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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호연 - 급변상황이 발생한 곳은 남한이다

irene777 2016. 10. 10. 17:59



[조호연 칼럼]


급변상황이 발생한 곳은 남한이다··


- 경향신문  2016년 9월 12일 -





▲ 조호연

경향신문 논설위원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통령의 ‘북핵 언어’는 어지럽다. 대통령의 북한 현실 진단은 비현실적이다. “북한 내부의 급변상황이 우려된다.” 대통령이 지난 2일 성남공항에 전송나온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게 한 말이다. 김정은 정권과 북한에 곧 변고가 발생할 것이란 시사였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국내에 남아 즉각 긴급대책회의를 열어야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출국했다. 북한 급변상황은 없었다. 오히려 북한은 사흘 뒤 핵실험을 했다. 급변상황이 남한에 발생한 것이다. 대통령은 북한 붕괴를 거론했지만 정작 붕괴한 것은 대북정보망이었다. 핵실험일에 총리와 통일부 장관은 지방출장 중이었다.


북한 붕괴론은 중국의 반대 때문에 애초 성립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 논의를 중국과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대통령의 대중국 외교는 이처럼 위태롭다. 지난 5일 한·중 정상회담도 그랬다. “내 어깨에 5000만 국민의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밤잠을 못 잔다.”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나온 말이다. 정상회담에서는 고도로 정제된 언어가 요구된다. 말 한마디로 국가 이익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리에서 개인 고충을 하소연하는 감정적 표현을 구사하는 것은 국가의 품격만 떨어뜨릴 뿐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드 배치를 반대했다. 그가 속으로 ‘그쪽은 5000만명이지만 내 어깨에는 15억명이 얹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통령의 북핵 처방은 위험하다.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 등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라.” 지난 9일 안보상황점검회의 발언이다. 특유의 ‘국민·비국민’ 전략을 꺼내든 것인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 발상이 전체주의에 가깝다. 우선 묻고 싶다. 불순세력과 사회불안 조성자들이라니 누구를 말하는가. 혹시 정부 정책 반대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 대통령은 자유와 비판과 반대를 규정한 헌법을 지켜야 한다. 설령 불순세력과 사회불안세력이 존재한다고 쳐도 그들을 감시하는 것이 북핵 대처법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사실 사회불안을 야기한 것은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개성공단 문을 닫고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핵문제를 해결한다고 장담한 것이 바로 정부다. 그럼에도 5차 핵실험이 터지자 평양 불바다 작전, 더 강력한 제재·압박을 제시한다. “평양을 지도에서 없애겠다”는 것은 김정은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평양 주민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얘기인가. 기존의 제재·압박이 사상 최강이라더니 그보다 더 강력한 제재·압박책이란 게 존재는 하는 건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실체가 부실하니 언어가 화려해지고 강해진다. 북핵 대처가 왜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지 분석하거나 실패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란 비난도 유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핵개발 집착은 체제 생존을 위한 냉철한 계산에서 나온 합리적 선택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정권의 도덕성이 핵보유의 자격요건이라면 현존 핵보유국 누구도 자격미달이다. 더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실효적인 대책이다. 화풀이는 정책 수단이 될 수 없다.


물론 대통령의 북핵 언어가 문제투성이가 된 데는 사회의 책임도 있다. 대통령의 권위를 지나치게 존중하기 때문이다. 말실수한 연예인은 경을 쳐도 대통령은 무사통과되는 이유다. 여당 대표는 대통령의 북한 급변상황 발언에서 전혀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았다. 시민은 어떤가. 대통령 문제 발언의 절반은 대통령 자신의 오만과 무능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반시민성의 발로이다. 비뚤어진 언어를 걸러낼 수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대통령은 점점 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시민과 동떨어진 현안 인식을 쌓게 된다.


현시점에서 모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전력화는 눈앞에 있다. 기존 북핵정책은 실패했다. 이를 막지 못하면 핵으로 위협하는 적대국과 이웃하게 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북한은 핵보유국이 된 뒤 미국과 담판하려 들 것이다. 이를 제지할 현실적 정책 수단은 고갈된 상태다. 정부는 반발하겠지만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재 북한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8년간 북한은 4번의 핵실험을 통해 몸값을 올렸다. 대통령의 북핵 언어는 이 모두를 인정하고 반영해야 한다. 대책은 성찰에서 시작돼야 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122114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