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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0년 여당’ 늪에 빠진 새누리당

irene777 2016. 8. 20. 18:36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88>


‘10년 여당’ 늪에 빠진 새누리당


- 한겨레신문  2016년 8월 7일 -





▲ 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중화산동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제4차 전당대회 호남권 합동연설회장 모습. 청중석에는 각 후보의 지지자들이 따로 모여 앉아 

 있으며, 천장에는 대표 후보자 5명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전주/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여당 당대표 주자들 살펴보니, 당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고

‘무관심’ 전당대회는 친박에게도 ‘맥 빠진 드라마’ 비판받아

 97년-07년 대선서 본 ‘10년 주기설’ 공식은 또 되풀이되나



새누리당의 새로운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가 8월9일 열립니다. 대표 후보는 비박 후보들의 잇단 단일화로 이제 4명으로 압축됐습니다. 친박 성향의 이정현 이주영 한선교 후보, 그리고 비박 성향의 주호영 후보입니다.


얼핏 보면 주호영 후보가 유리해 보입니다. 친박 세력의 표는 세 후보에게 분산되는 반면, 비박 세력의 표는 한 곳으로 몰릴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사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당내 사정에 밝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정현 후보가 강세라고 합니다. 비박 세력의 후보 단일화로 위기감을 느낀 친박 세력이 막판에 이정현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고 있다고 합니다. 30% 비중을 차지하는 여론조사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이정현 후보가 앞서가는 흐름이라고 합니다.


3선 국회의원으로 호남 출신인 이정현 후보가 새누리당 대표가 되면 참 놀라운 일입니다. ‘경상도당’ 대표를 ‘전라도 사람’이 맡는다는 것 자체가 이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누리당의 새 대표는 과거에 비해 훨씬 큰 권한을 갖습니다. 대표 경쟁자들은 아예 당 지도부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주요 당무에 대해 독점적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정현·이주영·주호영·한선교 도전…전당대회 후 당 미래는?


이정현 후보가 대표가 되면 새누리당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경상도당이 전국 정당으로 변모할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정당의 정체성은 대표 한 사람 교체한다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통령의 비서 출신 대표’라는 점이 부각될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청와대 2중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깁니다.


이정현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입니다. 박근혜 대표의 대변인, 박근혜 의원의 ‘대변인격’을 지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초대 정무수석비서관과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냈습니다. 청와대에서 나와 다시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무한 충성심’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이 이런 장면을 전해주었습니다. 친박 의원 몇 사람이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당시 현기환 정무수석이 의원들에게 “대통령에게 야당과의 만남과 대화를 건의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의원들은 “알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서는 그런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정현 의원은 거꾸로 야당에 대한 비난을 늘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정현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만 살펴도 심기를 읽는 정치인입니다. 그런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 싫어하는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살아있는 권력의 숨통을 끊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 박근혜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이주영 후보가 대표가 되면 어떨까요? 이주영 후보는 나이와 성품이 두루 원만한 사람입니다. 친화력도 있습니다. 따라서 친박과 비박의 봉합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의 문제가 계파 봉합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요? 새누리당은 서서히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될 수 있습니다.


비박의 주호영 후보가 대표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주호영 후보는 4·13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을 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된 사람입니다. 저는 정치 분야를 오랫동안 취재했지만 탈당을 하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복당해서 곧바로 대표가 된 정치인을 본 일이 없습니다.


아무튼 그가 대표가 되면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새누리당을 혁신하려고 할 것입니다. 김무성 전 대표를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만들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잘 될까요? 과연 ‘복당 대표’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새누리당 혁신’과 ‘김무성 대선후보 만들기’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이처럼 지금 새누리당은 누가 대표가 돼도 계파 싸움을 종식시키고 당을 혁신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새누리당이 혁신하지 못하면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집권하기 여려워집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의 8·9 전당대회는 계파 싸움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새누리당의 김태흠 의원(충남 보령·서천)이 지난 8월2일 ‘전당대회 대표 후보자들에게 드리는 고언’이라는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새누리당의 전당대회가 며칠 앞으로 다가 왔으나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가 ‘그들만의 리그’, ‘맥 빠진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권주자들의 무게감 때문만은 아닙니다.


전당대회라면 ‘당의 갈등을 봉합하는 화합의 방향 제시’, ‘당의 혁신과 비전 제시’, ‘보수의 가치에 기반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성장과 안보중심의 새로운 방향 제시’ 등 당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거대 담론의 장이 되어야 함에도 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서 패배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보수 혁신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수 혁신 전대를 주장하는 것도 우리가 몸담고 있는 새누리당의 운명이, 보수정당의 운명이 정말로 풍전등화이기 때문입니다.


낡은 보수를 과감하게 버리고 진보가 주장하는 가치라도 국가와 국민에게 절실하다면 포용하는 보수 혁신이 필요합니다. 혁신하지 않고 변화를 외면하는 새누리당이라면 차기 대선에서도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갖고 이번 전당대회에 나선 대표 후보자들께서는 보수 혁신 플랜을 제시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김태흠 의원은 ‘소신 친박’을 자처하는 정치인입니다. 그런 의원이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그들만의 리그’, ‘맥빠진 드라마’라고 비판하며, 대표 후보들에게 보수 혁신을 요구하고 나설 정도로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새누리당 사람들이 혁신을 외면하고 계파 싸움에 몰두하는 이유가 뭘까요? 자칫 잘못하면 2017년 대선에서 정권을 빼앗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 대선 위부터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 2002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  

 1992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의 회동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한겨레 자료(차례대로)



1997년 한나라당은 방심했고, 2007년 민주당은 요행 기대


우리나라 정치 시계는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시작돼 5년 주기로 돌고 있습니다. 노태우-김영삼 10년, 김대중-노무현 10년, 이명박-박근혜 10년입니다.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치러지지만 10년 주기로 여야가 교체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새누리당의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열린우리당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97년 한나라당 사람들은 재집권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권력은 우리가 장악하고 있다. 야당의 후보는 ‘만년 패배자’ 김대중이다.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디제이피(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앞두고 한나라당 실무 핵심 당직자가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디제이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디제이피 연합은 절대로 성사되지 않는다. 디제이피 연합이 성사될 것 같으면 우리가 깨버리면 그만이다.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 우리는 권력과 돈,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디제이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순환논법에 따른 강력한 ‘디제이 불가론’입니다. 그런데 현실 정치는 그의 말과 반대로 흘러 갔습니다. 오만과 방심의 대가는 굴욕이었습니다. 정권이 바뀐 뒤 1년쯤 지나서 그가 김대중 대통령의 청와대에 들어가기 위해 여기저기 줄을 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정치가 참 허무하다는 것을 저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권은 정계개편으로 어수선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집단탈당했고 이합집산을 거쳐 대통합민주신당이 만들어졌습니다. 객관적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각종 여론조사가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의 대선후보 단일화만 이뤄지면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이상한 ‘신화’가 나돌았습니다. 이회창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했기 때문에 보수표가 갈릴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도 그런 신화를 떠받치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정동영-문국현 단일화가 이뤄졌다면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를 꺾고 재집권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민심은 10년 집권 여당에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권 사람들은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요행수의 대가는 일패도지였습니다.


1997년과 2007년의 관찰자로서 제가 알게된 것은 ‘제 아무리 총명한 정치인들도 10년간 정권을 잡으면 막연한 낙관론에 빠지거나 요행수에 기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심해도 지고, 민심과 멀어져도 진다는데…


이제 새누리당 차례입니다. 새누리당에서 새로 선출되는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그 누구도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으로 거스르지 못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권력과의 충돌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세대교체를 추진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 사람들은 대체로 남경필 원희룡 지사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얕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젊은 세대로의 과감한 세대교체’는 영국 보수당에서 가능한 일이지, 새누리당에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론입니다.  새누리당은 ‘방심하면 진다’는 1997년의 교훈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불과 4개월 전인 4·13 총선의 교훈, ‘민심과 멀어지면 진다’는 교훈도 벌써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 답답한 일입니다.



- 한겨레신문  성한용 선임기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554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