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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재희 - “떨어뜨리려 나왔다”는 그 발언 때문인가

irene777 2014. 12. 30. 03:19



“떨어뜨리려 나왔다”는 그 발언 때문인가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 시사IN  2014년 12월 26일 -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시대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라는 물고 물리는 순환관계 이야기가 예부터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거기에 그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의 이야기를 넣으면 설명이 좀 더 구체적이 될 것 같다. 광복 후 우남 이승만 박사와 백범 김구 선생 이야기부터 보자.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과 국부(國府:국민당 정부) 중국이라는 배후 세력이 결정적이 아니었을까. 남한에 미군이 진주함으로써 우남의 우세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는 6·25를 계기로 60만 대군으로 팽창한 군 세력을 빼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더구나 민간 사회에 비하여 교육이나 조직력이 앞선 군이 아니었던가. 거기에 만주군 출신 장교들과 광복 후의 육사 8기생이 손을 잡았으니 대단한 위력일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은 또 머리 회전이 빠르고 모든 일에 집요하고도 철저한, 말하자면, 독한 사람이었다. 쿠데타로 반역을 했으니 경제 건설로 명분을 세울 수밖에 없고, 만주 시대에 신설 만주국의 건설 계획을 본 바도 있고 하니 경제계획에 착수한 게 어쩌면 당연했다. 마침 장면 내각이 만든 경제계획도 있었다. 일본군에서 익힌 사무라이 정신도 가미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민주화 세력 가운데서도 보수적인 영남 세력의 대표선수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같은 민주화 세력의 약간 개혁적인 호남 세력의 대표선수다. YS는 투지와 정치적 순발력이 자산이고, DJ는 끈질긴 자기 교육과 다수파 공작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지나간 일들은 그렇다 치고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가. 세력으로는 영남을 주축으로 하고, 박정희 추모 세력과 보수·극우 세력을 기반으로 집권했다. 김종필씨가 박정희 대통령의 DNA 운운했듯이 그 DNA가 분명 지배적일 것이다. 정치 감각이 있고, 집요하고 독한 성격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 부모 모두를 흉탄에 잃었다는 엄청난 트라우마와 평생 독신이라는 점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에서는 지도자들을 심리학적 또는 정신분석학적으로도 연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적 예의 때문인지 그런 연구를 안 하는 게 이상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진 트라우마 등등은 어떤 고집스러운, 편향된 믿음을 갖게 했을 법하다. 그런 불운을 당하고 그런 고집스러운 믿음이 없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정통 종교인이라 하기 어려운 최태민 목사를 둘러싼 잡음이 있었고, 그 여파가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때 최 목사의 요청으로 그와 단둘이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내 눈에는 하찮게만 보였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도인이 안 보였던가.


나는 전에 박 대통령을 교주적 리더십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민주적, 영웅적, 선동가적…. 여러 유형의 리더십을 인용해보아도 맞는 게 없다. 교주적 리더십이라고 해야 방향이 올바로 잡힌다. 근래에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그녀의 말솜씨다. 지지하는 주류 언론도 사설에서 “단두대” “관피아” 운운하는 용어 남발이 불가하다고 고언을 했지만 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암적 존재”로 시작하더니 “진돗개처럼… 살점이 떨어지게 물고 늘어져”를 거쳐 드디어 “단두대”라는 무시무시하고 불길한 언어에까지 이르렀으니, 어째 말씨가 그리도 살벌한가. ‘단두대’ 하면 프랑스 혁명기 로베스피에르 공포정치 시대의 ‘기요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떨어뜨리려 나왔다”라는 그 발언 때문에 그렇게 강경한가 


한마디 잊지 않고 해두고 싶은 이야기는 뚜렷하게 존재하는 한 정당을 해산하라는 심판 청구안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때 아주 강경하게 ‘전자 결재’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다. 헌정상 그렇게 중대한 문제를 결정할 때는 행태에서라도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혹시 대선 텔레비전 토론 때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라고 역시 경박하게 말한 그 발언(이정희 전 의원) 때문은 아닌지.


박정희 대통령 때 청와대의 정치특별보좌관이 된 이용희 서울대 교수가 당시 신문사 편집국장이던 내게 정치적으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무어냐고 의견을 구한 일이 있다. 나중에 총리가 된 노재봉 교수도 동석했던 자리다. 나는 한마디로 “대통령 결혼시키십시오. 그 이상 중요한 정치 문제는 없소”라고 했다. 진정 그때 강파르게 위기로 치닫는 정치를 되돌리는 첫걸음은 대통령의 원만한 가정이라고 생각했다. 가정이 황량하니 정치가 험악하게만 되었다. 지금 누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대통령이 원만한 가정을 이루어야 우리 정치도 원만하게 운영될 터인데…”라고 답변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가끔 있는 일이다. 솔직히 그렇다. 그게 지금 우리나라 정치의 심리학적, 아니 정신분석학적 처방이다.



<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