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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중의 절규를 ‘폭력’으로 매도하지 말라

irene777 2015. 11. 18. 01:04



민중의 절규를 ‘폭력’으로 매도하지 말라

폭력이 아니라서 차벽 못 뚫은 거다


진실의길  김갑수 칼럼


- 2015년 11월 16일 -




폭력이란 무엇이고 비폭력이란 무엇인가? 길게 말할 것도 없이 14일의 두 역사적 사건이 이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파리가 폭력이라면 서울은 비폭력이었다. 물론 서울에서도 폭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경찰이 폭력이었다면 시위 군중은 비폭력이었다.


대학로에서 집회가 끝난 시각은 3시 35분, 약속된 시간에 맞춰 광화문으로 가기에는 조금 늦은 시각이었다. 하지만 행진은 시작되지 않았다. 주최 측에서 인근 성균관대학의 논술고사가 시작되는 4시 이후에 움직이자고 했고 시위 군중은 이에 따랐다.


시위대는 질서정연하게 광화문 가까이까지 행진했다. 종로 1가 일대는 이미 경찰이 남발한 물대포로 인해 수해현장 같았고 도로는 물론 골목마다 매캐한 최루가스 때문에 눈이 따끔거리고 기침이 터질 정도였다.




▲ 이미지 출처 : 한겨레



시위군중은 거대하고도 완벽한(?) 차벽을 넘은 적이 없다. 이는 경찰 스스로 차벽에 써 놓은 ‘폴리스라인’을 넘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경찰은 그곳에 다가가기만 해도 물대포를 쐈고, 물줄기를 피해 물러나는 사람들에게도 최루액을 발사했다. 누가 폭력이고 누가 비폭력인가?


물대포와 최루액은 차도 인도 가리지 않고 난사되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마스크와 수건으로 제 입을 막을지언정 경찰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최루 성분은 인근 음식점 내부와 화장실에까지 들어차 있을 정도였다.


물론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은 일부 시민이 경찰버스와 차벽 위의 경찰에게 저항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숫자가 10명 안팎에 불과했다는 것은 오히려 이 시위가 얼마나 온순한(?) 것이었는지를 입증하는 사례일 따름이다.


폭력이란 불법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원래 차벽부터가 위헌적인 것이고 그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 통행까지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대포와 최루액 발사가 불법이듯이 쇠줄로 연결한 700여 대의 차벽 모두가 불법적인 것이다. 불법적인 구조물을 이용하여 위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이 폭력 아니고 또 뭐란 말인가?


조선일보에게 묻는다. 폭력시위가 무언지를 아는가? 만약 어제(14일)의 시위가 폭력이었다면 지척에 있던 너희 건물이 배겨날 수 있었을까? 너희들이 현장에서 사진 찍고 기사 송고할 수 있었을까? 아니 너희들이 감히 그곳에 얼씬거리기라도 할 수 있었을까?


농민들이 상여를 메고 차벽에 접근했을 때, 경찰 말대로의 ‘폴리스라인’을 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물대포를 난사하여 사람을 쓰러트리고 구급차에까지 최루액을 발사한 게 폭력 아니고 뭐란 말인가? 어제(14일) 시위에 폭력이 있었다면 그 폭력의 시작도 끝도 모두 경찰의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더 이상 사람 웃기지 마라. 횃불은 횃불이고 도로 점거는 도로 점거일 뿐이다. 그게 왜 폭력이라는 것인가? 진짜 폭력이라면 러일전쟁 때 동경시민들이 강화조약에 찬성한 한 신문사를 찾아가 사옥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린 일이 있는데 그런 것이 바로 폭력인 것이다.


몇 년 전 호주에서 소 값 폭락했다고 농민들이 시위했을 때 트랙터 동원하고 소를 난자하여 죽인 일이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만 명 이상 모인 시위가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는 예는 거의 없다. 어제(14일) 시위 현장을 지켜보며 나는 한국인은 참으로 평화를 애호하는 기질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최소로 잡아 10만 명 이상은 족히 모였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돌멩이를 들거나 도시 시설물을 건드리는 걸 보지 못했다.


어제(14일)의 시위가 폭력이었다고? 차벽을 공격했다고? 바로 알아야 한다. 폭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차벽을 넘지 않고 밧줄을 써서 시위대 쪽으로 당긴 것이다. 이는 폭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차벽을 뚫지 못했다는 뜻이다. 폭력 군중이었다면 그 차벽 하나를 넘지 못했을까? 정말 분노가 치밀면 차벽보다 수십 배 더 높고 험한 산성의 성벽도 넘어가는 것이 민중이다.


다시 말하자면 11월 14일의 파리와는 정반대로 서울은 비폭력이었다. 11월 14일의 폭력은 경찰이었고 비폭력은 민중이었다. 정작 위험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비폭력을 폭력이라고 매도만 하면 언제 어디서 ‘진짜 폭력’이 터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시민은 국정화를, 노동자는 노동개악을. 젊은이는 헬조선을, 농민은 밥쌀수입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절규’였다. 어제의 사건은 ‘절규’를 평화적으로 ‘데몬스트레이트’ 할 줄 알았던 실로 온순한 민중의 민주적 시위였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c_booking&uid=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