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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소설> 노란리본의 분노⑫ - 마지막 추억의 시간들,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irene777 2015. 4. 30. 02:11



<세월호 소설>


마지막 추억의 시간들,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노란리본의 분노⑫] 실전무술 크라브 마가


- 오마이뉴스  2015년 4월 13일 -




2014년 4월 13일 06 : 05 PM


휴 다 왔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아이가 크게 한 숨을 내쉰다. 5분정도 늦은 시간. 알록달록한 튤립 꽃 색깔에 반해서,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을 너무 보낸 탓일까?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창가 쪽 자리에 다소 우람한 체격의…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어이, 김 관장!

하이고! 우리 며늘애기하고 사돈어른 오시네?

야! 김 상택이! 

관장님!!


딸아이와 내가 동시에 소리를 지른다.


야! 내가 왜 니 사돈어른이야! 

관장님! 제가 왜 관장님 며느리에요? 저 아직 고 2 밖에 안됐거든요?

하이코, 시끄러버라! 아니, 이 부녀가 쌍으로 기차화통을 삶아 뭇나? 와 이리 시끄럽노? 하마터면 귀청 떨어질 뻔 했다 아이가? 야야, 찬교야, 내 귀 좀 한번 봐 도오.


상택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낯선 사내에게 귀를 내밀며,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

아따 행님, 내 아까 전화로 얘기했다 아입니꺼. 후배 한 명 데꼬 온다꼬. 내보고 치매가 우짜고 해 쌌드이만… 행님, 벌써 까묵었는교?

아! 아까 전화로 얘기했던! 아이고, 이거 반갑습니다. 강민혁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 교관님 밑에서 군 생활 했던 이찬교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단정한 정장 수트 차림에, 뿔테 안경을 낀 사내가…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한다. 안경 너머, 부드러우면서도 친근한 눈빛이 느껴진다.


일단 앉으이소. 천장 안 무너집니데이. 근데… 가만있자, 찬교야 니가 내 옆으로 온나. 보영이하고 행님이 그 짝으로 앉고. 헌데 찬교야. 군대 제대한지가 언젠데, 아직까지도 교관님이고? 그냥 편하게 행님이라꼬 해라. 알았나?


상택의 유쾌한 너스레에, 다들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행님. 일마가 있잖아예, 내 해병대에서 중사계급장 달고 특공무술 교관할 때… 내 밑에서 군 생활하다가, 제대했다 아입니까. 벌써 한, 십 몇 년 전 일이네예. 가만있자, 그라지 말고… 니가 내보다는 다섯 살 아래고, 행님이 내보다 세 살 위니까네… 내한테는 행님, 그라고 여기 이 행님한테는 큰 행님, 요래 불러라. 알았나? 행님, 이카믄 되겄지예? 보영이는 앞으로 '찬교 삼촌'… 그래 부르고. 알았제?

허허허. 교통정리 한 번 빨라서 좋구먼! 편할 대로 하지 뭐…. 호칭이야 천천히 정한들 뭐 상관있겠나?

아입니더! 이런 건, 빨리빨리 정해 뿌야지 얼른 친해지지예. 아 참, 찬교야. 이 행님은 있잖아, 한국대학교 강민혁 교수님. 우리 행님 잘 생겼제? 얼른 큰 행님… 하고, 인사 다시 한 번 해 본나.

네, 큰 형님! 앞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충성!!


찬교가 군대식으로 거수경례를 하자, 다들 파안대소를 하며 웃는다.


행님. 일마가 원래, 어릴 때 즈그 부모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가, 거서 자랐다 아입니까. 그라이까 미국서 자라서, 거서 대학까지 마친 미국 시민권자라예. 그라이, 우리나라 군대는 면제 아인교? 근데도 이 미친놈이 대학 마치고는, 떡 허니 우리나라 해병대에 자원입대를 해뿟는기라. 그래서 내사 속으로 참 기특하다 싶어가, 군에 있을 때 많이 이뻐했지예. 근데, 제대하고 나서도 한 동안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우찌우찌 하다 보이, 서로 연락이 끊기뿟어. 


그란데 며칠 전에 우연히, 안산시청 앞에서 딱 마주쳐뿟다 아입니까. 볼일이 있어서 왔다 카데? 그라고 보믄 세상이 참말로 쪼븐기라. 그 날 무직시리 반갑기는 한데, 하필이믄 그날따라 서로 시간이 없어가… 그래서 오늘 다시 만나기로, 그래 정했다 아입니꺼? 근데 아뿔싸, 가마이 생각을 해보이, 행님하고 약속이 딱 겹치뿟는기라. 그래서 겸사겸사 해서 같이 보는 긴데, 행님 괘않지예?


암, 그럼! 덕분에 이렇게 좋은 아우님도 만나고 얼마나 좋아? 근데, 참 대단하네요. 우리나라 군대 중에, 빡세기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데가 바로 해병대인데… 대체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저, 큰 형님. 아우라고 하시면서도 말씀은 아직…. 그냥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안 그러면 저, 둘째 형님한테 얼차려 받습니다.

하하하. 얼차려? 음… 그럼 그렇게 할까요? 아니 할까? 하하하. 근데… 그러면, 아우님은 지금 어디서 사시는가? 한국? 아니면 미국?

네, 제가 서울에서, 작은 벤처회사를 하나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는, 미국에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행님, 일마가 말은 요래 해도, 꽤 잘나가는 벤처 사장입디다. 알고 보이, 지 대학 때 전공하고 딱 맞아떨어지는 회사를 차렸더라꼬예.

전공? 찬교 동생, 대학 때 전공이 뭐였는데?

일마가 있잖아요, 미국서 유명한 대학… 거, 이름이 뭐라 카드라? 크~ 와 갑자기 생각이 안 나노?…. 아 맞다! MIT! 거기 유명한 대학 맞지예?

암! MIT면 엄청 유명한 대학이지.

행님. 일마가 거서, 컴퓨터 공학과 나왔다 아입니꺼. 그란데, 대학 댕길 때부터 미국서 열리는 세계 해킹대회서 입상도 하고, 억수로 유명했다 카데? 그래서 지금 운영하고 있는 회사도 그라이까…


상택이 생각이 잘 나지 않는 듯 잠시 머뭇거리자, 찬교가 싱글거리며 얼른 대신 대답을 한다.


네.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거나, 기업 보안컨설팅을 주로 하는 회사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업무용 소프트웨어 개발도 하구요.

아… 소프트웨어 개발…. 근데, 나는 이공계 쪽으로는 영 까막눈이라… 그런 거 하는 사람들 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다 생기더라고? 아무튼 반갑네, 반가워. 앞으로 자주 보세나.


순간, 딸아이가 맞은편의 김 관장 쪽으로 상체를 조용히 내밀더니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관장님. 한웅이는 안 와요?

우와! 보영아! 니가 우리 한웅이가 그래 보고 싶었나? 쪼매만 기둘리봐라. 도장 청소하고 온다꼬 하길래 내 그카라 했으이, 이제 금방 올끼라.

헐… 관장님! 한웅이한테 뭐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 거지, 보고 싶긴 뭐가 보고 싶어요!


그 때였다. 보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식당 안으로 들어와서 두리번거리는 한웅의 모습이 보인다. 상택을 닮아서 다부진 체격….


하이고, 저노무 자석. 양반되기는 다 틀리뿟네. 우째 하필이믄 요때 들온단 말이고? 야! 한웅아, 이노마야! 얼른 이리 온나! 여 와서, 얼른 느그 장인어른한테 인사해야 될 거 아이가!

네? 아버지 그게… 무슨…


곧장 테이블로 다가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한웅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한번 씩…하고 웃더니, 민혁을 향해 90도로 인사를 한다.


장인어른, 늦어서 죄송함다!

야, 한웅아! 

야! 김한웅! 너 죽는다!


이번에도 딸아이와 내가 동시에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이내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 


근데, 행님. 오늘이 대체 무슨 날 이길래, 행님이 저녁을 다 사는 깁니까?

응, 얼마 전에 어떤 세미나 행사에 강사로 초청을 받았었는데, 행사 끝나고 강연료를 좀 챙겨주더라고. 그래서 공돈이 생겼다 싶어서, 그냥 오랜만에 가까운 사람들하고 저녁이나 하면 어떨까… 그랬던 거지 뭐….

아따! 그카믄 교수님 체면이 있지, 기왕이믄 그럴듯한 레스토랑이나 한정식 집 같은 델 가야지, 고기부페… 이기 뭐꼬?

에이, 관장님! 한웅이하고 관장님하고… 한 번 발동 걸리기 시작 하면, 앉은 자리에서 각각 5인분, 7인분씩은 기본이잖아요! 그러니까 무한리필 되는… 이런 곳 아니면, 어딜 가겠어요? 아, 그리고! 우리집 아직, 연립주택 전세 살거든요? 관장님이 밥값 낼 것도 아니면서 괜히!…


보영이 불쑥 끼어들어 입을 삐쭉거리면서 상택에게 면박을 준다.


잘한다! 역시 우리 딸이 최고다! 그리고, 김관장. 걱정 말어. 내가 나중에 조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만 하면, 자네만 특별히~ 레스토랑으로 모시고 갈 테니까. 근데, 그러려면… 한 3년은 기다려야 될 거야 아마? 하하하.

크… 행님! 그냥 레스토랑에서 밥 뭇다 칩시다. 은제 3년을 기다리고 있노? 보영아 근데 있잖아… 니가 고래 농담을 다큐로 받아 뿌믄, 내는 우짜란 말이고? 


평소에는 우리 보영이가 참말로 이쁜데, 성낼 때는 영 파이라…. 행님. 옛날에 그 유명했던,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 기억나지요? 내가 볼 때는, 오드리 헵번하고 우리 보영이가 참 많이 닮은 것 같은데… 청순하고 눈도 예쁘고…. 우리 어렸을 때는 오드리 헵번이 참말로 왔다 데끼리였는데, 느그들은 잘 모르제? 내는 그 영화에서 주제곡으로 나왔던 '문 리버( Moon River )'만 들으믄, 아직까지도 가심이 콩닥콩닥 설렌다 아이가. 

근데, 처다 보는 눈빛들이 와 다들 그 모양이고? 와, 내하고는 안 어울린다… 뭐 그 말이가 ? 우찌 됐든, 평소에는 오드리 헵번 맨키로 그래 이쁜 우리 보영이가, 고렇게 눈을 똑바로 치켜 뜨믄서 야단을 치믄… 내사 무서버 죽겠거든? 그라이 살살 얘기해라, 보영아. 알았제?

히히히. 관장님 하는 거 봐서요!


아 참! 스승님하고 지혜씨도 올 건데, 한 30~40분쯤 늦을 거니까… 그렇게들 알고, 그럼 우리부터 먼저 시작할까? 자, 보영아. 한웅이하고 둘이 저쪽으로 가서… 고기하고 상추, 마늘, 이런 거 좀 챙겨 올래?


술과 음료수를 주문하고, 불판에서 고기가 익기 시작하자… 다들 즐겁게 식사를 시작한다. 찬교와의 만남을 기념하며 몇 차례 건배를 했을 즈음, 찬교가 상택에게 문득 묻는다.


근데, 두 분 형님들은 처음에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하이고… 말도 마라, 찬교야. 이 행님 첨 봤을 때는 말이지, 참말로…. 에이, 그때 일은 내가 아예 말을 꺼내지 말아야지. 우예됐건, 찬교 니도 알다시피… 내 원래 갱상도 보리 문디, 오리지날 대구 토백이 아이가. 캐서 전라도 깽깽이들하고는 말도 잘 안 섞는데… 근데 민혁이 행님 고향이 전라도 광주라. 참말로 희안체? 거기다가 알고보이, 이 행님… 대학 댕길 때 학생운동 골수분자였다카데? 그라믄 한마디로 말해가 빨갱이 아이가? 빨갱이!… 헉!… 아이코….


한참 너스레를 떨며 얘기하던 상택이, 갑자기 입을 손으로 가리며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한다.


아이코 행님, 지가 말이 헛나와뿟네예. 오랜만에 찬교 만나서 술잔 기울이다 보이, 그만 실수를 해뿟네… 용서하이소, 행님. 화 안나셨지예?

허허. 거참 사람하곤. 그러게 말조심하라고 늘 내가 얘기했지! 찬교도 처음 만나는 자리고해서… 오늘은 그냥 넘어갈 테니까, 그렇게 알어!

헤헤… 죄송함다 행님. 요노무 주디가 항상 문제라카이…. 찬교야 있제. 우리 민혁이 행님하고 있을 때는… 절대로, 절대로! 빨갱이라카는 말, 함부로 쓰면 안된데이.

  하하하. 상택이 형님, 그렇게 쩔쩔 매는 모습… 진짜 오랜만인데요? 형님, 군대 있을 때… 언젠가 대대장한테 깜빡하고 경례 안했다가 엄청나게 깨졌던 거 기억나시죠? 제 기억으로는 그 때 이후로… 상택이 형님 이런 모습, 처음인 것 같은데…. 아이고, 우리 형님. 이마에 땀이 많이 나셨네?~ 자, 이걸로 땀이나 좀 닦으시죠?


찬교가 냅킨을 건네며 살살 약을 올리지만, 상택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표정.


야야, 말또 마라 찬교야. 내 민혁이 행님 만난 지 한 3년 쪼금 넘었을 때, 같이 술 마시다가 우연히 광주 5.18 얘기가 나왔다 아이가. 내 그 때, 5.18은 빨갱이 폭도 새끼들이 저지른 폭동 아인교? 라고 했다가… 참말로 진짜! 시껍했다 아이가. 

그냥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벌떡 일어나드이만, 무려 석달하고도 열흘간을 이 행님이 내하고 말을 안 하는기라. 전화해도 안 받고, 집으로 찾아가도 문도 안 열어주고…. 그라다가 딱 백일쯤 되는 날, 다시 집으로 찾아 갔드이 현관문을 열고서… 이 행님이 엄청시리 무서븐 얼굴로 딱 한마디 하는 기라.

뭐라고 하셨는데요?


'너, 빨갱이란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상택이 성대모사를 하듯 내 목소리를 흉내 내며, 몸서리를 친다.


우와! 내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다 끼친다 아이가. 여 닭살 돋은 거 보이제? 그 때, 별로 화도 안 내고, 그냥 낮은 목소리로 그 말만 하고나서… 다시 쾅하고 문을 닫아 뿌는데… 평소에는 그레 조용하고 점잖은 양반이, 우예 그리 얼음장 맨쿠로 차가븐지. 우리 민혁이 행님 무섭다카는 거를 내, 그때 첨으로 알았다 아이가. 그라이, 찬교 니도 조심하그래이. 다른 거는 다 괘않은데… 민혁이 행님 앞에서는 절대로 빨갱이란 말 쓰믄 안 된데이. 알았나?

제가 보기엔, 상택이 형님이 잘못을 하셨네! 5.18은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민주화운동'이라고 이미 인정을 했잖아요? 게다가 민혁이 형님 고향이 광주라면…. 

자자자. 그 얘긴 이제 그만 하지? 오늘 같이 좋은날, 그런 얘기 길게 해서 좋을 게 뭐 있어? 자, 이 대목에서 분위기도 바꿀 겸, 다시 한 번 건배!


건배를 하고 술잔을 다시 채우자, 분위기는 금방 밝아진다. 한참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던 중, 찬교가 다시 상택에게 묻는다.


저, 상택이 형님. 우리 해병대 있을 때… 이스라엘에서 크라브 마가 교관으로 왔었던 미카엘리 혹시 기억나십니까?

와 기억이 안 나겠노? 지금도 내사 그 때만 생각하믄, 성질이 팍 나는데. 근데, 그건 갑자기 와 묻는데? 가만있자… 야! 니!… 그 때 그 얘기 할라카제? 안 된다! 하지마라! 니 그 얘기 하믄 죽는데이!

왜? 왜? 뭔데 그래?… 우리도 같이 좀 알자고! 뭐 재밌는 얘긴가 본데, 찬교야… 김 관장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얘기해!


하하하. 네, 그럼 큰 형님만 믿고, 한 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상택이 형님하고 저하고 해병대에 있을 때… 한번은 이스라엘에서 여자 교관 하나가 우리 부대를 방문했습니다. 이스라엘 특공무술인 크라브 마가( Krav Maga ) 교관인데… 두 나라간 교류 차원에서, 교관들을 서로 교환해서 파견했던 거죠. 


근데 잠시만 설명을 드리자면… 크라브 마가는 2차 대전 때 독일의 나치에게 탄압을 받았던 유태인들이, 자기들 스스로 생존을 위해 개발했던 실전 무술인데요, 크라브( Krav )는 히브리어로 '전투'라는 뜻이고, 마가( Maga )는 '근접'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쉽게 이해하려면, 아마도 '테이큰'이라는 영화를 보시면 될 겁니다.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된 딸의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하는 이야기인데요, 거기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리암 니슨이 사용하는 무술, 그게 바로 크라브 마가입니다.


야야! 찬교야. 됐다 마! 오래 전이기는 해도, 민혁이 행님도 내한테 3년 동안이나 크라브 마가 배왔다 아이가. 행님, 요즘도 꾸준히 연습하고 있지예?

응? 그럼! 몸 굳을까봐 아침에 조깅하면서, 가끔 연습도 하고 그러고 있지….


어이쿠! 제가 그것도 모르고 그만…. 어쨌거나 이스라엘은 전체 800만 인구 대부분이 여자들까지 포함해서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고, 크라브 마가도 필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2000년에 유일하게 창설된 '카라칼( Caracal )'이라는 남녀 혼성부대가 있습니다. 이곳 여군들은, 전투병과 임무도 직접 수행을 하고, 훈련도 남자들하고 똑 같이 받습니다. 사전에서 찾아보니까, 중동지역 사막에서 서식하는 야생고양이 종류중의 하나가 바로 카라칼이라고 나와 있는데요, 암·수 구분이 쉽지 않은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유일한 남녀 혼성부대 이름이 카라칼이 된 거죠.


한때, 테러리스트들을 그 부대 여군들이 직접 사살을 하기도 해서… 세계적으로도 아주 유명한 부대입니다. 근데 우리 부대에 파견됐던 미카엘리가, 바로 그 유명한 카라칼 부대의 크라브 마가 교관이었으니… 얼마나 살벌했겠습니까?

그래? 야, 이거 점점… 정말 흥미진진한데? 


상택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가운데,  나머지 모두는 잔뜩 기대를 하며 찬교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미카엘리가 오자마자, 상택이 형님이 부대대표로 크라브 마가를 배워보기로… 그렇게 결정이 났습니다. 근데 형님이 영어가 잘 안 되다 보니까… 부대에서 저보고, 중간에서 통역을 맡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여차여차 부대 연병장에서 서로 처음 만나던 날, 제가 중간에서 얘기를 전달하는데…


마! 됐다 마! 차라리 그 쪽팔리는 얘기, 내사 내 입으로 얘기를 하고 말지 이거야 원…. 그라이까, 그 날… 서로 인사를 하자마자 미카엘리가 그라데? 지금 당장, 지를 한 번 맘껏 공격을 해보라꼬…. 근데 있잖아, 내가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부사관학교 드갈 때까지 태권도가 3단에다 복싱도 하고 해가, 나름대로는 운동깨나 했다꼬 자부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근데 쌩판 첨보는 가시나가 지를 공격해보라고 하이, 속으로 을매나 황당했겠노? 그래서 쫌 어이가 없어가 씩 한 번 웃고서는, 정권지르기로 복부를 공격했는데…


했는데…,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 아, 빨리 빨리 좀 얘기해봐!

아따 행님! 가만히 좀 있어 보소. 내 다 얘기해 주꾸마. 그라이까 그 때 내가 공격을 했는데…


상택이 잠시 뜸을 들이자, 찬교가 대뜸 중간에서 끼어든다.


민혁이 형님. 크라브 마가 배우셨으니까 잘 아시겠지만, 왜 거 버스팅( Bursting ) 동작 있잖습니까? 다른 무술들은 공격 따로, 방어 따로 인데… 크라브 마가는 그런 것 없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잖아요. 그래서 미카엘리가 왼 팔로는 상택이 형님 팔을 밖으로 쳐 냄과 동시에, 오른 팔 엘보우 휘돌려 치기로 상택이 형님 턱하고 목부위를 '퍽!'하고 가격을 해버린 거예요.

뭐? 턱하고 목부위를 퍽? 푸하하하! 여자라고 얕봤다가, 아주 제대로 큰 코 다쳤구먼?

찬교 니 자꾸 그칼래? 내가 얘기 한다꼬 했잖아! 내사 마, 남사시러바서 이거야 원….


그 때 부대에서 상택이 형님 별명이 야수( 野獸 )였거든요. 워낙에 성격도 터프한데다, 눈빛이 아주 살벌하다고 해서. 그런데 그 꼴을 당하고 있으니…. 보고 있는 저는, 그날 웃음 참느라고 아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진짜로 대박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지 뭡니까. 크크 흐허허.

야! 히히히. 진짜 재밌다. 찬교 삼촌, 다음에 무슨 일이 생겼는데요?


이번에는 보영이가 다음 얘기를 재촉한다.


상택이 형님이 잠시 동안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켁켁거리고 있는데, 그 다음에는 초크 디펜스( Choke defense )… 그러니까 조르기 방어를 가르쳐 준다면서, 미카엘리가 상택이 형님보고 자신의 목을 졸라보라는 겁니다. 그런데, 시키는 대로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자마자… 양쪽 팔로, 상택이 형님 두 팔을 잡고 밖으로 젖히는가 싶더니, 동시에 오른 발 발등으로는 상택이 형님 낭심을 그만 세게!…


야야! 찬교야, 이 자슥아! 아덜도 있는데, 니 자꾸 그칼래?

아빠. 낭심이 뭐야?

보영아! 니는 귀 막아라! 니는 그런 거 몰라도 된데이!

푸하하하! 아이고 배꼽아! 보영아 그러니까… 낭심이 뭐냐면 말이지…


웃느라고 말을 잇지 못하자, 역시 옆에서 정신없이 웃고 있던 한웅이가… 불쑥 말을 거든다.


야! 이 바보야! 그래도 너 어렸을 때 태권도도 배웠으면서 아직까지 그걸 몰라? 남자 거시기 있잖아… 중요한 부위!

어머, 어머! 세상에!


이제 상택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모두는, 심지어 눈물까지 흘려가며 박장대소를 하고 있다.


2014년 4월 13일. 그 마지막 추억의 날 시간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정소앙 기자 -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98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