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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슬람 국가와 테러리스트에 대한 정보사회학적 분석

irene777 2015. 12. 3. 18:28



이슬람 국가와 테러리스트에 대한 정보사회학적 분석

종교와 문화, 자본주의의 모순만 갖고는 자발적 순교자들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김홍열  성공회대 겸임교수 (정보사회학)


- 진실의길  2015년 11월 26일 -




9.11 사건의 배후 세력인 알 카에다의 뒤를 이어 이슬람 국가 (Islamic State, IS)가 계속 국제 뉴스의 중심에 서 있다. IS가 주도한 테러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 벌어지고 있고 불행하게도 최근 발생한 파리 테러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주요 언론들은 IS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발달 과정을 오래 전부터 세밀하게 분석해왔다. 여러 관점에서 분석이 이루어져 왔다. 원인이 매우 복잡하다.


이슬람의 두 종파인 순니파와 시아파의 기원과 오랜 갈등, 현 아랍국가들의 상호 역학 관계 그리고 아랍지역을 둘러싼 주요 선진국의 이해관계 그리고 여기에 이스라엘 변수까지 더해져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면 맥락 파악조차 힘들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도 많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종교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한 사람은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엘 헌팅턴이 대표적이고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한 사람은 노암 촘스키나 하워드 진이 대표적이다. 일독을 권하고 싶은 지식인들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들은 나름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구조적 프레임을 전제하고 있어 파리 테러와 같은 최근의 ‘자발적 순교’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종교와 문화, 자본주의의 모순만 갖고는 자발적 순교자들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년 초 한국의 어린 십 대 청년이 자발적으로 IS 에 가입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슬람교를 믿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근본주의적 성향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이 청년은 출국하기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나라와 가족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고 했다 그보다 앞서 3개월 전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IS에 합류하고 싶다”는 글을 올린 적도 있다. 문맥 그대로 해석하자면 이 청년에게 IS는 하나의 도피처였고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할 수 있어 보이는 유토피아였다. 한국에서 이슬람교세가 의미있는 정도로 확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상 생활에서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 청년이 이전부터 쉽게 이슬람교에 대해 알아왔다고 보기 힘들다. 또 나이도 아직 어린 편이어서 지적으로 성숙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왜 이슬람 근본주의를 선택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이 경우를 일반화시키기는 힘들다. 현재까지는 일회성 사건이다. 아직은 단지 하나의 불길한 가능성 정도다.


그러나 서구 유럽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이미 어느 정도 보편화 현상을 띠고 있다. 자발적으로 IS 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슬람 문화와 친근성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슬람 문화와 상관없는 상태에서 IS에 호감을 갖기 시작하다가 이슬람 문화를 접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IS 가 단순한 시민사회단체라면 상관없지만 때로는 자살테러와 같은 극단적 행동을 불사하는 집단인 걸 생각하면 이런 자발적 참여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전통적으로 테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국가. 이념 등과 같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으로 한 공동체의 각인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의 전제다.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 자유와 평등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이념을 오랜 기간 숙고하고 내면화시키는 과정이다. 대부분 이런 과정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며 특정 공동체 안에서 조직되고 육성된다. 공동체 안에서 테러는 영웅적인 행위로 승화되며 희생은 의해 역사적으로 기록된다.





최근 벌어진 런던, 마드리드, 파리 테러 등을 분석해 보면 일견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벌어진 사건들로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다 보면 기존 테러의 메커니즘과 다른 양상을 볼 수 있다. 우선 특정 이데올로기가 명확하지 않다. 외견상 이슬람 교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이슬람 교리는 형식적 슬로건일 가능성이 크다. 자발적 젊은 테러리스트들이 오랜 기간 이슬람에 빠져 그 교리를 내면화 시켰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서구 주요 도시에서 자유롭게 생활해 온 젊은이들이 특정 교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이슬람 교리는 일종의 대안 슬로건일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다른 점은 젊은 테러리스트들이 특정 공동체 안에서 조직되고 육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많은 경우 이들은 이념화되기 이전에 스스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자각을 내면화시켰고 구조적 모순에 대해 개인적으로 절망감을 느껴왔다. 사실 이렇게 절망감을 느낀 개인들은 어느 시대에나 늘 있어 왔다. 이전시대와 다른 점은 최근의 젊은 테러리스트들은 자신의 절망감을 가상 공간에서 쉽게 타인들과 공유하면서 절망감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내면화시켰다는 사실이다. 절망감이 크면 클수록 저항의 강도 역시 비례하여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저항의 최정상에 있는 조직이 IS다.


정보 네트워크가 만든 가상공간은 자발적 의식화 과정을 위한 최적의 도구다. 이 공간에서는 누구도 특정 이념을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교묘한 장치들이 공간 여기저기에 지뢰처럼 묻어 있기도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조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간의 출입은 전적으로 개인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발적으로 여러 번 들어오면서 점차 자신과 같은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이 갖고 있는 특정 이념을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 시킨다.


가상 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특정 공동체를 대신하고 가상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 토론들이 의식화 과정의 도구로 활용된다. 영웅적 미담이 소개되고 종교적 열정까지 더해지면 자발적 의식화는 쉽게 마모되지 않는다. 프랑스 학자 기 소르망은 이런 자발적 의식화를 전염병과 같은 허무주의에 비유했다. 쉽게 중독된다는 의미에서 동의할 수 있는 표현이다. 기 소르망은 허무주의의 해결책으로 세 개의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시리아의 소규모 이슬람 단체들 제거, 둘째 유럽 무슬림들이 허무주의적 도착 증세를 비난해야 하고 셋째 유럽 정부들이 국경지대 안에 있는 무법지대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해결책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소규모 이슬람 단체나 유럽 내 무법지대가 아니다. 현실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부조리다. 이런 모순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가상공간에서 도피처를 찾고 그 안에서 일정한 연대가 이루어지면 적당한 이념을 내재화시켜 순간적으로 폭발하게 된다. 폭발 장소는 아무도 모른다. 가상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hy_kim&uid=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