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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소설> 노란리본의 분노⑭ - 정좌수련과 여민, 그 심오한 뜻은

irene777 2015. 4. 30. 02:41



<세월호 소설>


정좌수련과 여민, 그 심오한 뜻은

[노란리본의 분노] 위민과 여민


- 오마이뉴스  2015년 4월 16일 -




2014년 4월 13일 07 : 12 PM


보영이 들려준 노래에 대한 이야기가 한동안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순간, 상택이 갑자기 스승님에게 질문을 한다.


어르신 있잖아예, 그라이까 제가 어르신을 꽤 오래 전에 처음 뵀잖아예. 어디 보자, 첨에 보영이가 우리 태권도 도장에 등록을 하고, 며칠 뒤에 민혁이 행님이 나오기 시작했던 기… 대충 한 10년 전인 것 같은데… 행님 맞지예? 내사 마, 정확히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예됐건 간에…

어이. 김 관장!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스승님한테 대체 뭘 여쭤 보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고 그래?

아따! 행님은 좀 가만히 있어 보소! 내는 뭐, 어르신한테 궁금한 거 쫌 여쭤 보믄 안됩니꺼?

허허허. 그럴 리가 있나요? 김 관장,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시구려.

행님요, 어르신 말씀 들었지요? 내 인자, 질문 쫌 해도 되지요?

허 거참…. 도대체 뭔데 그래?


어르신. 다른 게 아이고요, 민혁이 행님이 첨에 도장에 등록을 하고 나서, 한동안은 열심히 시간 맞춰가 도장에를 나오드이만, 어느 날 부턴가는… 차츰 시간도 불규칙하고, 영 열심히 안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아입니꺼? 그래서 와 나오는 시간이 요래 불규칙하냐고 넌지시 물었더니만, '정좌수련'이라 카는 거를 새롭게 시작했는데, 거랑 시간이 잘 안 맞아가 그란다… 그카데예?

아! 그런 일이 다 있었어요? 허허.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네? 김 관장이 그 때, 좀 서운하셨겠구먼.


어데예?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꺼? 지가 무슨 밴댕이 소갈딱지도 아이고…. 그냥 지는 서운했다기 보다는, 첨에는 걱정을 쫌 했어예. 혹시나 무슨, 이상한 사이비 종교 같은데 빠진 거 아인가 싶어가. 그라고… '정좌수련'? 그기 뭐꼬? 정좌라 카믄 똑바로 앉는다 카는 말 일낀데, 무신 똑바로 앉는 것도 수련이 다 필요한기가?… 이래 생각했다 아입니꺼? 


해서 민혁이 행님보고, 그기 뭐냐꼬 암만 물어봐도… 실실 웃기만 하고 통 설명을 안해 주데예? 그란데 우쨌거나 민혁이 행님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걸로 봐서는, 제가 짐작을 하건대… 무지하게 고차원적인 수련이 아닐까, 그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맞습니꺼? 그 동안 여쭤보고 싶어도 행님 눈치만 보느라꼬, 입이 근질근질해가 죽을 뻔 했는데… 이제서야 여쭤 보네예. 괘않치요 어르신?

그런 거면 진작 좀 물어보시지…. 허허허, 강 교수도 참 그렇구먼. 그냥 설명을 자세히 좀 해드리지,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네. 아닌 게 아니라 김 관장 얘기를 들으니까, 제가 좀 너무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근데… 김 관장하고는 워낙에 체질적으로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그걸 굳이 설명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흠… 체질적으로 잘 안 맞는다?…


스승이 뭔가 생각을 깊은 하는 듯, 잠시 동안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윽고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태권도 같은 격투기는 주로 내공 보다는 외공(外攻)에 치중하는 무술이니, 강 교수가 그렇게 판단을 한 것 같은데… 그게 꼭 옳은 생각은 아닐세. 결국 무술이라는 것도 내공·외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어쨌거나, 김 관장이 그렇게까지 궁금해 하시니… 그럼 어디, 설명을 한 번 해볼까요?


상택이 침을 꼴깍 삼키며 스승님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모두 다 이야기에 집중을 한다.


우선, 정좌수련은 동양사상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교, 불교, 도교의 근본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요. 그리고 김 관장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정좌수련의 '정'자는 '바를 正'이 아니라 '고요할 靜' 입니다. 즉 고요하게 앉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수련이다… 그렇게 얘기 할 수 있어요. 헌데, 고요하게 앉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수련씩이나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지요? 그렇지요 김 관장?

맞다 아입니꺼? 제 말이…. 제가 궁금한 거는… 바를 정이든, 고요할 정이든 우예됐건 앉는 거 가지고, 와 그래 수련을 해야 하냔 말입니더. 역시 어르신이 핵심을 딱 짚어 주시네예?


'머무를 곳을 안 후에야 안정됨이 있고, 안정된 후에야 고요할 수 있다… 고요한 후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후에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한 후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니라.'라는 말이 있어요. 말이 좀 길긴 한데… 김 관장, 혹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요?


예? 예? 방금 뭐라꼬 하셨습니꺼? 너무 길어가… 잘 몬 알아 듣겠습니더. 그라고 지는 가방 끈이 좀 짧아가… 머리털 나고 그런 건 첨 듣는 얘기 같은데… 대체 그기 무슨 말입니꺼?


이건, 흔히 우리가 4서 3경이라고 하는 책들 가운데… '대학(大學)'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 이예요. 


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 安而後能慮, 慮而後能得.

지지이후유정, 정이후능정, 정이후능안, 안이후능려, 려이후능득


스승이 풀어서 설명한 부분은… 바로 그, '대학'의 1장 첫머리에 나오는 말…. 


대학(大學)을 일컬어, 중국의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그 대종(大宗)으로 숭앙받았던 주자(朱子)는… 사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이 바로 '대학'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학을 통달하게 되면, 다른 경전의 문구는 그저, 대학을 기본으로 한 뜻풀이일 뿐이라면서…. 때문에 사서를 읽을 때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서로 읽으라고 할 정도로, 주자는 대학을 그토록 중요시했다.


흔히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하나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도 바로 이 대학에서 나오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수신'을 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고요함', 혹은 '안정'이라는 것이지요. 사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대학'의 첫 장 첫머리에서, 그토록 '고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 그건… 뭔가 그만큼 중요한 점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이것과 비슷한 얘기가 또 있어요. 불교에 나오는 '계(戒)·정(定)·혜(慧)'라는 말과 '삼무루학(三無漏學)'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인데…


야야~ 보영이하고 한웅아! 어르신 말씀, 잘 듣고 있제? 내 헷갈릴지도 모르이까네… 느그들이 잘 듣고 있다가 난중에 내가 물어보믄 다시 설명해줘야 된데이? 어이쿠, 어르신… 말씀 끊어가 죄송합니더. 계속 하시이소.


허허허. 어쩐지 말이 좀 어렵지요? 그런데 결론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계속 설명할 테니, 잘 따라 오도록 하세요. 일단, 여기에서 '계(戒)'는 계율을 뜻하는 말이고, '정(定)'은 마음을 고요히 해서 번뇌·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수행'을 말해요. 흔히 선정(禪定)이라고도 하지요. 그리고 마지막인 '혜(慧)'는 계를 지키고, 정을 수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카믄, 삼무루 뭐시긴가 카는 거는 대체 무슨 뜻인데예?


하하하. 이제 막 설명을 하려던 참인데…. 강 교수가 왜 체질적으로 김 관장하고는 잘 안 맞을 거다… 그렇게 판단을 했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군요. 어쨌거나 '삼무루학( 三無漏學 )'에서 루(漏)는 안이비설신의( 眼耳鼻舌身意 ), 즉 눈·귀·코·입·몸·뜻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뿌리(六根)가… 끊임없이 객관적인 대상을 인식하고, 생각해서, 번뇌를 일으키는 작용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번뇌를 끊어내는 방법… 앞에서 이미 설명을 했지요? 선정(禪定), 즉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교와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깨달음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바로 '고요함'이라는 사실, 이제는 알겠어요?


예? 뭐… 그런 것도 같네예. 그카믄… 아까 어르신이 도교 얘기도 하셨던 것 같은데, 도교에서도 또 그런 얘기가 또 나옵니꺼? 어차피 지는 한 번 들어서는 잘 몬 알아듣겠지만, 그냥 마저 설명해 주이소 어르신.


夫物芸芸 부물운운 各復歸其根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귀근왈정, 是謂復命 시위복명. 만물은 각자 그 근원으로 되돌아오는구나. 근원으로 되돌아 온 것을 고요함이라 하며, 이를 일러 하늘의 뜻이 회복된 것이라고 말하네…. 이건, 노자의 도덕경 제 16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리고…

重爲輕根, 靜爲躁君 중위경근, 정위조군.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이며,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군주가 된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노자의 도덕경 제26장에 나오는 말이지요. 쉽게 말해서, 가벼움, 움직임 보다는… 무거움, 고요함이 보다 더 근원적이고 가치가 있다… 그런 뜻이 되겠어요.


우예됐건 가볍고 촐랑대는 사람들 보다는, 조용하고 무게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낫다… 뭐 그 말씀 아입니꺼? 하이고… 내는 이래서 안 된다니까! 도무지 조용하고 무게있는 기 어데 내하고 어울려야 말이지! 어쨌든 어르신 말씀은 유교, 불교, 도교 모두 다… 고요하다 카는거를 그래 중요시 했다, 그 말씀이지예?


그렇지요. 그러니까… 고요함( 靜 )과 움직임( 動 )은, 크게 보면 자연계 물리현상의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대립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의 일상생활 역시 마찬가지로, 활동과 정지, 혹은 행동과 휴식으로 하루 24시간은 채워집니다. 그런데 모든 생명력의 뿌리는, 고요함( 靜 )에서 형성된다고 할 수 있어요. 자라는 식물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식물의 씨앗은 고요한 상태에서 성장해서 줄기와 열매, 꽃을 피우고… 마침내 움직이는 상태에서 시들게 됩니다.


사람도 똑 같아요. 활동한 만큼 꼭 휴식이 필요한 법. 만약 사람이 잠을 안 자고 24시간 계속해서 움직이기만 한다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결국 잠은 습관적인 휴식인 것이고, 인생의 생명력은 바로 충분한 휴식을 통해서 늘 새롭게 충전이 되는 겁니다. 인생사, 때때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24시간동안 늘 괴롭고 슬플 수만은 없어요. 일정한 휴식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야 그 고통을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지요. 고요한 상태에서 진지하고 진실하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늘 24시간을 쫓기듯이 바삐 살면서… 심지어는 잠을 잘 때 까지 꿈을 꿉니다. 제대로 된 휴식이 없는 거지요. 자면서 꿈을 꾼다는 건… 뇌가 쉬지 않고, 활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뜻 이예요. 그래서 사람은 아무런 꿈을 꾸지 않았을 때, 가장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어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오랜 수련 끝에 득도에 이른 고승들은 결코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해요. 그 이유가 뭘까요?

그냥 말씀 하시이소. 지가 그걸 우예 알겠습니꺼?


사람이 자면서 꿈을 꾸는 이유는, 억압되었던 욕망이나 충동이, 무의식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가… 꿈이라는 형태로 재구성 돼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의 '무의식'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이 누구죠?

프로이트!


보영이가 갑자기 손을 들며 외치자, 스승이 칭찬을 한다.


어이구! 우리 보영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구나? 프로이트를 다 알고….

학교에서 배우기도 했고, 어릴 때 위인전에서 읽었어요!

그렇지. 학교에서 배우는 게 공부의 전부는 아니니까… 책, 열심히 읽으렴.

네!


어쨌거나, 무의식을 발견하면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창시자가 되었는데… 억압된 성적인 본능이나 충동을, '리비도( Libido )'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꿈과 연관을 시켰어요. 그런데… 어디 인간이 가진 본능이나 욕망이, 성적인 것 뿐 이겠어요? 프로이트는 지나치게 좁게 해석을 했던 것이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고승들이나 정신수련계의 고수들이 자면서도 꿈을 꾸지 않는 건… 그만큼 내면의 욕망을 스스로 잘라내 버렸기 때문 이예요. 욕망이나 충동이 없으니, 억압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결국, 꿈을 꿀 수가 없는 거지요. 

하이고 마, 지는 그런 높은 경지는 아예 생각도 몬하고예… 그저 하루하루 맘 편하게만 살았으믄 좋겠다 카는 생각 뿐 입니더. 어르신, 뭐 좀 더… 쉽고 간단한 수련방법은 어데 없겠습니꺼?


수욕정이풍부지( 樹欲靜而風不止 ),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데,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마음이란 게 원래… 고요히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어지러워지는 법. 그건, 몸속에 피가 흐르고, 신경은 무엇인가를 계속 느끼고 있고, 호흡도 그칠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은 늘 어떤 느낌이나 감정, 생각 등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거예요. 

정좌( 靜坐 ) 수련을 처음 시작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갑자기 오만 잡생각들이 쉴 새 없이 떠오르고, 몸 상태가 가렵거나 아프기도 하고… 심지어는 마비상태가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배워야겠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단하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순간, 상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일제히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스승을 바라본다.


우와! 참말로 간단한 수련방법이 있습니꺼? 얼른 좀 알려 주이소 어르신. 당장 낼부터 한 번 해 보게요.

허허허. 김 관장. 역시 성격이 급하시구먼? 흠… 이 수련은, 블랙홀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인데… 일단, 블랙홀이 뭔지는 다들 알고 있지요? 뭐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우주에서 빛조차도 빨아들이는, 끌어당기는 힘이 가장 센 것이다… 대충 그 정도로만 이해를 하면 되겠어요.

블랙홀이라카믄 영화 같은 데서도 나오고 해가, 지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아입니꺼.


하하하. 그거 참 다행이군요. 어쨌거나 먼저 수련에 앞서서… 블랙홀에 대해 설명이 잘 되어있는 다큐 동영상 한 편을 구해서 보세요. 설명이 너무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은 게 좋아요. 중요한 건, 블랙홀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분명하게 새기자는 거니까….

그 다음은예?

눈을 감아도 블랙홀이 선명하게 떠오르면, 그 다음은 조용한 장소를 찾아서 눕도록 하세요. 처음에는, 잠자기 전에 잠자리에 누워서 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폐에 공기가 가득 차도록, 크게 심호흡을 천천히… 서너 번 반복하세요. 그러고 나서, 오른 발에서 왼발, 오른쪽 종아리에서 왼쪽 종아리… 이렇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의식을 그 부분들에 차례로 집중을 시키면서, '오른 발이 나른해지고 힘이 빠진다, 왼발이 나른해지고 힘이 빠진다' 이런 식으로… 온 몸을 이완시킵니다. 머리끝까지 나른해진 상태가 되면, 그 다음에는 자신의 몸이 차츰 떠오른다고 생각을 합니다. 집 위로 떠올랐다가, 그 다음에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부터 한반도, 지구, 그리고 마침내 우주로 차츰차츰 떠오르는 장면을 상상하는 거예요.

우주가 잘 상상이 안 되면 우얍니꺼?

그럴 때는 그게 상상이 잘 될 때까지 다큐 동영상을 반복해서 봐야겠지요. 어쨌거나, 그 다음 단계는… 눈을 감고 동영상 속의 블랙홀 이미지를 떠올리는 겁니다. 자, 여기서 부터가 진짜 수련입니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지발 쉬운 방법이면 좋겠네예. 그래야 저 같은 사람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거 아입니꺼?

하하하. 그래요. 어렵지 않아요. 블랙홀이 떠오르면, 그 다음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상상을 하세요. 슬픈 생각이나 고통스러운 느낌, 혹은 장면들… 그 모든 것들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왜? 블랙홀은 빛조차도 빨아들일 정도로 끌어당기는 힘이 엄청나니까!


그게 끝입니꺼?

아니, 아직 마지막 단계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아마 십중팔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전에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될 겁니다.

예?… 수련하다가 잠이 들어뿌믄 말짱 파이다 아입니꺼?

괜찮아요. 평소보다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 날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거예요.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는 거니까. 처음부터 욕심 부릴 수는 없지요.

흠… 그런가예? 하긴, 잠이 보약이라카는 말도 있으니까…


그렇죠? 어쨌거나 다들 정신없이 바쁘게 살지만, 가끔씩 시간을 내서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은 일이예요. 그렇게 하다보면…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지요. 그런데 누구나 가끔, 괴롭고 슬프거나… 아니면, 뭔가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김 관장은 어떻게 하나요? 


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야 뭐… 술 한 잔 땡기는 기, 그기 최고지요. 그래서 민혁이 행님 만나고부터는… 힘들고 어려운 일 생길 때마다, 행님하고 술잔 기울이면서 얘기 나누는 거… 그기 그나마 제 인생의 낙이라꼬 할 수 있습니더.


그래요.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 이예요. 어쨌거나, '정좌수련'은… '영혼의 체력을 기르는 수련이다' 한마디로, 그렇게 정의 할 수 있어요. 김 관장, 어떻게 대충이나마 이해가 되셨소?

'영혼의 체력을 기르는 수련'…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감이 팍 오네예. 


헌데,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우리 수련원 이름이 '여민원(如民院)'인데, 그게 무슨 뜻인지 혹시 궁금하지 않아요?

맞습니더. '여민'이라카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진작부터 여쭤볼라꼬 했는데예….


김 관장. 흔히 대통령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하는데… 김 관장은 그 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즈그들이 진짜로 그칼지는 모르겠지만서도, 국민들을 위한다 카는데… 그거는 좋은 말 아이겠는교?


허허허. 그렇지요? 그런데, 아마도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들 생각을 하겠지만… 나는 그 말을 절대로 믿지 않아요. 국민들 위한다는 말 자주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경우, 거의 못 봤어요. 무엇보다, '위한다'는 표현 자체가… 이미 자기 자신은 그 대상인 국민들보다도 뭔가 우월한 위치에 서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시혜를 베풀겠다… 그런 오만한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정한 지도자라면 위민(爲民)이 아니라, '여민(如民)'하는 자세가 필요한 겁니다. 백성들 위에서 군림을 하거나,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동고동락하며 백성들의 아픔을 함께하는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참된 지도자라는 뜻이지요. 


지금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여민(如民)'이라는 말은, 맹자(孟子)라는 책의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라는 곳에 나오는,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따온 말인데…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 말을 제대로 실천하려고 했던 사람은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대통령, 그 두 분밖에 없다고 봅니다. 정말로 참된 지도자는, 말로만 '위민'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정치권에, 그런 사람들은 수도 없이 깔려 있어요.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경우, 2004년에 청와대 제2 대통령 집무실을 신축하면서… 건물 이름을 '여민관'이라고 지었어요. 근데 이게, 이명박 전 대통령 때부터 '위민관'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그러니 좀 전에 얘기했던 바를 기준으로 얘기한다면… 과연 어떤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들과 함께 하려고 했었는지, 금방 알 수 있지요?"


그거야 뭐… 어르신 말씀 듣고 보이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제 생각하고는 쪼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더. 지는 마, 고향이 대구라서 그런지 박근혜 대통령 골수 지지파라예. 그래서 가끔가다 민혁이 행님하고 부딪칠 때도 있는데… 우옜거나, 정좌수련이나 여민이라카는 말에 그리도 깊은 뜻이 있었는지… 잘 몰랐었는데, 말씀 참말로 감사합니더. 근데 어르신…

왜, 궁금한 게 더 있소?


예, 어르신. 지가… 우짜다가 수련원 앞을 지나갈 때 보면, 늘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더. 거 간판하고 창문에 새겨진 수련원 로고 있잖아예? 그기 대체 무슨 뜻이 있는 겁니꺼? 지가 보기에는 꼭 짐승 눈까리 맨쿠로 생긴 듯 싶은데… 도대체 무슨 뜻인지 궁금해가, 거짓말 쬐매 보태믄 참말로 잠이 잘 안 올 지경이라예.


허허허허. 그게 그렇게도 궁금하셨소, 김 관장? 근데 오늘은, 이제 시간도 늦은 것 같고… 그냥 나중에 한가할 때 강 교수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떤가, 강 교수. 그게 낫지 않겠나?


스승이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자,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답을 한다.


예, 스승님. 때가 되면… 제가 알아서 잘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고… 오늘도 결국 몬 듣고 지나가게 생깃네. 행님. 그럼 난중에 꼭 내 한테 얘기 해줘야 합니데이? 약속 했으예?


상택이 형님, 저는 워낙에 심오한 말씀들이라 그냥 지금까지 옆에서 듣고만 있었는데… 나중에 민혁이 형님한테 그 얘기 듣는 자리, 저도 끼워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갑자기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요.

그칼래? 그럼 찬교도 니도 끼와주까? 행님, 그래도 괘않겄지예?

그럼 나도, 나도, 나도!

그럼 저두요!


스승과 상택의 대화를 듣고 있던 찬교와 보영, 한웅이 덩달아 조르고 나선다. 


응? 갑자기 지원자가 왜 이렇게 많아져? 그래 까짓 거,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럼 그렇게 하지 뭐…. 근데, 아이구야… 정신없이 얘기들 나누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벌써 아홉시 반이 넘었어! 혹시 내 시계가 빠른 건가?

아니요. 강 선생님. 제 시계도 아홉시 반 넘었어요.

그렇죠? 지혜 씨? 저 스승님. 이 집, 곧 영업 마칠 시간인데…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정리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그럼세. 보영이하고 한웅이도 학교 갈 준비도 해야 할 거고. 자, 그럼 다들 일어나볼까? 아 참, 그리고 다음 주에 수학여행 간다고 했지? 자 이거… 용돈에 보태 쓰거라.


스승님이 보영과 한웅에게 용돈을 건넨다. 보영이 눈치를 보자,


"괜찮아. 스승님이 주시는 거니까, 고맙습니다하고 받으면 돼"라고 얘기해준다. 공손히 인사를 하며 용돈을 받는 보영과 한웅.


제주도 가서 선물 사가지고 올게요, 스승님!

허허허. 보영아, 그럴 필요 없어! 그냥 너 맛있는 거 사먹어. 한웅이도 마찬가지고.


찬교야, 오늘은 아쉽지만서도… 그럼 여서 정리하고, 내일 전화통화 해서 다시 날 잡제이? 

네, 두 분 형님들이 부르시면, 저는 언제든지 달려오겠습니다. 하하하.

자, 그럼 다들 일어들 납시다!


위민(爲民)과 여민(如民). 비슷한 것 같지만, 결코 같지 않은 두 단어. 그 단어들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걸 깨닫게 되는 데는, 채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그저 우리들 힘없고 어리숙한 백성들이, 위민이라는 거짓말에 아무 생각 없이 속아서 살아왔던 대가가… 그토록 참혹한 일로 다가올 줄은….



- 오마이뉴스  정소앙 기자 -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99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