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죽고 사라졌다고 여겼겠지만…
- 시사IN 2015년 3월 23일 -
돌아오는 시간에는 예외가 없다. 세월호(사진)가 침몰하여 숱한 생명이 세상을 떠난 지 곧 1년이고, 3·11을 고유명사로 바꾼 동일본 대지진은 지난주 4주년을 맞았다.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시간은 돌아올 테고, 그때까지 살아 있을 누군가는 여전히 어정쩡한 자세로 또는 짐짓 태연한 척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 시간을 마주할 것이다. 한편 시간은 쌓인다. 쌓이는 시간에는 법칙이 없다. 빈틈없이 기록하며 쌓을 수도 있고, 서로 다른 기억을 모아 겹치는 부분을 조합하고 꼬인 부분을 풀어가며 쌓을 수도 있다. 물론 시작점과 가까운 시간일수록 앞쪽에 집중하고, 시작점에서 먼 시간일수록 뒤쪽에 중심을 두는 게 맞겠다.
세월호 사건은 시간으로나 공간으로나 너무나 가까운 일이라 돌아오는 시간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지나가는 시간을 어떻게 쌓아야 할지 섣불리 말하기 어렵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보다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을 터, 시간을 쌓는 방법과 자세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사히 신문> 저널리스트가 대지진 발생 시점부터 100시간 동안 총리 관저에서 벌어진 일을 분 단위로 기록한 <관저의 100시간>(후마니타스)은 사건에서 가까운 시간을 쌓는 방법을 알려준다. 재난에 대응하는 컨트롤타워에서 벌어진 일을 속기로 적은 듯한 글이라, 수시로 도착하는 감당 못할 소식을 어떻게 다루는지, 잘못된 예측과 근거 없는 믿음이 어떻게 확신을 얻는지, 왜 언론에는 현실과 다른 이야기가 발표되는지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 판단과 해석이 작용하는 검증에 앞서 주관적 관점을 걷어낸 팩트의 기술(記述)이 왜 필요한지가 새삼스러운 이유는, 여전히 사고 원인과 과정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세월호가 떠오르기 때문이겠다.
▲ ⓒ해양경찰청 제공
체르노빌에서 후쿠시마의 미래를 보려는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마티)는 아마도 3·11을 가장 먼 시간에서 바라본 이야기일 텐데, 아우슈비츠 같은 비극의 역사 현장을 찾는 여행 방식 ‘다크 투어리즘’을 바탕으로 1박2일 동안 금지구역을 ‘관광’하며, 이미 죽어 사라진 곳이라 여겨지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시간을 쌓아가는 그곳이 지난 수십 년을 어떻게 겪었는지 살핀다. 체르노빌 사람들이 그토록 어두운 이야기를 내보이며 관광 상품까지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입을 모아 체르노빌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걱정이라고 말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체르노빌이 이야기되는 게 반갑다고 한다. 유가족의 육성 기록을 모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을 읽어가기가 쉽지 않은 걸 보면, 아직 세월호가 상상하기에는 먼 시간이지만, 언젠가는 마주할, 쌓아가야 할 시간이 아닐까 싶다.
- 시사IN 박태근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 -
<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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