자가 발생한 지카바이러스를 보자.


브라질을 방문했던 첫 번째 지카 환자는 귀국 5일 후부터 증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동네의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귀국 10일이 지나서야 지카로 의심돼 보건소에 신고되었다. 필리핀을 방문했던 두 번째 환자는 귀국 6일 후부터 증상이 발생했다. 동네의원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귀국 9일이 지나서야 지카로 의심돼 보건소에 신고됐다. 그러나 주말인 탓에 질병관리본부가 검체 접수를 하지 않아, 이틀이 지나서야 검사가 이루어졌다. 질병관리본부는 지카바이러스도 사람처럼 주5일제 근무를 하는 것으로 착각한 걸까? 이 환자는 보건소에 신고한 지 4일이 지나서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세 번째 환자는 두 번째 환자의 형으로 필리핀 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이 환자는 동생의 검체가 질병관리본부로 의뢰된 다음날 군 입대를 했다. 그리고 입대 다음날 훈련소에서 군병원으로 옮겨졌다.


2015년 메르스와 2016년 지카의 초기 대응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판박이다. 증상이 발생한 이후에 여러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치료를 받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감염을 의심받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일상생활을 통해 감염되지 않는 지카였길래 망정이지 만약 메르스였다면 작년 상황이 재현되었을 것이다.


메르스 이후,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름 분주하게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했다. 역학조사관도 확충했고, 격리치료시설 확대와 병원감염관리 강화 방안도 내놨다. 그러나 정부 대책에는 큰 구멍이 있다. 어떤 신종 감염병이든 가장 먼저 환자를 접하게 될 동네의원 대책이 통째로 빠져 있다. 지금까지의 정부 대책으로는 이미 대규모로 발생한 환자들을 격리하고 치료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한 명의 첫 번째 환자가 수십명, 수백명의 환자로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동네의원이 제 역할을 해야 신종 감염병에 대한 초기 대응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동네의원 의사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해야 한다. 제아무리 의사라 할지라도 신종 감염병에 대한 지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식이 있어야, 경각심을 가지면서 의심도 하고 적절한 조치도 할 수 있다. 정부는 매년 의사들이 받는 보수교육 강화를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보수교육 시간도 늘리고, 감염관리교육도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년에 한차례 모여 몇 시간의 교육을 받는 것으로는 일상적인 경각심을 유지할 수 없다. 몇 달 지나면, 교육받은 내용이 기억도 안 날 것이다. 일상적인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e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신청자가 원하는 주제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발송해 준다. 내 주위의 일부 의사들은 신종 감염병 정보를 이 서비스를 통해 얻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풍부하고 실용적인 질병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확인한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의 페이스북 머리글은 산업통상자원부 명의 안내문이었다. 에너지 소비효율 1등급 가전제품은 구매가격의 10%를 최대 20만원까지 환급해 준다고 한다. 이런 질병관리본부의 페이스북을 누가 팔로윙할까? 작년 메르스 사태 당시, 일선의 많은 의사들은 보건소나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어떤 정보와 지침도 얻지 못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정보를 언론보도를 통해서 얻었고, 동료 의사들과의 카카오톡에 의지해서 환자 진료를 했다. 이런 상황부터 시급하게 개선해야 한다.


백서를 보면, 아직도 갈 길이 한참이다. 온통 의료기관 탓, 지자체 탓,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탓이다. 걸핏하면 남 탓하고, 괴담 탓하는 현 정부의 고질병이다. 정부는 한 전문가의 말을 빌려 “메르스 감염은 바이러스 감염이 아니라 SNS 감염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중에 떠돌던 괴담의 적지 않은 내용은 사실이었다. 특히 누리꾼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해서 만들었던 메르스 지도는 관계자들도 놀랄 만큼 실제와 거의 일치했다.


공교롭게도 백서가 발간된 날에 아홉 번째 지카 환자가 발생했다. 물론 이 환자도 귀국 4일 후부터 증상이 시작되었지만, 확진 판정은 귀국한 지 13일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반성 없는 백서, 예외 없는 반복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31205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