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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호연 - 박 대통령 "자신이 잘못 없고 옳다고 생각될 때를 경계하자"더니···

irene777 2016. 9. 9. 17:41



[조호연 칼럼]


박 대통령

"자신이 잘못 없고 옳다고 생각될 때를 경계하자"더니···


- 경향신문  2016년 8월 22일 -





▲ 조호연

경향신문 논설위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폭탄돌리기가 시작되었다. 성산포대에서 성주골프장으로 갈 듯하자 이번에는 김천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왜 안 그러겠나. 무한경쟁, 승자독식으로 파편화된 사회, 연대와 신뢰 기반이 무너진 공동체 아닌가.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지 않았는데도 사드 참외 안 산다는 말이 나오는 각박한 세상이다. 무능하고 오만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사드 반발 동기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천시민에게 성주는 거울이다. 성주 주민의 공포와 분노의 한 달, 생업을 내던진 격렬한 반발에 정부가 물러서는 것을 다 지켜봤을 터이다. 분명한 건 “성주 사드를 성주가 막은 것처럼 김천 사드는 김천시민이 막는” 시점이 된 것이다.


사드 논란은 심리전 형태로 진행 중이다. 정부는 반대파의 명분을 약화시키기 위해 도덕적 공격 전략을 구사한다. 정부가 앞서 동원한 님비, 괴담, 외부세력 카드가 실패한 것은 알려진 대로다. 괴담은 다수가 합리적 의심으로 드러났고, 님비는 ‘사드 한국 배치 반대’란 성주군민의 현명한 대처 구호에 막혔다. 성주의 투쟁이 내부세력, 즉 ‘외로운 늑대’의 저항이란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외부세력 카드도 논리가 궁색해졌다.


다급해진 정부는 ‘애국 대 매국’ 카드를 꺼냈다. 사드 찬성=애국, 사드 반대=매국·사대주의라는 익숙한 이분법 공식을 국민 갈라치기에 동원한 것이다. 북한은 물론 중국까지 적대시하는, 외교적으로도 부적절한 전략이다. 국가 안보의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와 인권, 정의를 탄압하던 1970년대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대표 표적이 된 참여정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6명에 대한 공격은 불합리한 데다 불공평하기까지 하다. 중국 언론에 사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 어떻게 매국이나 사대주의가 될 수 있나. 그런 논리라면 위안부 합의에 대한 국민 분노가 들끓는 시점에 과거사 망언을 일삼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찍은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뭔가. 중국의 사드 반대 입장에 동조한다는 비난도 타당하지 않다. 중국은 안보 우려로 사드를 반대하지만, 국내 반대파는 그로 인한 국익 손실이 사드 배치로 얻는 국익보다 크다고 보고 우려한다. 결이 다르다. 청와대는 야당 의원이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고 사대주의를 했는지 증거를 대야 한다.


애국과 매국, 사대주의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병자호란 때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워 청과 싸우자고 한 김상헌을 사대주의자로 비난하지 않는 것은 그가 애국자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청과의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도 매국노나 사대주의자가 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청 감옥에서 만나 서로의 애국심을 확인하며 교환한 시구는 가슴을 친다. ‘끓는 물도 얼음도 다 물이고, 갖옷도 베옷도 모두 옷인 것을~ 문득 오랜 의심 풀렸네.’(김상헌) ‘그대 마음은 바위 같아 굴리기 어렵고 내 도는 고리라 돌고 돈다네.’(최명길)


사실 총리와 장관들이 애국을 말할 때마다 불편하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고, 공직 확정 후에야 떼먹은 세금을 낸 그들이 국민을 계몽할 자격이 있을까 싶다. 그들보다 4대 의무를 묵묵히 이행하는 시민이 진정한 애국자 아닌가. 빗나간 애국이 애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진짜 애국이 밖으로 떠도는 격이다. 본말전도, 적반하장이다.


대미 자주 외교를 주창한 참여정부 시절 중량급 보수정치인과 중진 교수들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 관리와 학자들 앞에서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매국노나 사대주의자라고 부를 생각은 없다. 그런 태도는 반민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양한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국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유란 다른 생각을 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확신하건대 사드 논란 책임의 절반 이상은 민주적 절차를 거부한 불통 정부 탓이다. 정책도 상품과 마찬가지로 유통 방식이 중요하다. 사전에 열린 토론 절차를 지켰더라면 이토록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밀실에서 결정하면 시민이 따를 것이라는 독선과 오만을 버려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큰 틀의 태도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박 대통령은 오래전 이런 문제의 해결 방식을 제시한 바 있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될 때, 자신은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옳다고 생각될 때, 그 사람은 가장 자기자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 삼아>, 1982년 1월10일치 일기)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22203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