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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상훈 - "친노와 친박을 심판하는 선거"

irene777 2016. 1. 7. 22:26



[양상훈 칼럼]


"친노와 친박을 심판하는 선거"


- 조선일보  2015년 12월 31일 -





▲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주간



친노 운동권 못지않게 친박 행태에도 염증… 安 신당 지지세가 입증

1與 2野는 與에 꽃가마이나 꽃가마 속 자만·오만은 생각지 못한 결과 낳을 것


안철수 의원이 "절대로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거듭하면서 '설마'했던 내년 4월 총선 1여(與) 대 2야(野) 구도가 정말 실현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야당 상황을 주시할 수밖에 없는 여당의 중진 의원은 "야권 양측 감정의 골이 생각보다 깊은 것 같다"며 "1여 2야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지금처럼 더불어민주당 친노 그룹이 문재인 대표를 붙들고 당권 사수를 외치고, 안 의원은 그대로 제 갈 길을 굳힌다면 야당 두 개가 야권표를 나눠 가지면서 둘 다 망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죽는 게 뻔히 보이는 길을 걸어갈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은 없다. 야권에서 무슨 수든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중 하나는 문 대표가 결국 사퇴하고 그것을 계기로 당 차원이든 수도권의 각 지역구 차원이든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그 경우는 새누리당 입장에서 크게 불리할 것이 없다"고 했다. 때만 되면 붙었다가 때만 지나면 원수가 돼 싸우는 후보 단일화 쇼에 유권자들이 식상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 대표 사퇴가 1월을 넘기면 지역에서 후보 단일화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문 대표가 끝까지 버티면 결국엔 야권 지지자들이 문 대표나 안 의원 중 어느 한쪽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지난 대선 때는 문 대표 쪽으로 몰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 대표가 사퇴해도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어정쩡한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이렇게 야권의 두 세력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팽팽하게 맞서는 것이 가장 좋은 구도다. 그래서 야권으로선 문 대표의 사퇴가 반드시 어떤 돌파구가 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야권이 온갖 몸부림을 쳐도 도저히 길을 못 찾을 개연성이 낮지 않다. 안 의원이든 친노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회의원 총선거처럼 중대한 문제가 여당의 식은 죽 먹기 대승으로 결판날 수 있을까. 그런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야당 분열이 고착된다 해도 여야 모두 생각지 못한 새로운 정치적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어쩌면 새누리당이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여기일지 모른다.


안 의원 쪽 사람들은 야권 분열로 여당에 대승을 헌납한다는 비판에 대해 "이번 선거는 1여 2야 구도가 아니라 다당제(多黨制) 선거"라고 항변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의 조건이 만들어졌으며 이번 선거로 그것이 현실화될 것이란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특이한 대통령제와 특수한 양당제가 서로 악영향을 미치면서 나라가 옴짝달싹 못하는 마비 상태인 것은 상당 부분 사실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1·2당의 '너 죽고 나 살자'식 제로섬 게임에 제3당이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하고 있다. 일반 유권자 차원에서는 여야 두 정당의 무한 정쟁으로 누적된 피로와 기성 정치권에 대한 광범위한 반감이 한계치에 이르렀다. 누군가 제대로 한 방 찌르기만 해도 무너져버릴지 모를 정도로 지금의 여야 대립 구도는 낡아빠졌다.


새누리당에서 누구보다 많은 선거를 경험해본 한 분은 "지금 현장 분위기는 야권 분열로 인한 여당 대승과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박 터지게 싸우면 싸울수록,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과 정치권을 맹비난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그 혜택을 안철수 신당이 보고 있다.


안철수 신당 사람들이 하는 얘기 중에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있다. "이번 선거는 친노와 친박을 심판하는 선거다." 친노 운동권의 나라 발목 잡기는 이미 오래전에 혐오 대상이 됐다. 친박은 성향은 반대지만 극성·고집·적개심 등 행태는 친노와 비슷한 면이 있다. 정치권에선 전체 유권자 중 친박 지지 성향이 20%, 친노 지지 성향이 20%쯤 된다고 본다. 그 중간에 있는 사람의 절반 정도가 여권 지지라고 하는데 안철수 신당의 등장은 이들을 흔들리게 하고 있다. 안철수 신당이 야당보다 여당에서 더 많은 지지를 가져온다는 것은 이제 여론조사상의 명백한 흐름이다. 이번 선거가 친노만이 아니라 친박도 심판하는 선거가 될 것이란 주장은 막연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지지세로 뒷받침되고 있다.


앞으로 야권 분열이 심해지는 것과 비례해 여당 내부, 특히 친박 진영의 자만과 오만이 기승을 부릴 여지도 커질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시도도 더 노골화될 것이고 박 대통령의 남 탓하기, 내 편 챙기기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여 2야는 분명 여당에 꽃가마다. 그런데 꽃가마 탔다고 난리를 치다가 가마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선거에선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주간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30/2015123003849.html>