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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 기자, 무죄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irene777 2015. 1. 20. 03:27



주진우 기자, 무죄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박근혜 5촌 살인사건’ 시사인 보도 무죄 의미와 파장은


- 미디어오늘  2015년 1월 16일 -




‘박근혜 5촌 살인사건’ 수사결과에 의혹을 제기한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공직선거법 위반 및 사자명예훼손 혐의에서 벗어났다. 서울고등법원은 16일 주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인용하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검찰이 상고할 경우 대법원 판결을 지켜봐야 하지만 큰 변수가 없는 한 대법원이 1심‧2심 결과를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애초 언론계 안팎에선 주 기자의 유죄를 예상하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보수 언론과 여당인사들이 1심에서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단이 감성에 휘둘려 무죄를 내렸다고 여론조성에 나섰고, 법무부가 언론보도에 호응하며 법률 개정까지 검토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정방송투쟁으로 해고된 YTN 기자 6명 중 3명의 해고가 지난해 말 대법원에서 확정되며 비관론은 힘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청구를 받아들이며 사법부 신뢰도 역시 추락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김용민 <나는 꼼수다> PD는 판결 직후 기자와 만나 “유죄를 상정하고 있었는데 무죄가 나와 감격스럽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정부가, 권력이, 검찰이 기자를 끌고갈 수도 있고, 구속시킬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의 입을 막을 수는 없다”며 소감을 밝혔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이상한 사건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준 재판부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 16일 '박근혜 5촌살인사건' 보도 관련 무죄 판결을 받은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오마이뉴스TV 화면 갈무리

 


재판부는 검찰이 주장한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박정희 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박근혜 정부에 부담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 EG회장의 형사고소와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려 했다는 비판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5촌간 살인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힘을 받게 됐다. 1심 무죄판결을 국민참여재판 제도 탓으로 돌렸던 보수언론 또한 할 말이 없어졌다.


2심 재판부가 박근혜정부의 정치적 압박이 불가피한 무죄판결을 내린 배경은 무엇일까.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언론자유는 국민주권을 수행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언론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며 사회적으로 쟁점인 사안을 부당하게 억제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취재를 통해 나름의 분석을 거친 기사에 쉽게 형사법이 적용된다면, 일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론의 장에서 토론이 이뤄질 것을 기대하는 행위마저 망설이게 해 궁극적으로 언론 자유를 위축되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주진우)는 박용철 살해사건의 의혹을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했다. 기사에서 박지만이 연루되었다는 단정적 표현은 없었다. 무리한 논리구성으로 외면 받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18대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공표된 게 문제될 수 있으나 오랜 기간 취재한 과정이 있었고 선거에 임박했다고 보도를 금지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허위사실로 볼 만한 보도내용이 없었고,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보도를 했다고도 볼 수 없었다는 의미다.




▲ 16일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총수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등법원 법정   ⓒ정철운 기자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으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 성립에 필요한 사실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과 박지만 회장과의 연루 가능성은 시사인 뿐만 아니라 경향신문, 동아일보 등 여러 언론사가 수차례 언급했던 내용이다. 재판부는 “피고는 신동욱 쪽 조성래 변호사를 통해 박용철의 증언예정 여부를 여러 차례 확인했다. 박용철 발언의 객관성을 파악하기 위해 검증하는 절차도 거쳤다. 그는 살인사건 현장을 찾아다니며 취재했고 국과수 자료와 경찰조사 자료를 입수해 보도했다”고 밝혔다. 그가 권력과 관련된 살인사건 취재를 필요이상으로 열심히 해서 ‘괘씸죄’로 고소를 당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 남편 신동욱씨는 수년 전 중국 청도에서 박지만 회장의 사주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 했다며 박 회장을 살인교사혐의로 고소했다. 박용철은 박 회장 측근으로, 박 회장과 신동욱의 입장이 대립되는 가운데 중요한 증인이었다. 박용철은 청도 사건의 박지만 연루가능성을 부인하다가 사망하기 전 다른 취지로 이해될 수 있는 진술을 했다. 박용철은 박 회장의 또 다른 측근인 정용희씨가 ‘박지만 회장의 뜻이다’라고 말한 녹음파일을 휴대폰에 갖고 있다고 했다. 


이 녹음내용이 청도 사건인지는 명확치 않은데, 시사인 기사는 이에 대해 중립적으로 진술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당시 신동욱 쪽 조성래 변호사는 박용철이 갖고 있는 녹음내용이 청도사건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신동욱 또한 박용철의 발언에 남다른 의미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2011년 청도 사건의 주요증인이었던 박용철이 사망했다. 박용철과 박근혜·박근령 자매를 수년간 취재해오던 주진우 기자 입장에서 살인사건 취재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확인된 내용만 썼다.




▲ 박지만 EG회장과 박근혜 대통령   ⓒ노컷뉴스

 


시사인은 ▶가해자 박용수의 살해 범행에 사용된 뼈칼과 망치에서 박용수 지문이 검출되지 않은 점 ▶금전문제로 살해했다는 경찰발표와 달리 박용수와 박용철의 돈 거래 내역이 발견되지 않은 점 ▶박용철·박용수 체내에서 의사처방이 있어야 쓸 수 있는 수면제 성분의 졸피뎀, 디아제팜이 발견 됐으나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 ▶가해자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뒤 자살하기 직전 설사약을 먹은 점 ▶유서 하단에 필압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 ▶사촌동생을 죽이고 자살하면서 유서에 죽는 이유를 남기지 않은 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런 언론의 문제제기가 타당하다고 밝혔다. (관련기사=<‘박근혜 5촌’ 박용수, 그는 살인자인가 피해자인가>)


의혹제기는 사실관계에 기반했다. 단순히 보도시점만 두고 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할 수 없었던 배경이다. 검찰이 문제 삼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혐의의 경우도 재판부는 “출판기념회 당시 갑작스럽게 발언에 나섰고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강조하면서 나온 수사적 과장부분만 (검찰이) 부분적으로 떼 내어 문제 삼으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해 단순 실수였던 발언을 두고 명예훼손을 주장하기에는 고의성도 없었고 이를 통해 얻을 이득도 불분명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1심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도, 2심 재판부도 기사에서 흠결을 찾아내지 못했다. 성실한 취재와 끝없이 진실을 추구했던 언론인 본연의 노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결과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의 친인척 범죄 혐의와 관련된 보도는 언론사로서 당연히 보도할 가치가 있었다. 권력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차원에서 검찰이 정치적인 기소에 나섰지만 사법부가 원칙에 맞게 판단했다”며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