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아쉬움이 컸다. 피겨 여왕 김연아의 은퇴 무대였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응원했던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도 무산됐다. 여기에다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은 아쉬움을 분노로 만들었다. 판정 논란이 불거졌고, “금메달을 러시아에 빼앗겼다”는 항의가 쏟아졌다. 늑장 대처에 나선 대한빙상연맹에도 비난이 빗발쳤다. 비난과 논란이 이어진 가운데 벌써 석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늘 그랬듯 판정은 번복될 것 같지 않다. 누리꾼들은 “다음은 평창이다. 4년 뒤에 두고 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당장 평창 올림픽에서 경쟁할 기회조차 있을까 싶다. 우리에게 더 이상 김연아가 없기 때문이다.

 김연아 소트니코바_nl_2

   김연아는 피겨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세계 최고가 됐다. 반면 러시아는 최고의 환경과 체계적인 지도를 통해 경쟁력있는 선수들을 길러내고 있다. 지난 3월 주니어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러시아가 메달을 독차지했다. 대한민국은 김연아 단 한 명에 의지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소트니코바가 없어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국내에서도 김연아의 등장 이후 이른바 ‘김연아 키즈’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힘든 여건을 감수하며 꿈을 향해 한걸음씩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아이들이다. 소트니코바 때문에 우리는 무척이나 분노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분노해야 할 대상은 유망주들을 척박한 환경 속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닐까.

 

  문광부는 지난해 8월 <스포츠비전 2018>이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 5년간의 스포츠 정책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2018년 평창 올림픽이 막을 내리면 올림픽 유산들을 지속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과연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을까? 강릉시에 최신식 빙상경기장 네 곳이 들어선다. 건설비만 무려 4천 371억원이나 된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원래 목적인 빙상장으로 쓰이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이를 활용할 저변 인구가 없어 대규모 운영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얼음을 걷어내고 실내체육관으로 바꾸거나 민자를 유치해 상업시설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릉시 측은 “피겨 경기장만이라도 상징성 있는 올림픽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 피겨 선수들을 위한 훈련시설로 썼으면 하는데 여의치 않다. 문광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피겨계의 숙원인 피겨 전용 빙상장은 커녕 국가대표들을 위한 유일한 훈련시설인 태릉빙상장마저 없어질 위기다. 문광부와 문화재청 사이의 불협화음 때문이다. 태릉선수촌은 오는 2017년까지 충청북도 진천으로 모두 이전한다. 태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땅 주인인 문화재청이 이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빙상 종목 가운데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컬링 등 세 종목의 전용 훈련장이 진천선수촌에 생긴다. 대신 여러 종목이 함께 쓰고 있던 태릉빙상장을 피겨 전용 훈련시설로 쓰겠다는 것이 문광부의 계획이다. 태릉선수촌 기능 유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합의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태릉선수촌은 2016년이면 임시 사용 허가가 끝난다. 만약 문화재청이 빙상장까지 이전을 요구한다면 피겨 국가대표 선수들은 유일한 훈련장을 잃게 된다. 진천 선수촌에 따로 전용 훈련장을 지을 계획도 없기 때문이다.

 

  피겨 선수들에게 절실한 것은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경기용 빙상장이 아니다. 마음 편히 훈련할 수 있는 훈련용 빙상장이다. 러시아 취재 당시 현지 피겨 학교 관계자는 훈련용 전용 빙상장 건설에 우리 돈 약 100억 원이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포시가 추진했던 ‘김연아 빙상장’은 국제 경기장으로 예산이 1천 370억 원이나 됐다. 논란 끝에 무산된 이유다. 강릉에 들어서는 평창 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경기장은 대회 이후 원주로 이전 설치된다. 아이스하키 실업팀 한라의 홈 경기장으로 쓰기 위해서다. 하지만 취재 결과 실업팀과 협의된 일이 아니었다. 아이스하키장 건설비는 1천 79억 원. 이전 설치비만 무려 600억 원이 든다.

 

  김연아는 지난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피겨 전용 빙상장 하나만 지어달라”고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이듬해 김연아는 평창 올림픽 유치 위원으로 대회 유치의 일등공신이 됐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달라진 것은 없었다. 취재팀은 현역 은퇴를 선언한 김연아를 단독 인터뷰했다. 김연아는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하고 은퇴 기념 아이스쇼 준비에 전념하고 있었다. “예외는 없다”는 김연아 측을 상대로 설득에 들어갔다. 결국 김연아가 KBS 카메라 앞에 앉은 이유는 “후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는 취재팀의 진정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김연아는 “지금이라도 피겨 선수들이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전용 빙상장이 생겼으면 좋겠다. 저는 떠나지만 평창 올림픽에서 활약할 후배들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피겨 전용 빙상장이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기도 했다. 김연아의 마지막 부탁! 이제 그에 대한 대답을 누군가는 내놓아야 한다.   <끝>

 

강재훈 / KBS 스포츠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