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서화숙 강좌> ‘승리자가 옳은’ 사회는 정당한가?

irene777 2014. 10. 24. 15:49



‘승리자가 옳은’ 사회는 정당한가?


<2014 등대지기 학교>

한국일보 서화숙 선임기자 강좌


- 시사IN  2014년 10월 22일 -




▲ 한국일보 서화숙 선임기자




세월호 비극은 부모의 역할, 시민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부모로서, 시민으로서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헌법적 권리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정부를 감시하고 따져 묻는 독한 시민이 되자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부모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남겼다. 진실 규명조차 어려운 사회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마련했다. 부모 교육 강좌인 ‘2014 등대지기 학교’가 그것이다. 강좌의 세 번째 주인공은 <한국일보> 서화숙 선임기자. 9월30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당에서 진행된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남은 강좌를 직접 듣고 싶다면 이 단체 홈페이지(noworry.kr)에서 수강 신청을 하면 된다. 실시간 또는 녹화 방송으로 동영상 강좌도 수강할 수 있다.


홍도 앞에서 배가 또 좌초됐는데, 105명의 승객과 5명의 선원 등 탑승객 110명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사건을 보면서 세월호 유족들이 슬펐을 것 같다. 진실 규명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뭘 해야 하나? 먼저 약자에 대한 연민을 가져주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약자를 도와주면 내 것을 뺏긴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몰아간다. 지금 상황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드는 게 최선이지만 그것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 서화숙 <한국일보> 선임기자는 “아이들이 믿었던 선진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옳은 편에 서고 자기 자리에서 ‘n분의 1’ 역할을 하자”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영국에서 어떤 흑인 청년이 백인 불량배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서 죽었다. 그런데 영국 경찰이 인종차별을 하면서 사건을 덮었다. 경찰과 검찰이 백인 용의자를 기소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들고일어나서 5년 만에 내무장관이 진상 규명을 요청했다. 결국 2005년 재수사를 통해 2011년 그러니까 거의 17년, 18년 만에 범인 중 2명이 종신형을 살게 되었다. 진실 규명을 위해 일사부재리 원칙도 깼다.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는다면 17년 뒤, 20년 뒤에라도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서 정의를 세울 수 있다. 그래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 측면에서 보면 침몰 당시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했고 학생은 복종했다고 해설을 한다. 유교적 복종문화에 길들여져서, 간단한 주입식 교육에 물들어서 비극이 왔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나는 한국 교육의 희망을 봤다. 가만히 있으라는 건 선장 등 그 배의 지휘부가 한 발언이었다. 400여 명이 탄 배에서 우왕좌왕하면 쓸데없는 데서 사람이 더 죽는다. 그러니까 지휘부의 지휘를 정확히 따르는 게 선진국 방식이다. 지휘부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까 학생들은 구명조끼 입고 가만히 있었다. 어리석어 복종한 게 아니라 아이들은 한국 사회가 선진사회인 줄 알았던 것이다. 지휘부의 지시를 따르면 안전이 지켜질 줄 알고 구조될 줄 알았는데 안 지켜진 것이다. 그것이 비극이다. 한국 사회가 선진사회가 아니었던 것이 비극이지, 학생이 그것을 따른 게 유교적 비극, 주입식 교육의 폐해 때문이다 이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또 이번에 교사의 헌신이 굉장하다는 걸 느꼈다. 14명 교사 중 생존 교사는 3명뿐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려고 되돌아갔고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주기도 했다. 반면 승무원과 선원 대부분은 구조됐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자들이 얼마나 희생과 책임을 다하려는지 자기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보여주었다. 살아나온 교감도 괴로움 때문에 자살을 택했다. 어쨌든 교사 대부분이 책임감을 지닌 분들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세월호 사건에서 희망적인 측면이다. 문제는 그런 책임 있는 교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밖에 없는 바깥의 구조를 반드시 바꿔줘야 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어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선진사회다. 


유족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뭔가를 주장하고, 그렇게 살고 싶겠나? 일하고 저녁에 집에 오면 꽃도 가꾸고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노을 보면서 얘기도 하고 이웃도 만나고 그렇게 살고 싶지, 매일 기본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 사회에서 살기는 싫다.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사회가 돼버렸으니 역설적으로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믿었던 선진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줘야 한다.




▲ 세월호 참사는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할까 숙제를 남겼다.   ⓒ시사IN 조남진



승리자가 옳은 사회는 정당한가?


어떻게 선진사회가 올 수 있을까? 일단 옳은 편에 서주자. 그다음에 악한 편은 악한 편이라고 해주자. 가령 문창극이 총리 후보로 나왔을 때 이인호 교수(현 KBS 이사회 이사장)가 옹호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때 핀란드 대사를 지냈다. 어찌 보면 김대중 정부 때 발탁됐기 때문에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문창극 후보자에 대해서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그럼 평소대로 ‘아 저분은 훌륭하니까 저분이 하는 말은 맞다’라고 하면 안 된다. 이 사안과 관련해 그의 말이 옳으냐 그르냐로 판단을 해야 한다. 옛날 이미지를 갖고 그 사람이 그 말을 했으면 신뢰할 만할 거야, 생각하는 순간 함정에 빠진다. 


자기 자리에서 ‘n분의 1’ 역할을 하자. 아파트 난방비 문제를 폭로한 김부선씨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자기 주변에서 비리를 파헤치다 보면 문제가 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많다. 낙마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경우 2억3000만원이라는 연구비를 자기 통장에 넣어서 밥도 먹고 보험료도 내고 쇼핑도 다니고 막 썼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이 쓸 수 있었겠나? 2억3000만원을 넣어준 직원이 있었으니 가능했다. 심재철 의원이 민간인 사찰 특위 위원장으로 16분 회의하고 매달 600만원인가 800만원을 받았다(심 의원은 특위 활동이 전무했던 점을 들어 16개월간 받은 활동비 9000만원을 전액 반납했다). 심재철 의원만 욕할 게 아니라, 특위가 한 번밖에 안 열린 걸 알면서도 돈을 따박따박 넣어준 국회 직원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우리 주변을 보면 어떤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도와주고 방조하고 포기하기 때문에 악의 고리가 굴러가는 것이다. 


자기 권리를 알자. 우선 공부가 뭔지 알자. 우리나라에서 공부는 성적이다. 공부 잘하라는 의미는 성적 올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공부는 자기 스스로 세상의 문제를 알아서 풀어갈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스스로 능력을 키우는 게 공부이기 때문에 오히려 남이 해주면 공부 방해다. 어떤 분들은 공부는 강요하지 않지만 체험을 과도하게 시킨다. 우리나라 관광지에 가면 무섭다. <아빠 어디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가수 윤민수씨와 그 아들 윤후가 뭔가를 하면 ‘교육 방법이 너무 좋다’라는 식의 인터넷 기사가 엄청 뜬다. 나는 반대로 윤후가 너무 딱하다. 그 나이 아이는 놀아야 한다. 그냥 놀아야 한다. 그런데 그 어린 애한테 여수 지나가면서 ‘이순신 장군이 무슨 말씀을 하셨지?’라며 안 가르치듯 가르치는 게 윤민수 교육법이라면서 칭찬들을 한다. 어이가 없다. 


아이들에게 (성적 올리기를 강요할 게 아니라) 선악의 개념을 명확히 일깨워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옳은 게 옳은 게 아니라 승리자가 옳다는 생각을 아이들이 일찍부터 주입받는다. 성공한 사람이 언제나 준거 틀이 된다. 농촌에서 몇억 버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 되고, 책도 베스트셀러 낸 출판사가 좋은 출판사가 된다. 쌤앤파커스라고 여직원 성희롱 사건이 나도 해당 상무를 복직시켰다. 책을 잘 팔았다는 이유로, 베스트셀러 출판사라는 이유로 좋은 출판사라는 지위를 가지게 되었고, 영업을 잘하는 사람이라 부도덕해도 자르지 못한 것이다. 성공 여부가 판단의 기준이 되니까 옳으냐 그르냐를 소홀히 여기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 전체가 옳은 편에 서기보다는 승리하는 편에 선다. 옳으냐 그르냐를 가릴 새도 없이 편승을 한다.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도 그렇다. 서북청년단 엄마 부대라니, 인간으로 할 짓인가? 교육 분야에서 특히 뭐가 옳은지 그른지가 제일 중요하다. 부모 스스로가 가해자로서 승리자가 되려 하지 말고 옳은 자가 되려고 노력하면 아이들도 그렇게 배운다. 



아이들에게 구체적 권리를 가르쳐주는 교육 


학생들에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권리를 가르쳐주는 교육을 하면 좋겠다. 교과 과정에서 헌법과 노동법을 필수로 가르치는 운동을 해야 한다. 헌법을 읽으면 내 권리가 뭔지 알 수 있다. 헌법에는 일할 권리(근로의 권리)도 명시되어 있다. 취직 못하고 있다면 프랑스 청년들처럼 나의 일할 권리, 헌법적 권리를 정부가 훼손하고 있다고 떠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시민은 너무 순하다. 사실 프랑스 헌법에는 “자유·평등·박애, 프랑스 혁명의 정신과 공동체 정신의 토대 위에 프랑스 국민은 권리를 가진다”라고만 되어 있다. 일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얼마나 거세냐. 법에 어떻게 규정되느냐가 아니라 시민들이 자기 권리를 찾아 정부에 따진다. 아이들에게 아르바이트할 때 요구해야 하는 최저임금, 이런 것도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 교과서에 창업과 경영자적 관점이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에 저렇게 세습 재벌이 많은데 새로 경영자로 편입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면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한다. 내 딸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카페 사장이 심야시간을 맡아달라고 했다. 딸이 수당을 더 줘야 한다고 요구했더니 사장이 ‘그래 너는 줄 테니까 남들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단다. 자기 권리는 자기가 알고 찾아야 한다. 학교에서 알려줘야 한다. 


피임 교육을 꼭 시켜야 한다. 왜 피임해야 하는지, 남자가 콘돔을 거부하면 여성의 몸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일 수 있으니 애당초 만나지 말라고 알려주어야 한다. 성폭력이 뭔지 폭력의 개념을 알려주고, 아는 즉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 


우리들 모두가 실은 강자라기보다 약자다. 약자가 살아갈 수 있는 건 결국 연대밖에 없다. 연대의 토대는 어쨌든 진실과 명분이다. 근로기준법을 어겼다, 최저임금법을 안 지킨다, 그러면 노동위원회에 제소하면 된다. 노동청에 신고해서 즉각 처리해주면 문제가 없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사건을 보면 정부에서 더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밝혀야 할 일이 많다. 정부기관이 잘 굴러가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다. 왜 진실 규명을 정부가 막고 억압하느냐면, 그 책임에 정부가 끼어 있으니 그렇다. 궁극적으로 건강하고 민주적인 정부가 중요한 이유다. 


지금은 국민이 무섭다는 걸 보여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 노태우는 전두환과 더불어 광주학살의 주범이었다. 노태우가 1987년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어 집권했다. 노태우 집권기에 한국 사회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고 중국과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이나 러시아가 더 이상 잠재적인 위협세력이 아니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에 보면 “이 법은 한국의 이적 세력을 단속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 법을 적용할 때도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적용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역시 노태우 정부 때 개정되며 들어간 것이다. 


그러면 노태우는 전두환과 같은 학살자 출신인데 대통령으로서 왜 이런 일을 했을까? 1987년에 공포를 느낀 것이다. 시민의 힘을 느낀 것이다. 1987년 6월항쟁을 겪으며 시민의 힘을 느꼈기 때문에 노태우 정부는 민주적 절차를 지켜나가는 쪽으로 일보 전진한 것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그 시기보다 훨씬 퇴보했다. 일베는 당연히 단속에 들어가야 한다. 반인륜 범죄다. 지역차별을 조성하는 어휘를 쓰는 이들은 잡아가야 한다. 시민들이 무섭다는 걸 알려주고 보여주어야 한다. 내 헌법적 권리를 강력하고 집요하게 요구할 때 정부가 바뀐다.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정부를 감시하고 따져 묻는 아주 독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정리 : 시사IN 송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