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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편지> 저가 담배와 싸구려 정부, 저질 정권

irene777 2015. 2. 26. 00:13



저가 담배와 싸구려 정부, 저질 정권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96


- 한겨레신문  2015년 2월 23일 -




▲ 곽병찬 대기자



  취임2년 정책 모음집, MB 자서전의 자화자찬과 다를바 없군요

설 민심 의식한 ‘저가 담배’ 싸구려나 피우다 죽으란 건가요?




▲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발언을 마친 뒤 

자료를 보고 있다. 사의를 표명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회의에 불참해 자리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 2015.2.23



설날 모처럼 어울린 고향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풍경이 심심찮게 목격됐습니다. 한 친구가 묻습니다. “담배 끊었어?” “기분 나빠서 끊었어.” “그래? 잘 했네.” 잠시 뜸을 들인 뒤 그는 다른 친구에게 다가갑니다. “담배 끊었어?” “답답해서 어떻게 살라고 그걸 끊어.” “그래? 그럼 한 대 줘.” 그 주변으로 친구들이 몰려듭니다. 담배갑을 쥔 친구는 울상이지만, 화색이 도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는 위안을 받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여당은 몹시 답답했을 겁니다. 이미 저질러 놓은 악재들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게 담뱃값 아니 담뱃세 폭등이었습니다. 차돌 지지층이라던 노인들과 심지어 영남 유권자들까지 흔들어놓은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담뱃세를 대폭 올린 것이입니다. 10조원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벌충하기 위해 세금을 잔뜩 올려놓고 국민 건강을 위한 금연정책이라고 떠벌였습니다. 가난한 끽연가들을 원숭이 취급하는 것이었으니, 복장이 뒤집히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설 전 새누리당이 ‘저가 담배’란 걸 끄집어 낸 건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정부도 못 이기는 척 물러설 태세였습니다.


설은 여론 시장이 가장 활성화됩니다. 좋건 나쁘건 한쪽으로 여론이 수렴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설을 앞두고 민심이 더 악화되는 걸 막고, 화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걸 진정시키기 위해 내놓은 게 저가 담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사람들 마음을 더 뒤집어놓았습니다. 그러면 올리지나 말 것이지, 가난뱅이는 싸구려 담배나 피우다 병들어 죽으라고? 아마도 그 때문일 겁니다. 설이 지나자마자 저가 담배 논의는 핫바지 바람 빠지듯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습니다. 명분도 실리도, 게도 구럭도 다 잃어버리겠다 싶은 것이겠죠.


취임 2주년을 앞두고 청와대는 엊그제 ‘박근혜 정부 2년 정책 모음집’을 펴냈습니다. 경제, 국가 혁신, 국민 행복, 통일 기반 등 4개 분야의 항목별 정책 성과란 걸 모은 것인데 자화자찬은 여전했습니다. 창조경제의 생태계를 일구었고, 남북 및 외교 정책의 원칙과 기본을 바로 세웠으며,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해 국가 혁신의 기반을 다졌고, 각종 복지 정책으로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갈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올해는 경제 군불 때기로 서민 안방을 덥히고, 경제 회복의 결실을 수확하겠다고 합니다.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전히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물 경제, 심각한 청년 실업,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남북 및 한·일 관계 등은 아예 외면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 달 전 내놓은 자화자찬 자서전의 축소판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대통령 취임 기념일이 다가오면 정부 성과를 칭송하기에 바쁜 게 집권여당이지만, 염치가 없었던지 올해 새누리당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박근혜 정부 2년은 서민 경제 파탄, 분열과 반목의 2년”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그저 지켜보았습니다.


‘대통령의 돌쇠’를 자처해온 이정현 최고위원만 “그간 닦은 것은 고속도로와 레일이며 앞으로는 그 위를 달릴 일만 남았다”고 칭송했지만, 고장난명입니다. 동조하는 이가 없습니다. 이런 옹색한 처지를 두고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씨비에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당 의원이 내각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친정체제를 강화했는데, 대개 정권 말기에나 구성하는 친위부대를 그렇게 일찍 구성한 것에 대해 논란이 많이 있다.”


경실련이 전문가 300명에게 물어 본 박근혜 정부 2년에 대한 평가는 참담합니다. 응답자의 78%가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비민주적’이라고 평가했고, 5점 만점에 1.8점만 주었습니다. 정책에 대한 평가에서도 82%가 ‘실패했다’고 했으며, 그 이유로는 공공성 결여가 56%, 인사 실패가 54%로 꼽혔습니다.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었습니다. 대통령 공약 674개 가운데 421개가 후퇴하거나 방치돼 있다고 보았으며, 국민 대통합 공약은 0%였고, 경제 민주화 분야는 18개 공약 중 5개만, 창조경제 공약 14개 가운데 1가지만 이행됐다고 답했습니다. 한 일이라곤 숨 쉬는 것밖에 없었던 것같습니다. 국정 쇄신을 위해 교체해야 할 국무위원과 기관장은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총애하는 순이었습니다. 최경환 부총리(50%), 황교안 법무부 장관(35%), 이완구 국무총리(24%) 등. 교체해야 할 보좌진은 김기춘 비서실장(88%), 기관장은 김진태 검찰총장(46%)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국민은 많지 않습니다. 국가의 실패, 국민의 불행으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개탄과 비판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그걸 뒤집으면 충고가 됩니다. 참고로 오늘 있었던 경실련 평가 토론회의 주제는 ‘외면당한 민생, 추락한 신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였고, 새정치연합의 주제는 ‘불통의 리더십, 무너진 민생 경제’였습니다. 요컨대 신뢰를 회복해 민생을 살리자는 것입니다. 신뢰의 바탕은 정직입니다.


국민을 속이려 하지 마십시요. 담뱃값 인상과 저가 담배 논란은 그동안 저지른 수많은 거짓과 속임의 표본이었습니다. 재정적자가 심각하니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하면 당장은 질책을 당할지언정 신뢰를 잃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금연을 촉진해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겠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담뱃값(담뱃세)을 폭등시켰습니다. 게다가 저가 담배라니, 가난한 이들이나 벌이가 없는 노인들은 싸구려 담배나 피우다 빨리 죽으라는 건가요? 그런 거짓말이 되풀이되다보니, 이 정권은 그야말로 싸구려 정부, 저질 정권이 되었습니다. 입만 열면 기본과 원칙을 중시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정직한 정권, 정직한 정부를 선언하고 실천하기 바랍니다.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