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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곽병찬 - 재보선, 참사를 기억하자

irene777 2015. 4. 29. 17:51



<곽병찬 대기자의 현장칼럼 창>


재보선, 참사를 기억하자


- 한겨레신문  2015년 4월 28일 -





▲ 곽병찬 대기자



가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하고, 피의자가 피의자를 수사하도록 한 해양수산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이 30일 정부 차관회의에 상정된다고 한다. 29일 치러지는 재보궐선거 결과가 확정되는 날이다. 이 정권이 기대하는 대로 새누리당이 또 승리할 경우, 이 안은 대통령령으로 확정될 것이다.


그러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부패구조 따위를 조사하도록 한 특별법은 행정부의 명령에 의해 무효화된다. 특별조사위원회는 허수아비가 되고, 피해자들은 이 정부의 먼지와 때를 벗겨주는 때밀이나 들러리가 된다. 정부 수립 후 이승만 정권의 친일파들이 총칼로 무력화시킨 반민족행위자 특별조사위원회나 다름없다. 정부조직상 장관급인 이석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어제부터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합류한 건 그런 까닭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시행령안 철회를 요구하며 1일까지 기다리겠다고 한다. 이후 사태는 알 수 없다.


학생 250명을 포함해 국민 304명이 정부가 방치한 가운데 죽거나 실종된 참사가 일어나고 1년이 지났지만, 이 나라는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다. 이렇게 패륜에 반인륜적 상황에 이른 것은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에서 집권 새누리당이 완승한 결과였다. 유권자가 세월호 선장과 다를 바 없이 무책임했던 대통령의 눈물이나 씻어주고, 이 정권의 태만에 면죄부를 줬다고 생각했으니, 이 정부는 인륜도 정의도 신의도 지킬 필요가 없었다. 이후 그들은 싱글싱글 웃으며 거짓말이나 늘어놓고, 피해자를 조롱하고, 유족과 시민을 이간질이나 하려 했다. 대통령의 의지라고 볼 수밖에 없는 해수부의 시행령안은 이런 패륜의 결정판이다.


이 나라의 더 큰 고질병은 그 책임을 온전히 이 정권에 물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야당은 존재했지만, 그런 정권을 견제하고, 따지고, 바로잡고, 나아가 국민과 함께 심판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할 수 없는 무능과 탐욕에 눈이 멀어, 정권에는 꽃가마를 대령하고, 희생자 가족들은 가시밭길로 내몰았다. 지금까지 정의가 유보되고, 무책임은 방치되고, 부패는 은폐되고, 횡포가 그악스러워진 건 그 때문이었다.


내일 다시 선거가 치러진다. 4곳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작은 판이지만, 국민의 뜻을 아전인수 하기엔 충분하다. 이번에도 정권은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반인륜 말고도, 청와대를 난장판으로 만든 상시들의 막장 권력투쟁, 대통령의 선거자금과 정권 핵심들의 총체적 부패 스캔들 따위를 또 묻어버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을 고무시키는 건 선거판에 뛰어든 야당의 고물 정치인들이다. 그들이 앞장서 야당을 심판하고, 야권을 바꿔버리자고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희망적인 메시지가 어디 있을까. “야권의 무능을 심판해 야권을 재편하고 정권교체의 길을 열겠다.”(정동영) “호남정치, 부활해야 합니다. 야권재편,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천정배) 천군만마와도 같은 지원군이다. 무엇으로 이들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까.


이들의 주장이 진심이었다면, 7·30 재보선에서 야권이 완패했을 때 했어야 했다. 그때는 엉거주춤 물러서 있다가, 저희들에게 배지를 안겨줄 것 같은 선거구에서 재보선이 열리게 되자 뽀시래기 제 살 뜯어먹듯이 저를 낳아준 곳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새누리당의 트로이 목마라고 한들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 그들의 눈에는 1년째 가시밭길을 걸어온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바람은 안중에도 없다. 그들이 또 걷게 될 가시밭길도 생각지 않는다.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지난해 재보선 이후 새로 구성됐다. 미덥지는 않다 하더라도, 제 역량을 펼쳐 보일 기회는 주어져야 했다. 특히 앞서 이 당을 책임졌던 자들이라면 최소한 한 번쯤 밀알이 되어 이들의 노력에 힘을 보태야 했다. 뒤에서 흔드는 건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게다가 고작 4곳에서 치러지는 선거에 뛰어들어 야권 심판, 야권 교체를 떠벌리고 있으니, 야권 전체가 도의도 신의도 없는 집단으로 매도되게끔 유도하는 꼴이다.


지난 주말에도 광화문광장에선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가족협의회 등 참석자들은 변함없이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를 촉구하며, 세월호 인양의 염원을 촛불로 그린 세월호 리본에 담았다. 그러나 그 촛불은 또 재보선의 바람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집권세력의 트로이 목마가 되어버린 한때 야당 지도자들로 말미암은 것이니, 가슴은 더욱 허하다.


수구 정권에는 또다른 수구 세력이 필요하다. 남쪽의 썩은 수구정권에는 북쪽의 60년째 이어지는 수구정권이 필요했다. 독재자에게는 독재자가 필요하다. 그래야 독재의 정당성을 강변할 수 있다. 지역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서로 으르렁대지만 이들이 실제로 협박하는 건 애꿎은 시민이다.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는 약자들이다. 참사의 희생자들이다. 야당 지도자들의 추락을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지만, 그들 때문에 또 망각을 강요받을 세월호 참사가 고통스럽다.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887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