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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소설> 노란리본의 분노⑬ - 나를 잊지 말아요

irene777 2015. 4. 30. 02:23



<세월호 소설>


나를 잊지 말아요

[노란리본의 분노⑬] 어떻게 너를 잊을 수가 있겠니?


- 오마이뉴스  2015년 4월 15일 -




2014년 4월 13일 06 : 32 PM


그 때, 아프기도 하고 하도 성이 나서… 야 이 가시나야! 이거는 반칙아이가? 라고 했드이만…

제가 '가시나'란 말만 빼고, 그대로 통역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미카엘리가 대뜸 그러더군요.


뭐라고 했는데?


No mercy. No rules in Krav Maga! 굳이 해석을 하자면, 크라브 마가에는 봐주는 것도, 어떠한 정해진 규칙도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다… 뭐 그런 얘기였죠.


그렇지. 그게 바로, 크라브 마가를 처음 접할 때… 듣게 되는 말이지.


그러더니… 또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우린 당신이 반칙이라고 얘기할 만한 공격들을 오히려 주로 사용한다. 사타구니, 눈, 코, 목 뒤, 기타 등등 급소부터 우선 노린다. 심지어는 눈에다 흙을 뿌리기도 하고, 뭐가 됐든 잡히는 대로 무기로 사용한다. 돌멩이, 각목, 칼, 등등. 중요한 것은, 최대한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입히면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이기는 거다.


그래서 내 그캤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술이라카믄 최소한도로 기본예의가 있지, 우째 그런 짓들을 한단 말이고? 라고.


하하하. 그런데 제가 상택이 형님 말을 그대로 통역을 했더니, 미카엘리가 또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


찬교가 놀리듯이 상택을 바라보며, 실실 웃는다. 그러자 슬그머니 젓가락질을 하면서 딴전을 피우는 상택. 찬교의 말이 이어진다.


이것 봐! 당신은 전쟁터 나가서 백병전이 벌어졌는데, 거기서 예의나 찾고 있을 거야? 그러다간 당신이 먼저 죽어! 실전이라는 말이 왜 있는데? 전쟁은 게임이나 스포츠가 아니라고! 상대를 먼저 못 죽이면, 내가 죽는 게 전쟁터야! 그런데 당신은 그따위 헛소리나 계속 하고 있을 건가?


하하하. 맞는 말이네? 상대방이 총칼 들고 덤벼드는데, 뭔 놈의 예의를 차려? 안 죽으려면, 어찌됐건 상대방을 먼저 쓰러트려야지.


맞다 아입니까. 듣고 보이 할 말이 없데? 그 다음부터는 찍소리도 몬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믄서 또 계속… 뚜드리 맞았다 아입니까. 언제 무슨 공격이 들어올지… 도대체 짐작을 몬하겠는기라…. 그렇게 6개월을 계속 얻어 터져가믄서 미카엘리 그 가시나한테 크라브 마가를 배왔는데, 그래도 한 가지 또 남는 게 있데?


뭔데?


아, 찬교 이노마를 맨날 불러서 통역을 시킬 수도 없고… 미카엘리가 하는 말은 잘 몬 알아듣겠고…. 말을 몬 알아들으니, 시키는대로 안하고 자꾸 엉뚱한 동작들 취하다가 더 뚜드리 맞고. 그래가 할 수 없이… 머리털 나고 첨으로, 영어회화라 카는 거를,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입니꺼.


하하하. 어쩐지…. 띄엄띄엄 영어 좀 한다 싶었더니… 그게 다 군대 있을 때, 얻어터지면서 배운 거였구먼?


맞다 아입니까. 뚜드리 맞으면서 배운 영어. 그렇게라도 하고 나이, 그거이 그래도 남드라… 뭐 그런 얘기지예.


형님. 그 이후로는 미카엘리하고 연락, 끊겼지요?


어데! 훈련 끝나던 날, 미카엘리가 처음으로 안아주믄서 '이제 당신은 진정한 전사다!' 뭐 이딴 말을 하는데… 하마터면 눈물이 다 날 뻔 했다 아이가. 그동안 얻어터졌던 거는 까맣게 잊아뿌고, 오히려 고마운 생각까지 들데? 그래서 서로 이메일 주소 교환하고, 아직까지도 가끔 연락하고 그러고 있지 뭐….


근데 있잖아, 김 관장.


와 예, 행님?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참 신기해.


뭐가예?


자네, 군대에서 그렇게 낭심을 걷어차이고도, 한웅이같이 씩씩한 아들을 낳았으니… 그거, 정말 신기한 일 아닌가? 자네도… 거참, 대단하이!


아따 행님! 고만 쫌 하소! 에이! 어제 꿈자리가 사납드이만… 싸나이 김상택이, 오늘 완전히 스타일 구겨뿌네. 야 이찬교! 이게 다 니 때문이다 이 자슥아!


상택이 버럭 화를 내자, 또다시 웃느라고 다들 정신을 못 차린다.


야! 김한웅이! 니는 짜슥아, 아부지가 그래 맞았다 카는데, 그기 그리도 재밌나? 에잉, 이 천하에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


아니 뭐든지… 사람이 처음 배울 때는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아버지는 그게 뭐 그리 쪽팔리는 일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한참 오래 전 일이잖아요! 덕분에 다 같이, 재밌었으면 됐지…. 나 같으면 그저 다 옛날 추억이다… 그러면서, 웃고 말겠네?


한웅이 간신히 웃음을 참아가며 딴에는 어른스럽게 말을 하자, 그때서야 상택의 인상이 펴진다.


맞나? 역시 내 생각하는 거는, 우리 아들내미 밖에 엄따!


야… 한웅이… 다시 봐야겠는데? 니가 니 아버지보다 훨씬 낫다 야. 언제 이렇게 어른스러워졌을까? 다른 건 몰라도 김 관장이 자식 농사 하나는 참 잘 지었다니까? 아, 참… 한웅아. 너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니? 너 지금 태권도가 3단이지? 김 관장 얘기 들으니까, 너 앞으로 태권도 국가대표가 꿈이라며?


네. 열심히 하고 있슴다! 근데, 태권도 국가대표는 워낙에 실업팀이나 체대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선발되기 때문에… 당장에 쉬울 것 같지는 같아요. 하지만 올해는 전국체전에서 꼭 금메달 따고… 내년부터는 국가대표 선발시험도 한 번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와 예? 우리 한웅이가 요래 어른스러븐거 이제야 알았습니꺼? 부럽지예? 부러우면 나중에 사위 삼으라카이! 그래 빼쌓지만 말고!


아따 이 사람아! 얘네들, 이제 겨우 고 2밖에 안됐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것도 분수가 있지 이거야 원….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 사회 나갈 때까지 아직 한참이나 남았잖아! 아 참, 근데 한웅아. 너 보영이랑 다른 반 됐다며?


네, 보영이는 3반이고, 저는 7반이요.


거 참 아쉽구나. 1학년 때처럼 같은 반이면 좋을 텐데. 그래도, 니가 보영이랑 같은 반일 때는 보영이 괴롭히는 애들도 없고… 든든하고 좋았었는데. 그치 보영아?


이번에는 식사를 하며 조용히 듣고만 있던 보영이, 갑자기 귀 밑이 빨개지면서 공연히 화를 낸다.


좋긴 뭐가 좋아! 한웅이 무서워서 다른 애들이 내 옆에 잘 오지도 못하는데. 지가 내 보디가드야 뭐야? 1학년 초 한동안은, 남자애들이 나한테 말도 못 걸었다니까? 한웅이 때문에?


우와 데끼리네! 하모하모… 멋진데? 우리 한웅이. 싸나이 중에 싸나이네! 암, 남자가 여자를 보호할라카믄 그 정도는 해야 안 되겠나? 근데, 보영아. 반이 갈맀다캐도… 혹시라도 니 괴롭히는 아들 있으믄 언제든지 한웅이한테 얘기해라? 알았제? 그래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느그 둘이 동네에서 제일 친한 친구사이였는데, 우리 한웅이가 그 정도는 해줘야지… 안 글나?


네…. 관장님.


야, 한웅아. 진짜로 우리 보영이 보디가드 해 줄 거야? 그럼 다음 주에 수학여행 가서도, 옆에서 보영이 잘 지켜줘야 한다? 아무 일 없도록…. 알았지?


반이 달라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게 할게요.


좋았어! 그럼 약속하는 의미에서, 악수!


한웅과 악수를 한다. 그런데 그 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여보세요? 아, 지혜씨! 도착했는데 어딘지 잘 모르겠다구요? 음… 그럼, 주변에서 제일 크게 눈에 띄는 간판, 한번 얘기 해봐요. 아… 거기! 그럼 다 온 거나 마찬가지네. 거기서 10미터만 쭉 직진하면, 여기 식당 간판이 보일 거예요. 내가 지금 입구에 나가 있을 테니까, 스승님 모시고 그 쪽으로 천천히 걸어와요. 알았죠? 네, 그래요. 그럼 식당 입구에서….


잠깐 나갔다 온다는 말을 남기고, 가게 밖으로 나가니… 짙은 파란색 한복 두루마기 차림의 스승과, 청초하고 단아한 하늘색 투피스 차림의 지혜 씨가, 식당 입구에 막 도착을 하고 있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금방 찾았네요? 지혜 씨? 하하하.


네. 찾기 쉽던데, 괜히 전화 드렸나 봐요. 보영이도 안에 와 있죠? 아버지,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그럴까? 강 교수, 그럼 얘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지?


네 스승님, 그럼 어서 안으로….


자리로 안내하자, 이번에도 상택이 우스갯소리를 하며 스승님과 지혜 씨를 맞이한다.


아이고,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더. 지는 하마터면 어르신 기다리다가 목이 빠질 뻔했으예. 아! 그라고 지혜씨도 무지 무지 반갑십니데이. 근데 지혜씨는 우째 이리, 날이 갈수록 이뻐지십니꺼? 우리 행님, 봄바람 맹키로 살랑살랑 가슴이 설레가… 오늘 밤에 잠도 몬자게 생겼네? 푸하하. 행님, 안 그래요?


야! 김 관장! 하여간 쓸데없는 소리 늘어놓는 데는 아주 선수라니까…. 김 관장, 자네는 말이야… 다 나쁜데 그게 제일 나빠! 헛소리를 안 하면 도대체 자네는 얘기가 안 되나?


상택의 우스갯소리에 무안해하며 일부러 타박을 하자, 스승님이 손을 내저으며 얘기를 한다.


허허허! 우리 김 관장이 나를 이리도 반겨주니, 참 고맙소. 응? 근데… 처음 뵙는 분이 같이 계셨네?


아, 스승님. 이 쪽은 김 관장 군대 후배인데요, 오늘 저하고도 처음 인사했습니다. 헌데, 워낙에 서로 화통하게 잘 맞아서… 그냥 오늘부터 호형호제하고, 그렇게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김 관장 다음으로 막내아우인 셈인데요… 스승님도 그렇게 아시고, 앞으로 편하게 대하시면 되겠습니다.


흠, 오늘 강 교수가 일진이 아주 좋은가보군. 이렇게 귀한 인연도 새롭게 만나는 걸 보면 말일세. 어쨌거나 반가워요. 나, 강대원이라고 합니다.


스승님이 손을 내밀자, 찬교가 황급히 손을 마주 잡으며 깍듯이 인사를 한다.


아이구, 처음 뵙겠습니다. 이찬교라고 합니다. 오시기 전에, 민혁이 형님한테 말씀 들었습니다. 참선이나 명상계의 큰 어른이시고, 중국 고대사 연구에도 식견이 높으신 분이라고… 저는 오늘, 민혁이 형님 처음 뵙는 자리인데, 이렇게 귀한 어르신까지 뵙게 되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허허허. 다 쓸데없는 허명(虛名)에 불과한데, 영광이란 말은 가당치도 않지요. 그저 평범한 한 시골 노인네에 불과합니다. 어쨌거나 오늘 강 교수하고 맺은 인연, 서로 간에 좋은 만남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어디 보자… 우리 보영이하고 한웅이도 와 있었네? 둘 다 잘 지냈니?


스승님! 무지 무지 보고 싶었어요.


네! 안녕하셨습니까?


보영이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한웅이도 덩달아 씩씩하게 인사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보영이가 지혜씨 곁으로 다가가더니, 와락 품에 안긴다.


이모 왜 인제와! 빨랑 좀 오지…. 오래 기다렸잖아!


아이고… 이 놈이. 야, 벌써 고 2씩이나 됐으면서 아직까지도 어리광을 부려? 이거야 원….


어쩔 줄 몰라 하며 낮은 목소리로 야단을 치는데, 지혜씨가 보영이를 품에 안은 채… 말리는 손짓을 한다.


응… 수련원에 정리할 게 있어서 좀 늦었어. 많이 기다렸니? 어디 우리 보영이 얼굴 좀 볼까? 그 새 좀 말랐네?


응. 아빠가 맨날 나 구박해서 말랐어. 이모가 아빠 혼 좀 내줘.


야! 내가 언제 구박을 했다고 그래? 지혜씨,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스승님, 절대로 아닙니다! 애가 지금, 어리광 부리느라고 괜히 그러는 거예요.


허허허. 알았네, 알았어. 어쨌거나 자리에들 앉읍시다. 다들 하루 종일 서 있을 셈인가?


그러고 보니, 스승님과 지혜씨가 오고 나서 서로 인사들을 주고받느라… 일행 전체가 한동안, 테이블에서 일어나 있었다.


가만있자. 어르신도 오시고 했으이, 불판도 새로 갈고 다시 시작하입시더. 한웅아, 니가 얼른 가서 불판 좀 갈아달라꼬 얘기 하고 온나! 이것저것 다른 것들도 쫌 챙겨오고….


식사와 더불어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그런데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점차 어른들끼리의 대화가 무르익어가자… 자연스럽게 한웅과 보영, 그리고 지혜씨가 따로 한 쪽 테이블에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눈다.


이모, 이 꽃 이쁘죠?


보영이가 핸드폰에 담겨있는 사진 한 장을 지혜씨에게 보여주며, 환한 표정으로 웃는다.


어머! 이게 무슨 꽃이니? 정말 예쁜데! 어떻게 꽃잎 색깔이 이렇게 파랄 수가 있지?

이거 말고도… 분홍색도 있고, 흰색도 있는데….


보영이가 핸드폰에서 또 다른 사진들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정말 그러네? 분홍색하고 흰색…. 어머, 보영아 근데 참 신기하구나. 꽃잎 색깔은 다 제각각인데… 가운데 부분은 다 똑같이 노란색이야!


응?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 꽃잎 색깔만 봤지, 그것까지는 아직 못 봤는데. 히….


보영아, 근데… 이 꽃 이름이 뭐야? 어떻게 이런 꽃을 다 알게 됐어?


물망초! 이모, 이게 바로 물망초 꽃이야. 그러니까 물망초는… 꽃잎은 이렇게 여리고 가냘픈데도, 생명력이 엄청 강하대! 그래서 겨울에 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꽃들이… 봄만 되면, 이렇게 다시 활짝 핀대. 근데, 도서관에서 우연히 '꽃의 전설'이라는 책을 보게 됐는데… 물망초 꽃말에는, 정말 슬픈 사연이 담겨 있더라고. 이모도 알아?


아니?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데?


응… 독일에서 아주 오래 전 옛날에, 루돌프하고 벨타라는 연인이 살았대요. 둘은 서로 깊이 사랑을 했고, 결혼까지 약속을 했는데… 어느 날, 둘이서 다뉴브 강가를 산책하다가, 강 반대편에 예쁜 꽃들이 피어있는 걸 봤대. 그 전에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런데 그 때 벨타가 그 꽃을 갖고 싶다고 하자, 루돌프가 용감하게 강물로 뛰어들었대. 그런데 강 건너편에서 꽃을 따가지고 다시 건너오다가… 그만 급류에 휩쓸리고 말았대. 


그래서 루돌프는 급류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다가, 그만 기진맥진 온 몸에 힘이 빠져 버렸대. 그리고… 강을 도저히 건널 수 없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됐대. 그런데 어찌어찌 최대한 강가 근처로 다가가서 꽃을 던지면서… 벨타에게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이렇게 소리쳤대요.


뭐라고 했는데?


'나를 잊지 말아요!'….


아! 그렇지! 이제야 생각났다. 그래서 물망초를 영어로 'Forget me not'이라고 하지 않니, 보영아?


맞아! Forget me not….


여자들끼리 나누는 꽃 얘기가 조금은 지루했던지, 혼자서 딴전을 피우던 한웅이가 갑자기 화제를 바꾼다.


야! 너 어제 점심시간에 보니까, 학교 뒤편 쉼터에 앉아서 이어폰 꽂고, 혼자 청승떨고 있던데… 거기서 뭐하고 있었냐? 좀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르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데? 도대체 뭘 듣고 있었길래….


음악 듣고 있었다, 왜? 근데, 그게 왜 청승이냐?


야! 그러니까, 대체 무슨 음악이길래 다른 사람이 불러도 모를 정도로… 그렇게 빠져서 듣고 있었냐고!


궁금해? 그럼 너도 한 번 들어봐! 그리고 이모도 한 번 들어볼래요? 이거, 노래가 괜찮다 싶어서… 내가 지금 편곡에 도전을 한 번 해볼까, 생각중인데… 어떨지 모르겠네.


그러니? 편곡할 노래야? 그럼… 다 같이 들어보면 좋겠다. 그치? 저… 아버지! 그리고 강 선생님! 말씀들 나중에 또 나누시고, 보영이가 편곡할 노래라는데… 다 같이 음악 감상 한 번 하시죠?


으응? 우리 보영이가 음악 편곡도 할 줄 알아? 그럼 당연히 들어봐야지?


스승의 말이 끝나자, 다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영을 바라본다. 그러자 보영이 곡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이거... 드라마 OST인데요,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어느 K팝 가수가... 드라마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불렀던 노래예요. 그리고 이건, '보이는 라디오'라는 라디오 생방송에 가수가 출연해서, 직접 불렀던 동영상. 유투브에서 다운 받아서 제가 다시 편집한 거예요.


잠시 후, 보영의 휴대폰에서 동영상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온다.


 듣고 있나요 슬픈 내 혼잣말을

그댈 그댈 탓하는 이말을

부르면 다시 아픔이 되는 이름

그대 그대 그대


가끔씩 그대 내 생각에 웃어준다면

더 이상 미련 갖지 않을테니

나를 잊지말아요 나를 나를

제발 기억해줘요 나를 나를


이별은 한번인데 그리움은 왜 많은지

한순간도 난 잊은적 없었죠

사랑해요….


하이고야! 뭔 놈의 노래가 요렇게도 슬프노? 보영아, 노래 제목이 뭐꼬?


노래가 끝나자... 감정 무디기로 유명한 김 관장이, 얼핏 눈가에 손을 가져가며 말한다.


노래 제목이요? 물망초 꽃말하고 같은 제목! '나를 잊지 말아요'….


훗날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아이들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뒤... 어느 날 문득, 바로 그 날이 떠올라서... 시내에 있는 꽃집을 들렸다. 그리고 파랑, 분홍, 흰색의 물망초 화분을 한꺼번에 사서, 그날부터 베란다에서 키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끔... 상택과 더불어 술잔을 기울이고 밤늦게 터덜터덜 취해서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때 그 노래를 들으며, 그 물망초 화분을 한없이 바라보곤 했다. 깊은 밤을 지나, 새벽녘이 될 때까지….



여리고 가냘프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는 물망초. 그리고 예쁘고 씩씩했던 우리 보영이…. 아빠도 언젠가는 네 곁으로 가겠지. 그 때까지 잘 지내야 돼? 거기서 우리 다시 만나면… 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그 노래, 다시 또 같이 들어야지?



겨우겨우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싸워야 했던… 그 숱한 불면의 날들. 그 노래와 그 꽃, 그리고 아이에 대한 기억들이 없었다면, 대체 그 날들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세상 사람들이 다 잊어도, 어떻게 너를 잊을 수가 있겠니?….



- 오마이뉴스  정소앙 기자 -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99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