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구갑우 - 어둠의 시대가 오고 있는가

irene777 2016. 10. 6. 18:25



[정동칼럼]


어둠의 시대가 오고 있는가


- 경향신문  2016년 9월 11일 -





▲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 (정치학)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사드의 한국 배치 결정 그리고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이어지는 작용과 반작용의 연쇄가 미국의 트럼프 현상 그리고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과 겹쳐 보인다. 과잉 우려이겠지만,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와 2차대전을 촉발한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등장한 우파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인 파시즘이 함께 가는 느낌이다.


이 두 과거의 사건은 전쟁의 먹구름을 내장한 첨예한 국제적 위기였다. 트럼프 현상과 브렉시트는, 경제위기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중산층의 몰락을 야기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의 종언에 조응하는 지체된 정치적 위기의 지표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1961년 4월 미국이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쿠바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감행한 피그만 침공이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1962년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미국 정부는 쿠바 해안을 봉쇄하는 벼랑 끝 외교로 맞섰고, 결국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고 소련이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교환으로 위기가 해소됐다.


물론 쿠바 미사일 위기와 현재진행형인 한반도 위기는 그 성격이 다르다. 냉전체제에서와 달리 소국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하는 행위자다. 강대국 정치를 국제관계의 본질로 생각한다면, “왜 세계의 강대국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허용했는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다.


한반도 핵문제의 기원이 1990년대 초반 동아시아에서 남한이 중·소와 수교했지만 북한은 미·일과 수교하지 못하는 비대칭적 냉전 해체라 할 때, 쿠바 위기처럼 2주 정도가 아니라 거의 30년에 달하는 장기 지속적 군비경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쿠바 위기와 구분되는 측면이다.


김정은의 정신상태라는 심리적 측면만큼 또는 그보다도 국제정치의 구조적 성격이 한반도 핵문제에 투영되어 있다. 북한은 2016년 9월9일 5차 핵실험 이후 ‘핵무기연구소’ 성명을 통해 핵탄두의 “표준화, 규격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를 이루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양한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탄두의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적대적 군비경쟁의 가속화가 예견되고 있다. 군비경쟁이 전쟁에 선행하기는 하지만 전쟁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미국적 국제정치이론에 따르면 힘의 불균형이 오히려 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 냉전시대와 달리 미국이 깡패국가라고 부르는 국가들이 핵국가가 될 수 있는 이른바 ‘제2 핵시대’를 예측하는 미국의 한 보고서에서는 억제능력의 강화를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핵폭격기라는 전통적인 3인조의 강화와 더불어 방위의 측면에서 사드와 같은 미사일방어체계를 결합할 것을 추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를 원용하면, 북한에는 핵능력 고도화를 위한 또 다른 선택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 재래식 타격능력, 미사일방어체계를 통해 북핵에 대응할 것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사드의 한국 배치 결정과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군비경쟁은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북한의 민수용 교역은 제외했던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도 보다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봉쇄하는 정책은 북한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국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일방적인 안보추구가 안보이익의 감소를 야기하는 안보딜레마를 만든다고 비판하면서도 대북제재의 목적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임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대화와 협상을 위한 비밀통로도 공론장도 부재한 상태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전에 폐막된 주요 20개국(G20) 회의에는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참사로 가지 않으려는 선언적 담론이 담겨 있다. 과잉 축적위기의 해결, 경쟁적 평가절하의 삼감, 자유무역의 추진, 지속가능한 임금정책, 실업의 예방과 내수창출 등이 그 내용들이다.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진보적 경제정책이 필요하다는 합의다. 그러나 세계무역액은 감소하고 있고 환율전쟁은 현실이다. 디지털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도 가시적이지 않다. 이 세계 정치경제의 맥락 속에서 한반도의 핵위기는 약한 고리가 될 수도 있다.


군비경쟁에서 드러나듯 위기외교가 아닌 위기관리가 또는 군비경쟁과 제재로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소망적 사고와 정책이 지속될 때, 한반도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정책이 도입되더라도 경쟁적으로 국가안보와 동맹안보를 절대화하는 정책을 선택할 때, 우리는 어둠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112058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