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밖에 난 몰라
- 시사IN 2015년 7월 2일 -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다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6·25 사태’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통령이 강공을 택한 국면마다
국정 수행 평가는 폭락한 상태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때 아닌 내기가 벌어졌다. 국회법 개정안 논란이 한창이던 6월 중순,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동료 보좌진과 내기를 걸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느냐 마느냐를 두고였다. 청와대와 국회의 정면충돌이라는 초대형 이슈 앞에 여의도의 ‘선수’들조차 예측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여의도에서 이런 내기를 벌인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다섯 명이 1만원씩 걸었던 내기는 3대2로 갈렸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리라고 본 사람이 많았다. 3분의 2가 넘는 국회의원이 통과시킨 법을 거부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였다. 박 대통령이 과거 야당 시절에는 정부의 시행령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했다는 사실도 발목을 잡으리라 보았다. ‘삼권 분립’ 운운하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청와대의 명분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이 무렵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바람직하지 않다’(44.8%)는 응답이 높게 나왔다. 바람직하다는 의견은 33.4%였다 (6월17~18일 리얼미터 조사).
▲ 박근혜 대통령이 6월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일각에서 ‘6·25 사태’라고까지 부르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 모든 관측을 한 방에 쓸어버렸다. ‘배신의 정치’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새누리당 지도부를 질타한 데서는 ‘한기를 느꼈다’는 정치권 관계자가 적지 않았다.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초강경 태도였다. 보수 언론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은 이날 정치권 전체를 상대로 타협이나 대화보다는 공격과 대결을 선택했다”라는 <조선일보> 사설이 대표적이다.
앞서 말한 내기를 제안했던 여당 보좌관은 이런 사태를 어느 정도는 예측했다고 말했다. 그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리라고 보았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박 대통령 특유의 독선, 논란을 방치했다가 뒤통수를 치는 정치 스타일, 그리고 지지율.
박근혜 대통령이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치권에서는 정설처럼 떠도는 이야기다. 충성을 바쳤던 인물이라 해도 자신에게 도전하는 낌새가 느껴지면 가차 없이 잘라냈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를 한다고 질타당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을 때 비서실장을 맡은 ‘원조 친박’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이 여당에 두 명 있는데, 한 명이 최경환 경제부총리이고 그다음이 유승민 의원이다”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다.
둘 사이가 언제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확실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유승민 의원이 본격적으로 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청와대의 ‘소통 부족’ 문제 등에 날을 세웠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는 정부 외교 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거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거냐”라고 질타했다. 청와대 얼라(어린아이)는 권력 실세로 떠오른 비서관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뜻한다. 두 달 뒤 ‘정윤회 사태’가 터지면서 이 발언은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청와대가 부글부글 끓었음은 불을 보듯 뻔했다.
논란이 불거지면 일단 뭉개고 보는 대통령
지난 2월 원내대표 취임 이후 유승민의 정치가 본격 시작됐다.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선언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신보수’ 노선을 채택한 유승민의 존재감이 한층 커졌다. 이때부터 ‘박근혜와 유승민의 전쟁’은 본격적으로 막이 올렸다. 국회법 개정안은 그 뇌관이었을 뿐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유승민 원내대표가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마음 푸시라”며 바짝 엎드렸지만, 파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은 유 원내대표를 공개 비판한 것으로도 모자라 원내대표직을 사퇴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아한 점이 있다.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5월29일이었다. 이때부터 거부권 행사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6월25일이었다. 한 달 가까이 이 논란을 뭉개고 있었다. 메르스 사태의 여파 탓이 컸지만, 6월 내내 정치권이 이 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점을 생각하면 꽤 오랜 시간이다. ‘장고 끝에 타협하지 않겠느냐’라는 관측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충격의 강도는 더욱 크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 지적된다. 박 대통령은 논란이 불거지면 일단 뭉개고 본다.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가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공격하거나, 다른 이슈를 들고 나와 의제를 전환한다. 취임 이후 주요 이슈를 돌이켜보면 박 대통령 특유의 대응 방식이 발견된다.
▲ 6월26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22일 세월호 유가족이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며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밤샘 농성에도 대통령은 끝내 문을 열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면담 때 “언제라도 유가족을 만나겠다”라고 한 대통령의 약속은 거짓말이 되었다. 수사권·기소권을 포함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유가족·야권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당시 정국의 최대 이슈였다.
그러나 대통령은 묵묵부답이었다.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9월16일 작심한 듯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기소권·수사권을 줄 수 없다는 선언, 대통령 모독 등 국론 분열 행위를 엄단하라는 지시, 국회의원 세비를 반납해야 한다는 엄포까지 나왔다. 예측하지 못한 대통령의 강공에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세월호 특별법 논란의 모든 책임을 국회에 떠넘겼다. 그로부터 보름 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이끌었던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사퇴했다. 정치권은 박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뛰어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의 승리였다.
2013년 10월18일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으로 정국이 요동쳤다. 특별수사팀장으로 사건을 수사하던 윤석열 검사가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윤 검사가 국정원 직원 3명을 체포한 직후 벌어진 일이었다. 파문이 일파만파 번졌으나 청와대는 침묵했다. 10월23일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까지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사건이 불거지고 보름이 넘어서야 내놓은 정부의 답변은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였다. 현 총리인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총대를 멨다. 야권과 진보 언론에서 “선거 부정을 덮기 위해 공안 카드를 내놓고 있다”라고 비판했지만, 해산 청구의 파괴력은 컸다. 보수 언론은 일제히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환영하며, 2012년 총선 때의 야권 연대를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통합진보당 카드는 2014년 12월 정윤회 파문 때 한 번 더 빛을 발했다. 쏟아지는 비판을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피해간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조력을 받았다. 12월19일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은 정윤회 논란을 무력화했다. 박 대통령은 이튿날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추어올렸다. 정윤회 논란은 사라졌다.
지난 1~2월 연말정산 파동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위기였다. ‘유리지갑’ 직장인들이 대거 반발하면서 2월 중순 국정 수행 지지율이 29%까지 하락했다. 취임 후 최저치였다. 이때도 박 대통령 특유의 정치 스타일이 발휘됐다. 취임 2주년을 앞둔 2월23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갑자기 “불어터진 국수를 먹는 우리 경제가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발언을 내놓는다. 정치권의 정쟁이 발목을 잡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빛을 보지 못한다는 타박이었다. 연말정산 파동 같은 경제정책 실패를 국회 탓으로 돌렸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이 남긴 말이 있다. “내각 중심의 적극적이고 강력한 정책 추진”이라는 대목이다. 막 취임한 이완구 국무총리를 비롯해 내각의 3분의 1이 친박계 의원으로 채워진 시점이었다. 새누리당의 관계자는 “이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정국 구도를 ‘일하는 정부 대 발목 잡는 국회’로 봤을 공산이 크다”라고 말했다. 국회법 개정안을 빌미로 한 충돌 구도가 이미 짜여 있었다는 이야기다.
▲ 6월21일 인천 가뭄 피해지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메르스 쇼’라는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모든 논란의 배경에는 국정 수행 지지율이 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지지율에 무척 신경을 쓴다는 사실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세월호 유족의 청와대 농성, 정윤회 사건, 연말정산 파동 등 박 대통령이 강공을 택한 국면마다 국정 수행 평가는 폭락해 있었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지지율은 또 한 번 바닥을 쳤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가 6월 중순 메르스에 뚫리면서 대구·경북의 지지율도 흔들렸다.
청와대는 동대문시장 방문, 논에 물 뿌리기 등 민망한 사진을 ‘방출’하면서까지 지지율 회복에 안간힘을 썼다. ‘메르스 쇼’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부권 행사가 메르스 정국을 탈출하기 위한 승부수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새누리당 사정에 밝은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국가기관 신뢰도를 보면 늘 국회가 꼴찌고, 청와대는 중간쯤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만만한 먹잇감으로 여긴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라고 말했다.
비박계로 구성된 여당 지도부의 향후 행보는?
실제로 6월2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지난주 대비 4%포인트 올랐다. 사흘 동안 실시된 여론조사 기간의 마지막 날 거부권 행사가 이뤄졌기에 이 지지율을 거부권 행사와 곧바로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지지율이 큰 폭으로 오른 것은 사실이다. 거부권 행사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찬반 여론이 팽팽했다.
지난 2월 연말정산 파동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기자 새누리당 부설 여의도연구원은 ‘대통령 지지도와 국정 운영’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임기 중반 이후에는 중도 개혁적인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 △핵심 정책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등 12가지 방안이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이 ‘여당의 협조를 당연시해서는 안 되며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평상시 여당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정권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박 대통령은 보고서 내용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당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었다. 지금이야 대통령에게 바짝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비박계로 구성된 여당 지도부가 향후 어떻게 ‘치명상’을 입힐지 알 수 없다. 보고서는 한국 대통령의 지지도 추이가 ‘초고말저(初高末低)’임을 강조하며, 한국 대통령의 특징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레임덕 대통령’이라고 분석했다. 여의도연구원 측은 “이 보고서가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 시사IN 이오성 기자 -
<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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