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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기 애국운동? 박정희에게서 퍼올린 유신의 영감

irene777 2015. 2. 26. 04:22



국기 애국운동? 박정희에게서 퍼올린 유신의 영감

유신독재 ‘애국놀음’ 지켜본 박근혜가 애국 강조하는 이유


진실의길  육근성 칼럼 


- 2015년 2월 24일 -






집권 3년 차.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는데 벌써 레임덕 얘기가 나온다. 대통령 지지율은 30% 초반에 머물고 있고, 여당 지지율도 크게 내려앉았다.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지율이 최소한 30%는 넘어야 하지만 이 마지노선마저 언제 깨질지 모른다.



대통령에겐 옛 국기하강식 장면이 강렬한 임팩트?


영화의 한 장면이 위기에 처한 박 대통령의 뇌리를 강타했던 모양이다.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국기 하강식 장면에서 얼마나 강렬한 임팩트를 받았는지 핵심국정과제 점검회의석 상에서 그 장면을 거푸 입에 담았다.


“애국가에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이런 가사가 있지 않습니까.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하고...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 하다가도 애국가 들리니까 국기배례를 하고… 우리가 이렇게 해야 소중한 우리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무조건 나라, 애국가, 국기를 사랑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단다. 누구와 꼭 닮았다. 박정희는 자신을 향한 비판과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국가주의를 내세워 유신체제를 옹위하는 방패로 활용했다. 애국가와 국기의 반열에 자신의 사진을 나란히 배치해 놓고 국민들에게 충성과 숭배를 강요하면서,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숭배가 곧 자신을 향한 충성심으로 표출되도록 광란의 질주를 벌인 독재자다.





정부부처 ‘애국운동’에 팔 걷어붙여


대통령이 애국심을 강조하자 정부가 움직였다. 행자부를 비롯해 10개 부처가 이 ‘애국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태극기 달기 운동, 민간 건물 국기 게양대 설치 의무화, 학생들에게 태극기 게양 인증샷 제출 요구,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 부활, 방송을 동원한 태극기 애국주의 홍보와 기업 참여 유도, 유치원생 대상 국기교육 등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되자 행자부가 해명을 내놓았다.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건 맞지만 의무화가 아닌 권장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관공서나 공공기관, 각급학교 등은 권장사항일지라도 의무이행 사항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아무튼 유신독재 시절 행해졌던 광기어린 ‘애국놀음’을 재현하고자하는 의도가 박 대통령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확인된 셈이다.


박정희는 유신독재 헌법을 제정하면서 이와 맞물려 ‘태극기와 애국가’를 앞세운 애국주의를 국가적 총동원사업으로 추진했다. 1972년 문교부는 충남도 교육청이 실시하고 있던 ‘국기에 대한 맹세’의 내용을 고쳐 ‘무조건 충성’ 조항을 부각시킨 맹세문을 전국에 배포하고 강제 암송하라고 지시한다.





유신 시절 국기 경례 거부하면 ‘반국가적 사상범’


하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일이 전국 여러 곳에서 벌어졌다. 교회 등 종교단체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가 일제의 신사참배와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에 해당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국기 모독 혐의로 많은 학생들이 제적을 당하고 교사가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중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1972년 당시 전남 광양군 진월면 오사리에는 교회가 하나 있었다. 그 교회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약 100명의 아이들이 ‘오사교회’에 모여 주일학교 교사인 양영례(당시 27세)씨와 찬송가도 부르고 밭일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진월중앙초) 교실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진다.


학교 측이 화들짝 놀라 교회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교회 목사는 어린 학생들일지라도 신앙의 자유와 양심이 있으니 경례를 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은 경찰이 나서 아이들을 추궁했고 아이들은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매를 맞아야 했다. 경찰은 결국 주일학교 교사 양씨를 ‘중대한 반국가적 사범’으로 몰아 구속시켰다. 사상범 취급을 받은 까닭에 면회도 허용되지 않은 채 독방신세를 져야 했다.




▲ 1972년 당시 전남 광양 오사교회   출처: 한겨레



유신정권의 ‘애국놀음’


종교적 이유로 국민의례를 거부한 학생들을 무더기 제적시키거나 그들의 입학을 불허하는 일이 다수 벌어졌다. 학부모들이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학생은 학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헌법보다 학칙이 우선이라는 이런 황당한 판결이 가능했던 것은 유신독재의 서슬 때문이었다.


1971년에는 극장에서 애국가 상영이 의무화된다. 이렇게 시작된 강압적인 애국심 고취는 박 정권 말기에 접어들며 극에 달한다. 1978년 ‘오후6시 국기하강식’을 전국적으로 거행하라는 지시를 내려 관례처럼 행해지던 하강식을 의무화한다. 이 의무화 조치로 인해 모든 국민은 오후 6시만 되면 그 자리에서 서서 차렷 자세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해야만 했다. 당시 경향신문은 ‘1분 멈춤 거리의 조국애’라는 사회면 톱기사에서 하강식 장면을 묘사하며 “거리는 삽시간에 고요한 광장으로 변했다”고 기술했다.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은 1989년 이후 사라졌다. 또 모든 건물에 국기게양대를 설치해야 하는 의무조항도 1999년 폐지됐다. 2007년부터는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문구를 “정의와 진실로서”로 바꾼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사용되고 있다. 이마저도 ‘파쇼의 잔재’라는 지적이 많다.




▲ 국기 하강식 장면(1978)   출처: 경향신문




▲ 극장 애국가 상영 때 기립 예의 갖추지 않으면 처벌받았다.   경향신문(1971.3.15)



박 대통령과 유신의 영감


국가와 국기 등 상징물을 내세워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는 수법은 독재국가나 전체국가에서 민중을 탄압하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과거지사다. 북한을 빼면 어디에도 이런 수법이 통하지 않는다.


낡고 낡은 수법을 다시 재현하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뭘까. 보고 들은 게 무섭긴 무섭다. 과거 ‘유신의 퍼스트레이디’ 시절 아버지 박정희 옆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고스란히 떠올렸나 보다.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요해서라도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건 유신적 발상이다. 끔찍할 뿐이다.


유신의 영감에 푹 빠져 있는 박 대통령. 대체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몸은 현재지만 마음과 정신은 유신의 그때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정말 나라가 걱정된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