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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강윤 - 대통령 비웃는 관피아들

irene777 2015. 2. 8. 21:26



[이강윤의 쓴소리]


대통령 비웃는 관피아들


- 미디어오늘  2015년 1월 22일 -




▲ 이강윤

국민TV  ‘이강윤의 오늘’ 앵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가 국민적 공분의 대상에 오르고, 급기야 대통령이 국가개조의 최우선 과제로 ‘관피아 척결’을 내세우던 작년 7월, 국무총리실과 산업자원통상부 출신 공무원들이 버젓이 낙하산을 타고 관련 협회에 부임했다. 해당 협회가 소규모이고, 유명하지 않은 곳이지만, 관피아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공직사회의 도덕성이 얼마나 마비되어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들여다 본다.  


낙하산으로 내려간 이들은, 전임 기관 근무 당시 비리를 저질러 감사원으로부터 해임권고를 받았던 인사라는 점과, 산하기관에 대한 정부 부처 간 ‘땅 따먹기 식 나눠먹기’가 고스란히 드러나, 대통령까지 공언한 관피아 척결을 대놓고 무색케했다는 점에서 개탄을 사기에 부족치 않다.  


이명박 정부 시절 무리한 자원외교로 수십 조원의 국고 낭비혐의가 제기돼 국정조사가 코 앞이다. 당시 자원외교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 곳 중에 ‘해외자원개발협회’(이하 해자협)라는 곳이 있다. 이 협회의 최고책임자인 상근부회장으로 국무총리실 국장 출신 송 모 씨가 지난해 7월 내려왔다. 해자협은 해외자원개발을 주 사업영역으로 하는 에너지기업들이 회원사로 가입해 지난 2006년 만든 이익단체로, 이명박정부 시절 생산유전확보 등 국책과제로 추진된 해외자원개발사업의 ‘저수지’ 역할을 한 곳이다. 2014년에도 인력양성 등 정부위탁업무를 맡아 나랏돈 120억원 가량이 지원되고, 해외자원개발 컨소시엄 구성 이나 해외자원관련 정보를 축적하고, 정부와 업계의 다리 역할을 하는 협회다. 이런 업무관련성 때문에 이곳 책임자는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자부) 퇴임관료들이 퇴임 후 가는 자리로 통해왔다. 역대 상근 부회장 중 약 절반이 산자부 출신들이었다. 통상 산하기관이나 협회-단체의 장은 업무관련성에 의거, 관련 부처 퇴임관료들 중 퇴임 당시 직급에 맞춰 내려가는 게 관례로, 관가에서는 속칭 ‘식민지’라고 표현할 만큼 할거의식이 강하게 작동된다. 이런 ‘관행적 질서’를 깨고 조정하는 것은 ‘힘’이다. 그 힘은 두 말 할 것 없이 권부 핵심인 청와대 정도에서 발휘된다. 동등 서열의 부처가 서로의 밥그릇을 놓치 않으려고 힘겨루기를 벌이면, 그보다 상급 기관인 청와대 말고는 이견을 조정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해자협 책임자로 총리실 출신 관료가 부임한 지난해 7월 상황을 보면  이런 사정은 더욱 자명하게 드러난다.




▲ 아랍에미리트를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11월 21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알아인 알-라우다궁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7월은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가 ‘대한민국病’의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서슬이 시퍼럴 때였다. 한전 한수원 KOTRA 등 '공룡 급' 알짜배기 산하기관만도 30여개에 달하는 산자부 입장에서 해자협은 주목 대상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대대로 산자부 출신이 가던 이 곳에 국무총리실 출신 국장이 내정돼 ‘내 땅’을 하나 빼앗기게 되자 그 연유가 궁금은 했을 것이다. 총리실이나 청와대 중 어디서 손을 썼는지는 정확히 파악되기 힘들지만, 최고책임자 자리를 타 부처에 내준 산자부로서는 최고책임자 자리 대신 산자부 몫 임원 자리라도 하나 차지해 ‘누대로 내려온 내 땅’에 연고권을 확인하고자 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일. 총 직원 25명에 불과한 해자협에 상무 자리를 하나 늘려 자기 부처 출신 퇴임공무원을 심었다. 


관피아를 낙하산에 태워 안착시키는 과정은 ‘은밀성과 잠행성’이 특징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장기판 말 쓰듯’ 드러내놓고 교통정리를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까지 공공연하게는 하지 못한다. 산자부가 장(長) 자리를 내주는 대신 자기 부처 출신 상무 자리를 하나 늘리면서 총리실이나 해자협과 어떤 협의를 했는 지는, ‘은밀잠행’ 특성 상 속속들이 밝혀지기란 쉽지 않다. 해자협 책임자 자리가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하거나, ‘저 자리에 누가 가는지’를 많은 이들이 눈 부릅뜨고 지켜볼 만큼 대단히 센 자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서슬퍼런 지시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부처 간에 서로 암묵적으로 인정해주던 할거주의를 깨가면서 총리실 국장이 최고책임자로, 자리를 빼앗긴 산자부는 위인설관(爲人設官)식 상무 자리 하나 신설해 낙하산 태워 내려보내는 과정에서 벙어리 냉가슴 앓게 된 것은 해자협이었다. 해자협은 새로 늘어난 상무의 연봉과 업무를 마련하느라 작년 여름 진통 아닌 진통을 겪었다고 한다. 회원사들의 필요에 의해 상무 자리를 늘리는 게 아니어서 회원사들이 상무직 신설에 드는 비용의 추가 갹출에 난색을 보였을 것은 뻔할 터. 해자협 1년 예산은 26억 가량이라는데, 이중 인건비가 18억원 정도고, 사업비는 8억원에 불과할 만큼 인건비 비중이 크기 때문에, 연간 최소 2억원 가량 소요되는 상무 자리를 하나 늘리는 것이 해자협으로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사람만 데려다 놓고 놀릴 수는 없으므로, 업무 재분장 과정에서 조직과 업무를 이리 쪼개고 저리 붙이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해자협은 총원 25명에 불과한 소규모 협회로, 2006년 창립 후 8년 간 상무 한 사람으로 업무를 해왔다. 직원들은 “이 작은 조직에 왜 상무가 둘 씩이나 필요하냐. 팀장이 하던 일을 왜 상무가 맡는지 모르겠다”, “자체 승진은 시키지 않으면서 환갑도 넘은 비리 전력자를 받아야 하느냐”, “신입사원은 뽑지 않으면서 비리 퇴직관료를 위해 협회 회원사들에게 상무 연봉 포함 소요경비 2억원 정도를 떠넘겨야 되느냐”며 위인설관을 비판했지만,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친 모양이다. 그게 관(官) 앞에만 서면 작아질 수 밖에 없는을(乙)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신임 상무로 온 사람이 전임 근무처에서 저지른 비리 때문에 감사원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신임 김 모 상무는 2009년 5월 서류 상 산자부 퇴임 다음 날짜로 산자부 산하 정부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하 에기평)에 이름을 올리고 경영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2009년부터 2011년 까지 3년 간 직원들을 허위로 출장보내고 그 출장비를 상납받아 수 천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나, 감사원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던 인물이다. 2011년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돼 7개월 여 감사 끝에 2012년 4월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통보됐다. “비자금 조성의 주범 격인 김 모 상무 해임 등 비리 관련자 6인에 대해 해임 정직 감봉, 원장에 대해서는 추가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요지였다. 에기평은 자체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임통보자인 김 모 상무를 정직 2개월로 대폭 감경하는 솜방망이 처벌을 ‘감행’했다. 감사원으로부터 징계요구를 받은 비리 직원 중 한 사람을 징계위원장으로 앉힌 인사위원회에서 였다. 피고석에 앉아야 할 사람이 재판장이 되어 처벌 수위를 정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2012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소속 정우택의원이 지적하고, 조선일보 등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국감장 호통 정도였을 뿐 ‘가시적 시정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감사원의 결정과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한 에기평의 처사를 두고 당연히 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나 당시 이 모 에기평 원장의 퇴임 사흘 전 이뤄진 인사위원회 결정은 유야무야 덮혀버렸다고 한다. 인사위원회의 결정 나흘 뒤 취임한 신임 원장은 “전임 원장 시절 이뤄진 것으로 아는 바 없다”며 향후 자정 선언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이게, 일부이지만,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 공공 기관’의 업무방식이자 도덕성 수준이다.  


세월호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장-차관/실장급 고위직 공무원들의 재취업에 대해서는 감시가 높아지는 듯 보이지만, 그 아랫선에서는 아직도 이런 사례가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 특히 산자부, 국토부, 미래과학부 등 인-허가권이나 실물경제 관련 정도가 강한 부서에서 ‘관피아는 아직도 무풍지대’라는 게 관가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중평이다. 


‘며칠 얻어터지다 지나가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 내가 갈 자리인데 그 정도야 눈 감고 지나가야지’ 라는 보험 성 상부상조가 도려내지지 않는 한 ‘제 2의 해자협’은, ‘제 2의 송 국장’과 ‘김 상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곳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일이기에 청와대도, 언론도 알지 못한 채 지나가는 사이 관피아는 그 뿌리를 더욱 깊숙이 내리고 또아리를 튼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구조’와 ‘체제’로 자리잡는다. 연말정산으로 몇 십 만원의 절세를 못받게 돼 아우성인 수 백만 ‘일벌’들을 보면서 그 관피아들은 속으로 뭐라고 할까.   


 

곧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가 시작된다. 소리소문없이 자리 꿰차고 진주한 그 관피아들, 국정조사장에서 어떻게 ‘활약’할지 궁금하다. “재임 중 벌어진 일이 아니기에 본인은 알지 못한다. 앞으로 잘 하겠다”고 잠시 머리 조아린 뒤 웃으며 유유히 국정감사장을 빠져나가는 것은 아닌지, 저녁에는 다시 고급 밥집과 술집으로 관리감독 부처 공무원들 뫼시고 가 나랏돈 법인카드로 접대하며 “오늘 애쓰셨다”고 건배하는 것은 아닐지…. 그들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억울하면 철밥통 되세요~”



- 이강윤  국민TV ‘이강윤의 오늘’ 앵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