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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명섭 - 미디어 동굴

irene777 2016. 8. 30. 17:51



<아침 햇발>


미디어 동굴


- 한겨레신문  2016년 89일 -





▲ 고명섭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현대 저널리즘의 아버지로 불리는 월터 리프먼의 <여론>(Public Opinion)은 플라톤의 <국가> 7권에 등장하는 ‘동굴의 비유’로 시작한다. 지하 감옥의 죄수처럼 동굴 안에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이 사람들은 손발과 머리가 묶여 동굴 안쪽 벽에 비친 사물의 그림자만 바라보며 산다. 묶인 사람들은 뒤를 돌아볼 수 없기 때문에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 그림자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한다. 리프먼은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 둘러싸인 대중의 모습이 동굴 속 죄수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를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오늘의 대중이라는 것이다. 리프먼은 동굴에 갇힌 죄수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서 인용을 멈추었지만, 플라톤이 정작 강조하는 것은 그 뒤에 있다. 동굴 속 죄수 한 사람이 결박에서 풀려나 동굴 밖으로 나온다. 평생 어둠 속에서 살던 사람은 처음으로 진짜 사물들을 보고 자기가 그동안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죄수 한 사람이 운 좋게 동굴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동굴 자체가 폭파돼 빛이 통째로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경북 성주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그런 상황을 보여준다. 사드의 폭격이 주민들을 가두어 놓았던 동굴의 천장을 날려버렸다. 사태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처음에 “사드는 찬성하지만 성주는 안 된다”고 하던 사람들이 곧 “한반도 어디든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성주 안 제3의 장소로 사드를 옮길 수도 있다는 식으로 발언하자 성주 주민들은 사드 이전이 아니라 사드 철회를 요구했다. 대구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현장 참가자는 사드 배치 바람몰이를 해온 <조선일보> 사설을 조목조목 뜯어 비판하기도 했다. 성주군 농민회장은 ‘외부세력 개입’ 운운하는 신문·방송을 두고 “찌라시 언론”이라고 일갈했다. 성주 주민들이 ‘미디어 동굴’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군청 앞마당에 사드 배치에 항의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그러나 나라 전체로 보면 미디어 동굴은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어둠 속에 가두어 두고 있다. 특히 60대 이상 장노년층과 보수지역 유권자들은 수구보수 신문들과 정권에 장악된 지상파 방송과 쓰레기 보도를 쏟아내는 종편채널이 틀어대는 그림자 연극에 빠져 장단을 맞춘다. 리프먼이 말한 ‘스테레오타입’ 곧 고정관념의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미디어의 마력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고정관념은 일단 자리잡으면 성주 사태와 같은 충격이 개입되지 않는 한 깨지지 않는다. 고정관념은 세상을 보는 창의 프레임일 뿐만 아니라 가치관과 자존심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머릿속 고정관념이 흔들리는 것에 극도의 반감을 품는다.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는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동굴 밖으로 풀려나 진실을 보게 된 사람은 동굴 속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러 비틀거리며 내려간다. 돌아온 사람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가짜라고, 진실은 밖에 있다고 외치면 어떻게 될까. 죄수들은 그렇게 외치는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 죽여버리려 한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그러니 문제는 미디어다. 나쁜 미디어는 나쁜 고정관념을 만들어낸다. 나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동굴을 세상 전부로 알고 죄수의 삶을 살도록 길들이는 미디어를 병아리가 어미 닭을 따르듯이 뒤따른다. 이 희비극적인 현실에서 벗어나는 한 방식을 성주의 싸움이 보여주었다. 그림자놀이로 사람들의 혼을 빼는 미디어 동굴 천장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 한겨레신문  고명섭 논설위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58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