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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5인방 보자기, LA 구조센터에 남겨졌다

irene777 2015. 3. 11. 14:38



독수리 5인방 보자기, LA 구조센터에 남겨졌다

세월호 유가족, 미국서 간담회 진행..."지난해 4월 16일에 멈춘 내 시간"


- 오마이뉴스  2015년 3월 10일 -





▲ LA간담회가 끝난 후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 이철호



세월호 유가족들이 미국의 각 도시를 돌며 세월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LA를 비롯한 미 서부 지역에는 최윤민 학생의 어머니 박혜영씨와 이재욱 학생의 어머니 홍영미씨 두 분이 여러 차례 간담회를 했고, 언론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혜영씨와 홍영미씨는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LA를 방문했다.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사람이 함께 울었고, 끝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않는 것, 세월호 참사 진상을 규명하고 그 후속 조치들을 제대로 이어가는 것만이 대한민국을 '사람 사는 더 나은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가도록 하는 길이라는 데 참석자 모두 공감했다.



세월호 유가족, 미 LA 재난구조센터 방문


지난 6일 두 유가족은 LA 소방국의 재난구조센터(LA Emergency Operation Center)를 방문했다. 


재난구조센터는 LA시 소방국 산하에 설치된 기구로서 응급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컨트롤 타워에 해당하는 곳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방문에 따라 LA시 지역의 해상 재난 구조를 담당하는 소방서장과 재난구조센터장이 직접 나와 센터의 운영과 ICS(Incident Control System)에 대해 성심껏 설명해줬다. ICS는 응급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일종의 통합 매뉴얼이자 시스템이다.




▲ '단원고 독수리 5인방' 보자기는 LA 재난구조센터에 남겨졌다.   ⓒ 이철호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연방정부기관, 지방정부기관, 경찰, 소방, 심지어 민간 구조 기구를 망라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이 주목 받는 이유는 모든 상황에 따른 세세한 대처 방안을 마련한 매뉴얼과 통합 통신 체계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매일 같이 반복되는 교육과 훈련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여의 설명 후, 만약 이곳에서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일어날 경우 어떻게 대처했겠느냐고 묻는 질문에 고메즈 서장은 그저 매뉴얼에 따르면 된다고 답했다.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 LA 재난구조센터를 방문한 유가족이 고메즈 소방서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이철호



고 이재욱군의 어머니 홍영미씨는 LA에서 열린 어느 행사든 재욱군이 친구들과 함께 찍은 '단원고 독수리 5인방' 사진을 넣은 작은 보자기를 들고 다녔다. 이 보자기는 LA 소방국 재난 구조센터에 남겨졌다. 소방관이 되고 싶어했던 재욱이의 사연을 들은 고메즈 소방서장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 보자기를 받았다.


지난 6일 350여 명이 모인 LA 간담회는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 상영 후 진행됐다. 두 어머니는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 재욱이와 딸 윤민이의 이야기를 전했다. 참가자들은 작고 약했던 최윤민양과 튼튼한 허벅지를 자랑하던 이재욱군의 모습을, 그리고 차가운 바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들의 모습을 가슴으로 들었다. 윤민양의 어머니 박혜영씨는 간담회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가족의 시간은 지난해 4월 16일에 멈췄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하나예요.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누가 무엇을 잘못해서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야만 했는지 알고 싶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그럽니다. 저는 그만둘 수가 없어요. 제 딸의 일이잖아요. 진실 규명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책임자 처벌을 한 후에야 배상·보상을 논의해야죠. 많은 분이 그럽니다. '너희 많이 받지 않았느냐, 뭘 얼마나 더 달라고 그러는 거냐?'


저희는 아직까지 기부금이든, 배상금, 보상금이든 한 푼 받은 것 없습니다. 활동에 필요한 돈은 유가족들이 매달 일정 금액을 모아서 사용합니다. 저희는 돈 받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어서 아직 그 문제를 협의할 생각이 없습니다. 세월호 인양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러면 진상 규명에 좀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가족들의 시간은 지난해 4월 16일로 멈췄습니다. 어제도 4월 16일이고, 오늘도 4월 16일이고, 내일도 4월 16일입니다. 진상이 규명되지 않는 한, 제가 윤민이의 죽음을 납득하지 않는 한 그냥 제 시간은 4월 16일에 멈추어져 있습니다."




▲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 상영 후 유가족들이 간담회를 가지고 있다.   ⓒ 이철호




▲ UCLA 간담회   ⓒ 이철호



재욱군 어머니 홍영미씨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유가족이 만났던 이야기도 전했다.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하기 전날 유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했죠. '유가족이 가슴에 여한이 남지 않도록 진상 조사하고 책임자 처벌해서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그렇게 말했습니다. 녹음을 해두지 않은 게 후회스럽습니다.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으니까요. 


저만 생각하던 제가, 이 일을 겪고 나서야 깨어나 내 이웃을 생각하고 내 나라를 생각하는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움직입니다. 내일이 될지 30년 후가 될지 모르나 나중에 재욱이를 만나면, 엄마는 너를 지켜주지는 못했지만 네가 꿈꾸던 나라를 만들고 왔노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객석에서는 한국에 대한 원망 섞인 발언도 나왔다. 


"안 된 일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 미국 대사가 다친 것에 대해서는 온 국가가 나서서 상전 모시듯 하면서, 차가운 바다에 자식을 묻은 어머니들의 피울음이 하늘에 사무치는데도 외면하는 이게 국가입니까?"


두 분의 유가족이 3일간 LA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2개의 TV 방송, 3개의 라디오 방송, 3개의 신문과 인터뷰했다. UCLA와 CSUN 대학의 학생과도 간담회를 가졌다. 특히 참석자 대부분이 언론학을 전공하는 미국 학생이었던 CSUN에서는 세월호 사건 이후 잘못된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한 질문과 토론이 주를 이루었다. 한편, 지난 4일엔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집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콘서트도 열렸고 세월호 이야기를 담은 인형극도 진행됐다.




▲ CSUN 언론학과 학생들과의 간담회   ⓒ 이철호




▲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 콘서트   ⓒ 문선영



그러나 모든 행사가 '공감'으로만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LA영사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여지없이 5~6명의 보수 단체 회원들이 나와 야유와 욕설을 쏟아내며 기자회견을 방해했다.


기자가 두 분 어머니를 처음 만나던 날, 두 분께 물었다. 이렇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더 힘들지 않느냐고. 재욱군 어머니께서 답했다. "아이가 떠난 지 거의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감정이 메마르고 심장이 다 굳어서 괜찮다. 진상 규명되고 대한민국이 안전한 세상이 되면 다시 메마른 감정 사이로 새싹이 피어날지 모르겠다. 그 때가 되면 오히려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고 말을 흐렸다.



- 오마이뉴스  이철호 기자 -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8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