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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다른 나라는 멈춘 '공황', 한국은 왜 반복될까 -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irene777 2015. 3. 16. 15:33



다른 나라는 멈춘 '공황', 한국은 왜 반복될까

[서평] 사고의 유형과 교훈 짚어주는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 오마이뉴스  2015년 3월 16일 -




"문제는 위험이 아니라 권력이다."- 찰스 페로


안전한 사회는 가능할까.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사회 안전망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졌다. 멀쩡히 바다를 항해하던 세월호가 특별한 자연적 특이점도 없는데 갑자기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대한민국은 2014년 4월 16일, 공황 상태가 됐다. 사고가 났다는 자체보다 사고 후 미흡한 대처에 국민은 분노했다.


현대 대형사고 분석의 전문가인 찰스 페로의 말대로 위험이 아니라 권력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권력을 가진 소수가 피할 수 없는 위험을 다수에게 떠넘긴다면 이는 범죄다.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을 쓴 채 '대한민국호'는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경제'라는 깃발을 달고.


박상은은 현대 사회의 사고는 위험을 통제할 권리를 권력자들이 독점함으로써 발생한다고 진단한다. 그의 책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2015, 사회운동 펴냄)를 통해 위험을 통제할 권리를 국민이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박상은은 '사회진보연대'와 '세월호참사 국민대책위원회의'의 '존엄과 안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월호는 천천히 침몰했다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오전에 갑자기 침몰한 게 아니다. 기업들이 돈을 더 벌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되도록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경제 활동에 이바지하도록 민영화를 확대한다는 그럴듯한 정책들이 세월호 사고의 배후라고 볼 수 있다. 책은 이렇게 정의한다.


"지난 20년 동안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너나없이 소리 높여 외친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세월호를 침몰시켰다. (중략) 인간의 생명과 존엄, 자유와 평등, 역사와 문화는 경제적 효율성에 종속되는 부차적인 고려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는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진 사건이다."-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11~12쪽


정확한 진단이다. 세월호 사고 이전에도 1953년 여객선 창경호 침몰 사고로 300여 명이 참변을 당했다. 1970년 남영호 침몰 사고로 326명이 죽었다. 1993년에는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292명이 참변을 당했다. 


1998년 4월 설립된 규제개혁위원회(RRC)가 하는 일은 정부의 규제 정책을 심의하고 정비하는 일이다. 설립연도에만 건설 산업 분야, 자동차 관련, 물류·유통 부문, 벤처 산업 관련 부분 등을 포함한 전체 규제 1만 1125건 가운데 5430건(48%)을 폐지하고 2411건(22%)을 개선하는 등 총 7841건(70%)의 규제를 정비했다.


각종 규제로 비효율을 없앤다는 취지로 규제 완화가 추진되는데, 그 이면에는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해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세월호 사고는 이런 구조적인 정책이 만들어낸 참사였다. 선령 규제 완화, 선사와 선주의 책임 완화, 계약직 및 비정규직의 고용, 과적의 묵인 등이 세월호를 천천히 바다 속으로 몰아넣었다.


몇몇 책임자 처벌이나 유가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안전을 위한 규제를 강화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이 마련돼야 하리라.




▲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박상은 지음 / 사회운동 펴냄 / 2015. 2 / 186쪽 / 9000원 ⓒ 사회운동



사고 공화국의 실상


붕괴 사고, 화재 사고, 기름 유출 사고 등 우리는 수많은 사고들을 겪었다. 부실 공사로 인한 붕괴사고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1992년 신행주대교 붕괴 사고, 1993년 청주 우암상가 붕괴 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00년 대구 지하철공사장 붕괴 사고, 2005년 이천 물류창고 붕괴 사고, 2014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등이 그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부실 공사로 균열이 발생하는 것을 알면서도 영업 손실과 자산 손실만 걱정해 영업을 계속하다 발생한 '인재'다. 건설 비리와 탐욕은 죄 없는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국민의 안전보다는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는 관행은 빨리 뿌리 뽑아야 할 개혁 대상이다.


때로 정부는 사고가 나면 후속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아전인수격일 때가 많다. 세월호 사건 후 해양경찰청을 없애는 등의 정책이 바로 그런 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이후엔 지하철 공사 비용 절감을 이유로 내구 연한을 없애고, 인력을 줄여 검수 주기를 늘리는 등 오히려 안전 대책을 후퇴하게 하고 말았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사회는 세월호 사고를 통해 이윤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키는 구조와 관행이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49쪽


더 안전한 사회로 가기 보다는 여전히 기업의 이윤 추구를 우선하는 정책으로 가는 규제 개혁이 이뤄지고 있다. 외국의 경우 대형 사고가 안전 대책으로 가는 시발점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안전 대책, 외국은 되는데 한국은 안 되고 있다


1911년 뉴욕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공장에 화재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역사상 9·11테러 이전의 최악의 재해였다. 즉각 공장조사위원회가 결성돼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는 1912~1913년 새로운 노동법을 입법하는 토대가 됐다. 이는 공장법의 황금시대를 낳았다.


트라이앵글 화재 사건은 미국의 노동법과 산업안전법을 현대화하고, 무과실 책임주의 같은 산업재해 보상법과 사회보장법의 토대가 됐다. 1968년 미국 파밍튼 탄광 폭발 사고는 진폐증연합을 결성, 조합원에 대한 살인죄 적용 등 탄광 안전 기준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다.


1987년 영국의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침몰 사고는 '기업살인법'을 태동했다. 최초로 개인이 아닌 기업을 살인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후에 법을 정비해 기업도 살인죄로 기소할 수 있게 됐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게 물을 수 없게 한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아무리 기업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안전을 등한시해도 책임을 물을 도리가 없다.


1980년 엑슨 발데즈 원유 유출 사고는 징벌적 배상 제도를 만들어낸 사건이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겪은 우리로서는 다른 나라 일일 뿐인 게 가슴 아프다. 아직도 삼성의 책임 회피로 태안의 주민들은 아파하고 있다. 그 누구도 거대 기업 삼성에 제대로된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다.


엑슨사는 오염 방제 비용으로 21억 달러, 형식적 유죄를 인정해 민사제재금 9억 달러, 오염 피해자들에게 3억 300만 달러를 자발적으로 지급하였다. 그러나 태안 기름 유출 사고는 삼성이 '선박소유주 책임제한'을 인정받아 56억 원만 내놓았다. 이는 총 피해액 7341억 원의 1%에 불과하다. 엑슨사의 200% 책임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사고가 있을 때마다 안전 대책이 마련되는 외국의 사례는 아직 우리에겐 그림의 떡인 형편이다. 사고가 있을 때 반짝 대책이라고 내놓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기업에게 유리한 대로 규제가 느슨해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2013년 방글라데시의 한 의류 업체에서 대규모 화재가 일어났다.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기록했다. 이곳은 낮은 임금 때문에 세계 굴지의 의류 회사들이 입주해있다. 우리나라 의류업계도 진출해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업체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업체는 방글라데시 화재 건물 안전 협정이나 노동자 안전을 위한 동맹에 여전히 서명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은 한국에서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안전에 관한 한 뒷전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심지어는 한국 언론은 한국 기업이 얼마나 손해를 봤느냐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는 점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한 기업 윤리는 하루 빨리 없어져야 안전한 사회로 갈 수 있으리라. 책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사람 목숨의 무게는 똑같다고들 말한다. 권력이 있든 없든, 부자든 가난하든, 국적이 같든 다르든, 그러나 정말 그럴까. 우리는 한국기업이 다른 나라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에 무관심하다. (중략) 우리의 무관심을 등에 업고 한국기업은 제3세계 노동자들을 오늘도 세월호에 태우고 있다."-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115쪽



- 오마이뉴스  김학현 기자 -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9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