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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소설> 노란리본의 분노⑮ - 역성혁명론과 자연권, 부당한 권력에는 저항해야 한다

irene777 2015. 4. 30. 03:39



<세월호 소설>


역성혁명론과 자연권, 부당한 권력에는 저항해야 한다

[노란리본의 분노⑮]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기준


- 오마이뉴스  2015년 4월 16일 -




2014년 4월 16일 05 : 00 AM


'삐삐삐삐삐-'


날카로운 알람벨 소리. '컥…' 하는 소리와 함께 깨어나, 간신히 숨을 들이마신다. 아무래도 가위에 눌린 듯 뒤숭숭한 잠자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둡고 거대한 형체가 온몸을 칭칭 감더니, 목을 강하게 조여 오는 꿈이었다. 배게 커버와 온 몸에, 온통 식은땀이 흥건하다. 몸이 허해진 것일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휴대폰을 도로 내려놓는다. 아무래도 통화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 아마도 곤하게 잠들어 있겠지.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여니, 세상은 아직 칠흑 같은 어둠 속. 문득 간밤에 있었던, 딸아이와의 전화통화가 떠오른다. 통화를 하는 내내, 아이의 목소리는 마치 투명한 공기방울처럼 방울방울 환하게 들떠 있었다.


뭐라고 아빠? 잘 안 들려! 조금 전에 10시부터 배 위에서 불꽃놀이 시작했거든! 그래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 때문에 아빠 목소리가 안 들려! 잠깐만 아빠, 좀 조용한 데로 옮겨볼게.


수화기 너머로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한 환호성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잠잠해진다. 아마도 아이가, 실내로 자리를 옮긴 모양.


저녁은 먹었니?

응. 그러엄~ 아까 배 출발하기 전에, 기다리는 동안에 먹었지. 근데 맛은 별로였어. 근데 아빠, 아빠는 저녁 먹었어? 설마 나 없다고 혼자서 밥도 안 먹고 청승떨고 있는 건 아니지?


여객선도 타고, 불꽃놀이도 구경하고… 아이고 우리 공주님, 아주 신이 나셨네? 근데, 야 인마! 아빠 혼자서 청승? 허허허. 우리 딸내미가 이젠 다 컸다고, 지금 아빠 걱정하는 거야? 아빠는… 아까 김 관장하고 같이 저녁 먹었으니까, 걱정은 뚝! 근데, 한웅이는 지금 뭐하고 있니?

응? 한웅이? 한웅이는 뭐… 아빠하고 관장님이 시킨 대로, 내 보디가드 한답시고 껌 딱지처럼 옆에 찰싹 붙어 있지 뭐. 


그래, 혼자서 위험한 데 다니지 말고 한웅이랑 같이 다녀, 응? 한웅이 녀석 싫다고 투덜대거든 아빠한테 전화하고. 아니면… 한웅이한테 나중에 아빠가, 용돈 준다고 하던가. 


야! 한웅아! 우리 아빠가 너 보디가드 잘하면, 나중에 용돈 준대!

아빠! 근데… 한웅이가 그러는데, 용돈 안 받아도 된다고 걱정하지 말래.


그래? 짜식 기특하네. 어쨌거나 친구들하고 좋은 추억 만들고, 즐거운 시간 보내. 그렇다고 아침에 너무 늦잠 자지는 말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으이구, 아빠 잔소리 좀 그만! 

하하하. 그래. 미안, 미안. 그래도 선생님 말씀 잘 듣는 건, 절대 잊어서는 안 돼? 아 참, 그리고 제주도 도착하면 꼭 전화해야 한다? 

알았어, 아빠. 제주도 도착하면 전화할게.


가위에 눌렸던 느낌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스탠드 등에 불을 켜고,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액자사진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녀석, 언제 이렇게 컸을까…' 


밝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그저 고마운 생각이 든다. 대체 누굴 닮았는지… 가끔가다 너무 왈가닥이어서 걱정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형제도 없이 외동으로 자랐음에도 외로움 안타는 낙천적인 성격이,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처음으로 가는 수학여행, 평생의 추억으로 남겠지. 잘 다녀오렴.



2014년 4월 16일 08 : 20 AM


응, 보영이니? 잠은 잘 잤어? 아침은? 벌써 먹었다고? 응, 아빠는 좀 전에 학교 출근해서, 지금 연구실에서 강의 준비하고 있어. 조금 있다가 새로 온 조교 면담하고, 곧바로 강의하러 가야하니까 아마도 전화기 꺼져 있을 거야. 강의 끝나는 시간? 음… 9시 50분이니까, 그 때쯤 다시 통화할까? 응 그래. 그래. 우리 딸 안녕…


한 20여 분쯤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들리는 노크소리.


들어오세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어이! 민선, 민선, 국민선! 그래, 반갑네. 자네, 박사과정 처음 들어갔을 때 보고… 한 3년 만인 것 같은데, 맞나? 

예. 석사 마치고 취직이 되서 직장생활 하다가… 박사과정 시작했었는데요, 직장하고 병행하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박사과정 초기부터 좀 쉬었거든요. 그러다 몇 년 만에, 다시 시작하게 됐네요.


자네도 참 어지간하구먼. 뭐 공부에 그리도 미련이 많아서 그렇게 악착을 떨어? 부모님은 아무 말씀 안 하시나? 

네, 그렇지 않아도 틈 날 때마다 얼른 시집이나 가라고 잔소리 하시는 바람에 아주 죽겠어요.

그러게… 자네 나이도 낼 모레면 서른일 텐데, 부모님이 걱정하시겠구먼.

교수님! 저 아직 스물여덟이거든요?

어이구, 달걀 한 판이나 계란 한 판이나 그게 그거지 뭐. 어쨌거나 스펙도 그만하면 충분하니까, 결혼하자고 맘만 먹으면 줄 설 놈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왜 그럴까? 어디 쫓아 댕기는 눈먼 놈 하나도 없어?

그러게요, 저도 제가 왜 이러고 사는지 잘 모르겠어요. 교수님이 그 눈먼 놈, 하나 소개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호호호.


쯧쯧쯧, 앓느니 죽지…. 어쨌거나 내 강의 조교는 이번이 처음이지? 학기 초에 조교 맡았던 친구가 갑자기 시집간다고 그만두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새로 뽑게 되었는데, 그걸 자네가 맡게 될 줄이야…. 어쨌거나 쫓아다니는 눈먼 놈 없다고 했으니까… 이번 학기 끝나기 전까지는 자넨 연애금지야. 알았나? 또 조교, 새로 뽑는 일은 없어야지! 하하하!


교수님! 그건 좀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 집에서 잔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저도 언젠가는 연애도 하고 시집은 가야죠!

으이구, 농담이야 농담! 어쨌거나 그건 자네 개인사니까 알아서 잘 하고, 어때? 학생들한테 자네 소개는, 오늘 강의 도중에 하는 게 좋겠지? 

저야 뭐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교수님이 하라고 하실 때 하죠 뭐.

그래. 그럼 대충 봐서, 적당한 때 하도록 하자고….



2014년 4월 16일 09 : 00 AM


자 오늘, '동북아시아 정치사상사' 4월 셋째 주, 두 번째 수업이죠? 오늘 수업의 주제는 '한·중·일 3국의 중요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라는 내용을 다룰 거예요. 근데, 여기서 말하는 '중요한'이라는 기준은 대체 누가 세운 것이냐?


잠시 뜸을 들이며 학생들의 반응을 살핀다.


흐흐흐 그거야 뭐 물을 필요도 없이, 내가 내 맘대로 세운 거니까, 책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소용없어요. 잉~?


순간,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난다. 강의 시간에 농담이나 유머를 섞을 때마다… 바로 이 '잉~?'하고 말꼬리를 올리곤 하는 묘한 습관이 있었는데, 기특하게도 학생들은 매번 그 순간에 '빵 터지며' 웃는다.


자, 먼저… 다들 앞에 있는 칠판을 보도록 해요.


전자칠판에 질문 하나를 띄운다. 세상이 좋아져서, 이제는 강의실마다 전자칠판과 전자교탁을 사용한다. 분필가루 날리는 강의실은, 이제 추억 저편의 옛말이 됐다.




▲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부끄러움에 대한 주장들   ⓒ 정소앙



자, 누구 아는 사람… 어디 손 한 번 들어볼까? …응? 뭐야? 아무도 없어? 허허. 거참. 하긴 뭐… 그럴 수 있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근데 문제는… 여러분들이 이미 고등학교 때, 다 배웠던 내용이라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다들 반성들 해요 잉?~


또,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


어쩔 수 없이 답은 내가 말해야겠네. 자, 여러분… 혹시 '사단칠정론'이라는 말, 혹시 기억나나요? 응? 뭐야? 이제야 아! 하는 학생들은. 아! 이제야 기억이 난다… 뭐 그런 뜻인가? 근데 지금 혹시, 퇴계 이황을 떠올리고 있는 사람들은, 문제를 다시 한 번 보도록 하세요. 분명히 '중국의 사상가'라고 되어 있죠?

'사단칠정론'을 주장했던 사람은, 조선시대 때 학자였던 퇴계 이황이 맞지만… '사단( 四端 )'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던 사람은 바로, 맹자예요. 그러니까 이 문제의 답은 맹자가 되겠어요. 어때요, 참 쉽죠?


자, 그런데… '맹자'라는 답을 듣는 순간, 벌써부터 따분하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들이 있는데… 다 이해해요. 흔히들 '공자왈, 맹자왈' 하면… 고리타분하거나 지나치게 고지식한 옛날 얘기라고만 생각들을 하니까. 그런데 오늘 강의 시간이 지나면, 맹자가 꼭 그렇게 고리타분한 인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그리고 오늘 강의를 시작하면서, 수업주제가 '한·중·일 3국의 중요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라고 했었는데… 맹자가 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될 거예요. 이제부터 강의, 본격적으로 시작할 테니까 집중하세요.


우선 문제에서 질문을 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부끄러움'에 관한 부분을 가리켜,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했어요. 앞서서 말했던 4단(四端)중의 하나죠. 여기서 말하는 단(端)이라고 하는 것은, 문자학적으로 보면… 땅 속에서 식물의 싹이 움터 나오는 끄트머리 부분을 말해요. 그러니까 4단(四端)이라는 말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네 가지 잠재되어 있는 본성이다… 이런 뜻이 되는 거겠죠.


그럼, 어디 4단(四端)이 무엇 무엇인지 혹시 아는 사람? 응, 거기… 앞줄에서 두 번째 손든 학생.

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입니다!

그렇지! 좋았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지! 다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건데, 이걸 몰라서야 되겠어요? 자, 그럼 이제 4단(四端)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한 번 살펴볼까요? '맹자'라는 책을 보면, 총 7편으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그 중 공손추(公孫丑)편에 바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다시 칠판을 보도록 하세요.




▲ 맹자의 4단( 四端 )   ⓒ 정소앙



그러니까, 맹자의 주장은 이런 거예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슬픔이나 고통에 빠져 있을 때, 그걸 불쌍히 여기거나 함께 아파할 줄 모른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면, 그것 역시 사람이 아니다.

또한 자기욕심만 부리면서 사양할 줄 모르면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릴 줄 모른다면 그 또한 사람이 아니다. 왜? 그건, 인간이 타고나는 본성에 해당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그야말로 '공자왈 맹자왈' 하는 고리타분한 얘기가 되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죠. 


맹자는 이 네 가지 인간의 본성을 근거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했었다는 거, 다들 알고 있죠? 그리고 여기에서 각각 4단(四端)이 발현되어 나타나는 덕성(德性)을 인(仁)·의(義)·예(禮)·지(智)라고 했는데… 각각 인(仁)은 측은지심, 의(義)는 수오지심, 예(禮)는 사양지심, 지(智)는 시비지심에 연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왜 중요한가?


맹자는 그가 주장했었던 '왕도정치(王道政治)'와 관련하여, 4단(四端)의 근본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만이 군주나 왕이 될 수 있다고 본 거예요. 남을 측은하게 여기거나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모르면… 혹은 타인에 대해 양보하고 존중하거나 옳고 그름을 가릴 줄 모른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에 불과한 존재니까!


그래서 맹자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어요. 다시 칠판을 보세요.




▲ '맹자'에 나오는 역성혁명 사상   ⓒ 정소앙



자 여기에서 "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 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적인자위지적, 적의자위지잔, 잔적지인, 위지일부. 문주일부주의, 미문시군야."…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겠어요?


맹자는 지금, 인仁과 의義를 파괴하는 자… 그러니까 백성의 슬픔과 고통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르거나(측은지심),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수오지심) 자는, 군주가 아니라 도적이나 강도나 마찬가지이니 죽여 버려도 된다… 이런 엄청난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자, 맹자가 아직도 고리타분한 인물인가요?


바로 이런 인식을 바탕에 두고, 맹자를 가리켜서 '인류역사상 최초로 혁명이론을 주장한 인물'이라고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실은, 맹자가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오리지널은 따로 있어요. 만약 그걸 이해하는 학생은, 이 강의의 절반이상은 이해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한 번 열심히 연구해 보세요.


어쨌거나, 맹자의 이 '역성혁명(易姓革命)' 사상은… 후세 사람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태조 이성계와 더불어 조선을 건국했던 정도전이 바로 그 대표적인 케이스죠. 일화에 의하면, 정몽주가 선물했던 '맹자'를… 정도전이 그렇게 열심히 탐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사를 일으킬 때 내세웠던 논리적인 근거가 바로, 앞서 설명했던 맹자의 '양혜왕 하'편 이었던 거죠. 그러니, 맹자는 고리타분한 게 아니라 오히려 무서운 인물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다시 살펴보자면, 맹자라는 책은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 이루, 만장, 고자, 진심의 일곱 편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점도 기억을 해두세요. 그러면 다음으로, 정치권에서 가끔 인용되는 말인데, '무항산 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라는 말을 한 번 살펴보겠어요. 칠판을 보세요.




▲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 無恒産無恒心 )’   ⓒ 정소앙



맹자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라는 말을 통해,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지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는데, 그 이후에 그것을 처벌하는 것은 어진 임금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이죠.


재벌들은 수백조원씩 돈을 쌓아두고 있는데도, 갈수록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중산층도 하루하루 불안에 떨고 있는 오늘 날의 현실…. 오죽하면, 돈이 없어서 자살을 했던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일들이 벌어졌겠어요? 그런 점에서, 2천 3백여 년 전에 맹자가 했던 말을,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좀 새겨들었으면 좋겠군요.


근데, 왜 아까부터 학생은 자꾸 웃고 있지? 

네, 저… 맹자라는 책의 일곱 편 가운데 하나인 '고자'가 자꾸…

어이구, 이 친구야! 그건 사람이름이라고! 왜 엉뚱한 상상을 하고 그래? 그럼 기왕 또 말이 나온 김에 설명을 하자면, 고자(告子)는… 허허허. 이거야 원. 어쨌거나, 맹자와 더불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을 했던 사람이 바로 고자(告子)인데…


킥킥킥. 키득키득. 여기저기서 웃는 소리들이 터져 나오면서, 강의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아! 조용! 조용! 지금은 웃을 타이밍이 아니라고! 으이구….

자자자! 나는 계속 설명할 테니까, 웃을 사람들은 계속 웃던가 말던가. 험험험. 그러니까, 맹자의 성선설을 반박하면서… 인간의 본성은 그 자체로는 선하거나 악하다고 규정할 수 없다는 게 바로 고자(告子)의 주장이었는데,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고자와 맹자가 치열하게 논쟁했던 내용이 실려 있어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서양의 철학자가 한 명 있죠? 누군지 아는 사람? 타불라 라사(Tabula rasa)라는 단어가 힌트인데…. 응, 거기 왼쪽 세 번째 줄 손든 학생.


혹시 존 로크 아닙니까?

그렇지! 맞았어요. 아까 엉뚱한 상상하면서 키득거렸던 사람들은, 이 학생을 좀 본받았으면 좋겠군요. 자, 어쨌거나 타불라 라사(Tabula rasa)라는 말은 라틴어로 '깨끗한 석판'이라는 뜻인데, 존 로크의 불후의 명저 가운데 하나인 '인간 오성론', 영어로는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주장했던 개념이죠. 당시 데카르트나 기독교 철학과는 다르게, 존 로크는 인간은 선천적인 관념을 지니고 태어나지 않은 '백지상태와 같은 존재다'… 라는 주장을 했던 겁니다.


그럼 대체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냐? 여러분 혹시 '리바이어던'(Leiviathan)'이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말 기억나나요? 네, 맞아요. 존 로크보다 한 40년 먼저 태어났었던 영국의 토마스 홉스가 했던 말이죠.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만인 대 만인에 의한 투쟁과 공포, 그리고 죽음의 위험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런 상태를 면하기 위해 계약을 맺고 국가를 형성했으며, 이 때 모든 권리를 주권자인 지배자에게 양도했기 때문에… 국왕은 '절대적인 존재'다. 이게 토마스 홉스의 사회계약론이었는데, 존 로크는 이것을 정면으로 반박했던 겁니다.


홉스와는 달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백지와 같고… 따라서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평등하며, 생명과 재산, 그리고 자유라는 자연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자연권을 보다 확실히 누리기 위해, 인간은 계약을 맺고 사회, 즉 국가를 형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군주에게 권리를 양도한 것이 아니라, 위탁한 것에 불과한 것이고… 만약 지배자가 계약에 의해 위탁받은 자연권을 유린할 때에는… 거기에 저항하는 것이, 시민의 당연한 자연권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로크의 이런 주장은 명예혁명을 정당화시키면서, 나아가 근대민주주의 사상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죠. 그리고 장 자크 루소 등의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데도 사상적으로 크나 큰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존 로크의 타블라 라사, 즉 인간의 본성은 백지와도 같다는 주장은 정확히 맹자와 논쟁을 벌였던 고자(告子)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것이고… 자연권과 시민의 저항권리는 맹자의 '역성혁명' 논리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도 있겠죠? 우리 헌법에도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비밀, 양심과 신앙 및 언론의 자유 등이 그 어떤 경우에도 제한되거나 침해될 수 없는 절대적인 자연권이다… 이렇게 규정이 되어있으니,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정당성을 상실한 국가권력에 대해 존 로크나 맹자, 두 사람 모두 백성들이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을 했던 것이죠. 다만, 존 로크가 1632년에 태어난 사람이니… 기원전 372년에 태어난 맹자가, 그 보다도 무려 1900년 전에 거의 똑 같은 주장을 했었다는 게 다소 놀라울 따름이죠.




▲ 국회에서 세월호 유족들의 피맺힌 호소를 외면했던 박근혜 대통령   ⓒ 오마이뉴스




▲ 세월호 유가족의 호소를 외면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 오마이뉴스




▲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하는 유가족들을 조롱했던 일베의 '폭식투쟁'   ⓒ 오마이뉴스



2014년,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들. 


사람인가 짐승인가, 군주인가 필부인가? 만약, 2300여 년 전의 맹자가 이들을 보았다면… 과연 뭐라고 했을까? 그리고 400여 년 전, 인간의 기본적인 자연권을 유린하는 지배자에 대해 강력히 저항하는 것은…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에 속한다고 설파했던 존 로크, 그는 또 무어라고 했을 것인가?


오래 전, 옛 사람들의 가르침이 머릿속에서 천둥처럼 울리는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오마이뉴스  정소앙 기자 -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99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