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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朴대통령, 이번엔 ‘아몰랑’으로 안 된다

irene777 2015. 6. 11. 16:28



朴대통령, 이번엔 ‘아몰랑’으로 안 된다

청와대 보좌진들은 빌헬름과 니콜라이를 기억하라


진실의길  임두만 칼럼


- 2015년 6월 10일 -




지금 우리는 메르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초의 감염환자가 나타난 5월15일 이후 3주가 넘어서면서 의심환자 1,969명, 확진환자 95명… 사망자 7명, 위험환자 9명… 격리자가 3,000명에 육박하는 2,892명…


그런데 이 격리자들에 대한 통제는 ‘통제’가 아니라 ‘자제’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그러니 “빨리 장마가 와야 한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현재 우린 '지겹지만 무서운 전쟁'에 머리를 흔들고 있다.




▲ 신문고뉴스   ©박훈규 



더구나 적군은 메르스가 아니어서 더 문제다. 대통령 박근혜를 지지하는 측은 적군이 서울시장 박원순과 성남시장 이재명 등 야당 정치인들이고, 그 반대의 사람들은 메르스보다 ‘무능한 정부’가 적이다. 똑 같이 목숨을 두고 하는 전쟁인데 이처럼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음에도 ‘지겨운 전쟁’이 되고 있다.


‘지겨운 전쟁’… 지겨운 전쟁을 말하라면 우리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5년간 독일과 프랑스 접경을 중심으로 ‘지겹게’ 전투가 이어졌던 ‘세계 제1차 대전’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지겨운’ 전쟁으로 병사 9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역사책에 쓰여진 글씨로 900만이지 상상하기 힘든 숫자다. 그리고 이 엄청난 수의 젊은이들 목숨을 앗아간 전쟁은 권력자들의 ‘무능과 탐욕’이다.


이 전쟁은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막을 내렸지만 종전 후 독일과 러시아는 권력을 행사한 당사자들이 치러야 할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누구에게? 양국 민중들에게다. 역사의 주인은 언제나 민중이라는 진실… 이에 항거하는 권력은 처참하다는 진실… 1918년의 독일과 러시아 이야기다. 이 두 나라는 전쟁을 계획하고 진두지휘한 황제가 몰락했으며 왕정도 끝났다.


빌헬름2세를 몰락시킨 독일혁명을 역사는 ‘독일 11월 혁명’이라고 명명한다. 독일 혁명은 해군 수병들의 반란에서 시작된다.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해군 수뇌부가 지는 전쟁에 총동원령을 내렸을 때 해군 수병들은 봉기했다. 이른바 ‘킬 군항의 반란'이었다. 수병들이 봉기하자 잠자던 노동자들이 동조했다. 이 걷잡을 수 없는 바닥의 물결을 권력은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빌헬름 2세는 왕좌에서 쫓겨나 벨기에로 망명을 했다.


1차 세계대전의 900만 사망자 중 203만 명 전사한 독일의 인명손실은 러시아(170만) 프랑스(140만) 영국 (90만)에 비하면 봉기하지 않을 수 없는 수치였다. 권력의 잘못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민중은 봉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진리다. 이게 독일의 11월 혁명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1차 대전의 시초는 발칸반도 분쟁이다. 이 분쟁의 와중에 사라예보 테러가 일어났다. 그래서 세르비아의 오랜 지원국인 러시아가 보스니와와 헤르고체비나를 제압하기 위한 동원령을 선포했다. 러시아 민중의 삶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런데 독일의 빌헬름2세가 이에 대항, 룩셈부르크와 프랑스를 전격 침공하면서 국제전쟁으로 비화했다. 이후 5년간 독일 청년 200만 넘게 죽었다. 빌헬름2세는 벨기에로 쫓겨나서 죽었다. 물론 러시아 청년도 170만이 죽었다. 제정 러시아는 망하여 소련이 되었고, 소련은 20세기 지구촌에 악의 근원을 심었다. 모두가 ‘애민’이 없는 정치 때문이다.


민중은 일견 조용하다. 권력은 남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조용함’의 기준이 깨지는 순간 권력은 격랑을 감당할 수 없다. 1918년 독일과 러시아 민중 이야기만이 아니다. 1960년과 1987년 한국 민중 이야기도 된다. 다른 점은 봉기의 열기를 이어가는 속성이다.


메르스에 대한 불안은 치사율 10%가 전부는 아니다. 애초는 물론 높은 치사율이었으나 지금은 그 범주를 벗어났다. 갑자기 급환에 생겨 목숨이 위태로워도 구급차를 타고 갈 곳이 없다는 게 더 문제다. 질병의 근원지가 병원이므로 병원이 환자들에게 배척당하고 있다. 아프면 병원으로 가야하는데, 아파도 갈 곳이 없다는 불안감, 지금 우리 국민들이 울분에 처한 이유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남의 나라 일인 양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관련된 중대 상황이 발생했는데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계획된 미국 방문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단다. 현재 청와대는 일정대로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일정 변경과 관련한 검토를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이 비통함에 빠져있었던 지난 해 5월,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후 원전 행사 참석이란 이유로 출국,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했다. 또 세월호 참사 1주년인 지난 4월16일에는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했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당시 대통령의 격까지 거론될 정도로 정부가 원자로 기공식 참석을 간곡히 요청했던 아랍에미리트 모하메드 왕세제가 당일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창피를 당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1주년 날인 지난 4월 16일 중남미 순방 기간에는 이완구 전 총리 낙마 등의 상황이 발생하는 등 국내 정치의 격변이 있었다.


지금 우리는 앞서 거론했듯이 메르스와 ‘지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와중에 비리혐의로 낙마한 총리의 후임에 지명된 황교안 후보자 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총리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이나 국가 경영에 대한 비전이 아니라 이미 살아 온 날들에 대한 비난 공세를 방어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어디서도 대통령부터 이 정권의 수뇌부들에게서 ‘애민’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애민’이 없는 권력은 망하는 게 진리다. 이 진리는 역사가 증명하며 나는 그 사례로 20세기 초반 독일과 러시아 권력자들을 들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매우 조용하다. 메르스와 ‘지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는 모두가 마음속으로는 불안하여 전전긍긍하지만 그래도 조용하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너무 조용하니까 박원순 시장의 ‘메르스 정면대응’이 ‘박근혜 권력’에 대항한다고 어버이연합 늙은이들이 길거리에서 현수막을 쳐들고 시위까지 한다. 당국이 단 한 명의 환자를 통제하지 못해 일어난 ‘난리’인데 총구는 엉뚱한 곳을 겨냥하고 있다.


1914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자신과 제국에 대한 국내의 불만을 진정시키기 위해 동원령을 내렸다. 황제는 1915년부터 직접 전투지휘에 나서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전승국임에도 니콜라이는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애민이 없는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낱 메르스라는 역병을 가지고 권력의 종말 운운하는 게 우스운가?


권력자의 ‘애민’에 관한 비유로 1차대전만한 전쟁이 없다. 그 전쟁의 결과로 승전국도 패전국도 권력이 급변, 제정이 무너졌다. 민중과 무관하게 권력자가 탐욕적이 되면 인류에게 어떤 폐해가 있었는지 1차 대전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는 조용함에 더 긴장해야 한다. 지금 미국 방문 운운할 때가 아니다. 혼자서만 독야청청 ‘아몰랑’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c_flower911&uid=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