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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정희의 인혁당, 박근혜의 세월호

irene777 2015. 1. 1. 16:30



박정희의 인혁당, 박근혜의 세월호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 한겨레신문  2014년 12월 26일 -




▲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 박정희는 인혁당 사건 등을 놓고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았지만, 

박근혜는 과연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을까? 

사진은 1975년 4월9일의 서대문구치소 앞.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말년에 술에 취하면 인혁당 사건을 후회하며 울먹였다고 한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박의 측근으로부터 들은 이 얘기를 전하며, 그가 ‘정말 나쁜 놈’이라고 평가했다. 박이 인혁당 관련자들이 무고하다는 것을 뻔히 알고도 사법살인을 강행했다는 얘기다.


다른 생각도 든다. 그는 실존적 고뇌까지는 내팽개치지 못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대구 출신의 혁신계 운동 잔존 세력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줬던 형 박상희가 관여했던 대구 지역 남로당과 관련이 있다. 박정희도 형의 영향으로 남로당에 가입했고, 여순반란 사건으로 체포됐다. 이들은 박정희가 그토록 지우고 싶었던 과거의 문신 같은 존재였을 수 있다.


1차 인혁당 사건이 기소도 못한 채 불발로 끝났음에도 다시 2차 인혁당 사건이 만들어져, 사형 판결이 나자마자 집행됐다. 박정희의 콤플렉스가 배경이라고 혹자들은 지적한다. 박정희의 쿠데타 뒤 북한의 특사로 파견된 형의 친구인 황태성을 간첩으로 전격 처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정희는 첫 대통령 선거 때 윤보선으로부터 빨갱이로 몰렸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용공음해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용공음해로 돌파하고 권력 입지를 굳혔다. 자신의 주변과 관련있는 이들이 그 희생자로 선택됐다. 효과는 극대화됐다.




▲ 박정희는 인혁당 사건 등을 놓고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았지만, 

박근혜는 과연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을까? 

사진은 2014년 4월17일 오전 전남 진도체육관.   박종식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나는 그가 한국 사회의 큰 숙제를 쉽게 해결할 좋은 처지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명예회복과 역사 평가가 그가 대통령이 된 큰 이유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관동군-광복군 입대 시도-국군-남로당 가입과 전향-5·16 쿠데타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전력은 아킬레스건이다. 고통스런 조국의 현대사에서 출세와 영달을 위해 기회주의와 배신으로 일관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달리 생각해볼 수도 있다. ‘보수우익 애국세력’의 우상으로 대통령까지 한 사람조차 식민과 민족상잔이라는 우리의 고통스런 현대사의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가 걸었던 길을 고통스런 우리 현대사에서 부딪혔던 시행착오와 자기 모색으로 감싸안을 수 없는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박정희가 겪은 상처와 화해하는 것이고, 이는 그와 비슷한 상처, 그가 가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보듬어 안는 것이다.


딸에게 아버지를 비판하라고 종용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시대 때 희생당하고 비슷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껴안아 주며 화해하라는 거다. 그게 바로 아버지를 역사 속에서 사면해 모두가 동의하는 이 땅의 지도자로 승격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청와대 문건 사건의 와중에서 그는 이른바 ‘종북 토크쇼’를 운운하며 엄정한 대처를 지시했다. 통합진보당 사건의 실체와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헌재는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10만 당원 모두가 국가보안법 칼날 위에 올라갔다. 박정희가 밀어붙이던 인혁당 사건 전후가 떠오른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과 관련한 세월호 사건도 국민들을 찢어놓는 정쟁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게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지만, 이를 정권의 유불리로만 판단하는 권력의 시각이 느껴진다. 사건 초기 유가족들을 초청해 언제라도 연락하라던 박 대통령은 그 후 그들에게 눈길 한번조차 주지 않는다. 여당은 그들이 과도한 요구를 한다고 매도한다.


박정희는 인혁당 사건 등을 놓고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았지만, 박근혜는 과연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을까? 박정희는 고향 후배들을 형장의 이슬로 보내는 자신의 냉혹한 권력 의지를 자탄했을 거다. 박근혜는 세월호 사건이 정쟁으로 타락하고, 그 유가족들이 한낱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되는 현실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 한겨레신문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