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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정렬 - 중립과 본분

irene777 2016. 9. 15. 16:45



<야! 한국사회>


중립과 본분


- 한겨레신문  2016년 9월 5일 -





▲ 이정렬

전 부장판사



제20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 개회일인 지난 1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장실에 집단으로 들어가 자정이 넘도록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압박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회의장이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야당의 주장을 옹호하는 내용의 개회사를 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대저 ‘중립’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공정하게 처신함’을 뜻한다고 한다. 즉, ‘중립적’이라는 것은 차별 없이 공평하게 상대방을 대우할 것을 포함하는 의미이다.


공평하고 중립적인 지위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세가 요구되는 가장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법원이다. 재판부는 재판 당사자인 원고·피고 내지는 검사·피고인에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충분하고도 공평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할 기회도 공평하게 부여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하였다면, 제아무리 올바른 결론을 낸다 하더라도 재판 당사자의 승복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정하고 중립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는 재판에서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본분’이다. 예를 들어, 원고는 3천만원의 권리를 주장하는 반면에, 피고는 1천만원의 의무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있다 하자. 이때 재판부가 양쪽 주장의 중간이라는 이유만으로 2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하다. 이것은 겉으로는 중립적인 것으로 보일지라도 중립을 가장한 업무태만인 것이다. 판결을 함에 있어서는 양쪽의 주장과 제출된 증거를 철저하게 검토·조사해서 결론을 내야 한다. 이때에는 ‘중립적’인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태도가 필요하다. 그 재판부는 ‘중립’이라는 미명하에 ‘본분’을 잃은 행위를 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국회의장, 더 나아가 국회의 ‘본분’은 무엇인가? 삼권분립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헌법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독립시켜 서로 견제하도록 함으로써 균형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즉, 입법부의 본분은 행정부의 과오가 있는 경우 이를 따끔하게 질책·견제하여 그 독주를 막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두텁게 보장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한 지위에 있는 입법부, 그 수장인 국회의장이 행정부의 잘못을 지적한 행위는 그 본분에 맞는 ‘올바른’ 역할을 한 것이지, 이것을 가리켜 중립적이지 못하다 할 수는 없다. 국회의장으로서는 그가 담당하고 있는 기관인 국회의 내부적 업무, 즉 회의를 함에 있어 의원들에게 발언권과 의안의 제출·의결의 기회를 공평하게 주는 데에 중립적인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일 뿐이다. 그 내부의 문제가 아닌 외부기관, 특히나 행정부의 과오를 질책함에 있어서는 결코 목소리를 아낄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것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업무태만이고, ‘본분’을 잃은 자세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국회의장의 발언이 야당의 주장과 일치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행정부의 오만과 독선을 지적하는 입법부의 본분에 맞는 행위라면, 그 내용이 심지어 집권 여당의 주장과 일치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입법부의 역할이자 ‘본분’이다.


이번 정기국회 개회사를 보면서, 실로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국회의장을 가지게 된 것이 기쁘다. 아무쪼록 훌륭한 국회의장과 함께 본분을 잃지 않는 제대로 된 국회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00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