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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이택 - 이제는 ‘최순실 게이트’와 마주한 언론들

irene777 2016. 10. 12. 18:53



<아침 햇발>


이제는 ‘최순실 게이트’와 마주한 언론들


- 한겨레신문  2016년 9월 20일 -





▲ 김이택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우병우’, ‘송희영’에 이어 드디어 ‘최순실’이 등장했다. <한겨레>의 20일치 특종보도로 우병우 민정수석 파문 이후 소문만 무성하던 의혹의 실체에 한발 다가선 느낌이다.


우병우 비리도 그렇지만 케이(K)스포츠·미르 재단 의혹도 먼저 터뜨린 것은 조선일보 계열사들이었다. 그런데 친박 의원에 의해 주필의 비리가 폭로되고, 또 다른 ‘고위관계자’의 동국제강 전 회장 등 구명 로비 의혹까지 터져 나오면서 미르 후속 보도는 끊겼다. 그리고 사주는 사보를 통해 임직원을 ‘관리’하는 사장으로서 미안하다며 독자와 사원들에게 사과했다. 우병우 비리 보도 이전 청와대와 조선일보사 사이에 뭔가 ‘밀당’이 있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 의혹에 휩싸인 케이스포츠 재단



권력에 약점 잡혀 언론이 추적보도를 중단하는 건 군사정권 시절에나 보던 일이다.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그 시절 ‘언론’ 역할을 포기한 대가로 정권에 굴종하며 ‘기업’으로 살아남았다. 사주는 언론자유를 지키려던 기자들을 내쫓고, ‘각하’에게 무릎 꿇고 술을 따르기도 했다. 그러다 국민의 힘으로 쟁취한 민주화로 ‘제4부’로서 언론의 지위가 보장되자 스스로 ‘권력’이 돼갔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있었던 일이다. 한 보수언론 사주가 김 대통령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회사의 숙원이던 몇가지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자사 소유의 한 건물을 정부가 사주고, 다른 건물엔 정부기관이 입주하며, 대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도 유리하게 이끌어달라 등등. 김 대통령은 긍정적 검토를 약속하고 측근들에게 추진을 지시했다. 사주와 담당 대법관의 식사 자리까지 주선하는 등 노력을 했음에도 입주 건 이외엔 해결되지 못했다. 그 때문이라고 단언하긴 어려우나 이후 이 언론은 정권과 내내 불화했고 논조까지 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수정권 이후 ‘언론권력’의 위세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총선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박근혜 정권과 코드를 잘 맞춰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엔 유족들의 진상규명 호소보다 ‘피로증’을 부각하고,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정윤회 게이트 등 정권의 치부가 드러날 만한 사안은 적당히 ‘마사지’해주며 공생했다. 종편들에 보장해준 파격적인 특혜들은 그 반대급부인 셈이다.


그러니 총선 뒤 조선 계열사들의 잇따른 정권 비판 보도를 청와대로선 배신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조선이 이전부터 그래 왔듯이 레임덕에 빠진 박 정권과 선을 긋고 내년 대선 구도를 새롭게 짜려 했다는 세간의 추측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조선 쪽 사람들은 이 정권이 시대를 거꾸로 살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 콘크리트 지지층과 권력기관의 돌격대를 앞세워 70년대 식으로 밀어붙이는 데 맞서려면 자기 손부터 깨끗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제 대통령이 혈육보다 더 믿는다는 최순실씨가 의혹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정윤회 게이트는 픽션일지 몰라도 최순실 게이트는 논픽션”이란 말까지 나온다.


정권의 역주행 앞에서도 언론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어느 사주는 정권에 약점을 잡혔고 어디 사주는 종편 갱신 허가를 앞두고 “정권을 모질게 다루진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등 설만 난무한다.


언론이 권력을 꿈꾸는 순간 언론이 아니듯이, 기업의 이해나 사주에게 발목 잡혀 ‘할 말을 못 하는’ 언론 역시 자격이 없다. 박근혜 정권에 또 하나의 핵폭탄으로 떠오른 최순실 사건 추적에 ‘일등 언론’과 경쟁사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 한겨레신문  김이택 논설위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19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